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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촌 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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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VN Solo Nov 11. 2019

아기들은 귀엽다

이촌, 향도 (4)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아이콘, 건후

 인스타그램이 아직 팔로워들의 활동 내역을 알려줄 때, 나와 친한 누나 한 명의 좋아요 리스트는 대단한 일관성을 자랑했다. 피드를 즐겨 올리지 않는 분이었는데 매일 꾸준히 건후의 온갖 모습을 섭렵하고 있었다. 건후는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 있다. 나는 건후가 잘생겼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으나 확실히 행동 하나하나가 엄청 매력적이다.

 사실 아기들은 건후뿐만이 아니라 모두 매력적이다. 우리 동네 카페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인지라 특이하게도 책을 읽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주일 점심 교인들이 뒤풀이를 가질 때를 제외하면 카페는 누가 지시하지 않았는데도 도서관 같이 정숙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그래서 눈치 없을 것 같은 아주머니들도 왁자지껄하게 떠들다가도 점차 소리를 누그러트린다.



 어찌 보면 삭막할 수 있는 카페가 따뜻함으로 꽉 찰 때가 있는데, 그건 애기들이 소란을 피울 때다. 아기들이 보는 세상은 얼마나 새롭고 흥미로울까. 나는 아이였을 때도 아이들을 보며 '쟤는 어쩜 저렇게 어릴까'라는 생각을 했던 애늙은이였기 때문에 아이들의 돌발행동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아버지는 내가 소방차를 사주지 않아 63 빌딩에도 드러누웠던 독한 놈이라고 말한다.) 

 하루는 아이가 신나게 카페 트랙을 뛰어다녔다. 세 살쯤 돼 보이는 여자 아이는 양 갈래 머리를 한 채 신나게 카페를 네 바퀴 연거푸 돌았다. 힘들기도 할 텐데 거친 숨을 내쉬면서도 꺄르륵 웃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어머니로 추정되는 분은 화들짝 놀라며 아이를 잡으러 뒤쫓았다. 경찰과 도둑을 연상시킬 만큼 박진감 넘치는 추격전이 약 5초 간 유지되었는데 소란을 일으킨 범인은 검거되고도 뭐가 그리 즐거웠는지 틈만 나면 탈출을 시도했다. 어머니는 당혹스러워하며 아이를 다시 1층으로 연행했다.


 오늘 본 아기는 성별을 알기 어려웠다. 핑크색 재킷을 입었으니 여자 아이 같기도 했는데 눈이 똘똘하고 목소리는 남자아이 같았다. 보통 아기들은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위험하다 느낄만한 아저씨가 되었다.) 이 친구는 양말을 벗으며 나를 향해 활짝 웃었다. 할머니는 "아저씨 자리 넘어가면 안 돼.", "아저씨가 이놈 한다."라는 말을 하셔서 마음이 아팠다. (현실을 받아들이긴 해야 한다. 이십 대 후반 관리 안 한 남자는 아저씨가 맞다.)

 아이는 아저씨를 두려워하지 않고 접근해왔다. 아이의 의도는 파악하기 어려웠다. 나에게 물티슈를 꺼내 주려 길래 받으려 했더니 손을 다시 쓱 빼며 활짝 웃었다. 나를 갖고 놀았다. 아이는 빈 물티슈 통으로 한 번 더 똑같은 짓을 했다.

 "몇 개월이에요?" "13개월이에요, 그런데 벌써 고집이 세요." 아이의 다양한 행동에 힘겨워하던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아기는 이모가 태블릿을 들고 와 뽀로로를 틀어주니 이내 뽀로로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했다.


손나은, 건후 & 나은 _슈퍼맨이 돌아왔다


 요즘 들어 아기만 보면 사족을 못쓰는 친구들이 이해가 된다. 조카들을 카톡 인스타그램에 올릴 때 참 호들갑이라 생각했는데 나는 카페에서 만난 낯선 아기를 보기만 해도 무장해제되는 것이다. 결혼은 요원해 보인다. 지상 최대의 걸림돌이라는 집은 있지만 집만 있다. 아이에게 모든 걸 줄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부족한 부모가 되고 싶지는 않다. 요즘 연애 생각조차도 없는데 결혼은 무슨.. 그렇지만 아기들은 귀엽다. 아기는 자그마한 플라스틱 스푼으로 다시 나에게 장난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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