리들리 수필
중학교 3학년, 한 걸그룹(이하 A그룹)의 팬이 되었다. 당시에 신드롬처럼 유행하던 한 광고 화보를 본 일이 발단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음악 방송에 채널을 고정해 두던 여동생 때문에, 아이돌이라면 달갑지 않아 하던 내가 아이돌을 좋아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처음이라 그랬을까, 나의 첫 덕질은 평범하면서도 꽤 헤비했다. 앨범과 굿즈를 사 모으고, (지금은 사라진) V앱 라이브를 챙겨 보고, 콘서트를 위해 난생처음 서울에 가보고. 소위 '찍덕'이라고 불리던 홈마나 중화권의 금수저 팬만큼은 아니었지만, 중학생이던 입장에서는 나름 열혈이었다. 아직도 멤버들의 생년월일을 외울 정도면 말 다 했지.
안타깝게도 A그룹은 욕을 많이 먹었다. 연예 기사의 댓글 창을 보면 악성 댓글이 많이도 달렸다. 인기 멤버에게는 괜한 루머나 무의미한 비하 댓글이 달렸고, 비인기 멤버에게는 '누구지', 혹은 '오늘 저녁 뭐 먹지' 같은 불필요한 조롱성 댓글이 달렸다. 국내 팬덤은 기사가 뜰 때면 선플을 달고 악성 댓글에는 비추천을 누르며 댓글 창을 관리하기 바빴다. 성희롱은 기본이거니와, 누군가는 합성 음란물을 제작해 유포하기도 했다. 당시만 생각하면 연예 기사의 댓글 창이 지금이 라도 사라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 가수가 악성 댓글을 보는 일을 막기 위해 댓글 창을 관리할 때면, 나의 정신마저 망가지는 기분이었다. 왜 꼭 밝게 빛나던 별이 져야만 적극적으로 해결하는지.
그러나 팬들의 노력에도 한계가 있었고, 악성 댓글을 모두 막을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A그룹의 소속사마저도 악플러들을 향한 고소나 일련의 경고, 혹은 소속 아티스트를 보호하는 일에 소홀했다. 일 못하는 소속사가 으레 그렇듯, A그룹의 소속사 또한 회사명과 대표의 이름 첫 글자는 늘 '개'를 비롯한 욕설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소속사로부터 문제 해결을 위한 약속을 받을 수 없었고, 그저 이익을 위해 A그룹을 꾸준히 혹사하는 모습만 목격할 수 있었다. 결국, 어떤 멤버는 공식 석 상에서 눈물을 참지 못했고, 어떤 멤버는 건강상의 이유로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내가 속한 A그룹의 팬덤은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팬의 처지에서 무기력과 좌절을 마주하는 순간, 어린 마음에 더 짙게 다가온 당시의 충격은 지금도 선명히 남아있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아이돌 덕질 10계명'이 있다. 함께 자기 가수 응원하는 처지에서 서로 지켜야 할 에티켓들인데, 정말 공감할 수 있었다. 특히, '내 최애 소중하듯 남의 최애 소중하다'와 '듣보라고 함부로 욕하지 마라'라는 항목은 진심으로. 안타깝게도 여전히 아이돌을 한 명의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서 무분별하고 불필요한 비난을 해대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대중, 기자, 하다못해 함께 덕질하는 입장인 타 그룹의 팬들까지.
남의 가수라도 이유 없이 욕을 먹으면 마음이 좋지 않다. 좌절하던 몇 년 전의 내가 떠오른다. 억울하게 비난받는 연예인이 안타깝고, 그들의 팬들이 걱정된다. 연예계에 데뷔하는 모두가 성공하거나 잘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무시당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억울하게 비난받는 일도 없었으면 한다. 연예인 걱정할 필요 없다는 말도 어느 정도 성공한 연예인의 금전 문제에서만 통하는 정설이다.
분명 2세대, 2.5세대로 분류되던 당시의 아이돌과 비교해 4세대를 비롯한 현재 아이돌의 처우는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관리를 빌미로 개인 휴대전화를 압수해, 몇 년 동안 이메일을 통해서만 부모님과 친구에게 연락할 수밖에 없는 시대 역행적 강압 통제만큼은 사라졌겠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전히 많은 지점에서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아티스트를 향한 이유 없는 비난과 성희롱, 소속 아티스트 방치 문제, 그 외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각종 병폐. 당장은 무리더라도, 꾸준히 처우가 나아졌으면 한다. 당연하게도 아이돌 또한 반드시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니까. 한 명의 K-POP 팬으로서 바라고 있다.
A그룹을 탈덕한 지도, A그룹이 대중에게 이전보다 잊힌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누군가는 연예계에서 살아남아 지금도 제 몫을 해내고 있으며, 누군가는 은퇴를, 누군가는 새로운 도전을, 누군가는 결혼에 골인했다. 나조차도 A그룹을 향해 이전의 감정은 품고 있지는 않지만, 당시에는 많이도 응원했기에 아마 기억에서 완전히 잊을 수는 없을 테다. 그들이 각자의 삶에서 잘 지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