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촌, 향도 (14)
쉽지 않다. 약 기운에 더해 운동 후 피로감이 몰려올 때면 하루의 나머지 시간을 제정신으로 보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요즘이다. 그나마 오늘은 연이틀 운동을 쉬었더니 글을 쓸 기운이 나 카페에 나와 키보드 자판을 누르고 있다. 담당의는 나에게 '기본도 하기 싫어하는 것이든, 못하는 것이든 지금은 기본도 안 되는 상황인 거다'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집안일부터 시작해보라고 했으나 그 집안일 역시 나에게는 큰 도전으로 여겨진다. 그렇다고 쳇바퀴 돌듯이 우울하다, 마음이 힘들다 따위의 글만 쓸 순 없었다.
오늘은 나의 6년을 함께한 여자 친구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촌과 얽힌 일이란 몇 없다. 그녀가 노량진에 있던 시절 한 번 크게 싸우고는 순하리 처음처럼을 나눠마신 이촌공원 정도가 고작일 것이다. 이제와 하는 이야기지 이지만 누나는 우리 둘의 관계에, 쉽게 말해 그녀에게 큰 불만이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큼 헌신적으로 연애를 한 적은 없기도 하다. 맞는 말이다. 나는 모든 걸 바쳤고, 그 결과 환승 이별이 전부였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너의 결혼식》을 다시 보면서 참 공감되면서 한편으론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내가 그녀가 있는 안암에 가고 싶어서 간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누나가 말하는 '개념 없는' 사건만큼이나 그녀는 언젠가부터 연에게 소홀해지기 시작했었다. 나 또한 그런 그녀를 알면서도 굳이 싸우려 들지 않았다. 그게 더 멀어지는 지름길인 것 같아서. 지금 와서는 그게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확신하지만 그땐 몰랐었다. 우리는 그래도 세 번의 해외여행과 두 번의 국내여행을 함께 했으며 CC로 각자 가고 싶었던 곳으로 가며 동시에 졸업했다. 유감스러운 점이야 많겠지만 이제는 굳이 들추어 보고 싶지 않다. 좋은 기억만 생각하며 살기에도 충분히 힘들다. 그래도 그녀가 행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전히 나는 가끔 아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