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슈뢰딩거 고양이 사랑

[단편 소설]

by kim

프롤로그



‘양자역학.... 신비로운 우리 우주의 진리이자 미시세계의 법칙으로 아얏!!’


“야 도지훈! 등교 중에 책 보면 차사고 난다고! 하하하하”



“야 유미나! 너 때문에 코피 날 뻔했잖아!”



‘저 녀석 정말로 싫다니까! 흠흠 다시 읽자 그래서 보어의 이론을 무너뜨리기 위해 슈뢰딩거가 고양이를 예시로 들면서...’



뿔테 안경 흘러넘칠 거 같은 책가방, 헝클어진 머리 두꺼운 양자역학 책을 보는 소년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소년의 뒤통수를 치고 달리다가 기다리는 단발머리 소녀. 소년은 소녀의 봄처럼 밝은 미소를 보자 아침 햇살 때문에 살짝 붉어진 뺨을 감추기 위해 책에 더욱 매달린다.



소년은 아직 봄추위 때문인지, 아니면 떨어지는 꽃잎들에 부서지는 햇살 때문인지 모르지만 붉어지는 뺨을 가리며 소녀에게로 걸음을 재촉하였다.



1.



도지훈은 학교에서도 괴짜 녀석이다. 아무리 소꿉친구인 나라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녀석은 이상한 형태의 사춘기가 온 모양이다.



‘하 고등학생 주제에 무슨 양자역학이야 본인이 과학자야?’



헝클어진 머리 어렸을 적부터 반곱슬인 녀석의 트레이드 마크인데 이제는 과학책과 함께하니 영락없는 괴짜 과학자 같다니까!



근데 더 짜증이 나는 건...



“야야 도지훈 쟤 봐봐 또 양자역학 저거 읽는 거 같네?”



“진짜 그렇다니까 괜히 멋지게 보이고 싶나?”



뒤에서 수군대는 이 존재감도 없는 녀석들이 신경에 거슬린다니까 한 번은 크게 싸운 적이 있는데 도지훈 녀석 괜히 말리면서 괜찮다 그러고 있어 바보같이..



“근데 있잖아 좀 멋지지 않아?”



뭐? 하핫 뭐라는 거야 얘는?



“에이 아냐 뭐가 멋져~ 내가 도지훈 어렸을 때부터 봤는데 완전 그냥 너드 그 자체라고”



“에이 미나 너 요즘은 너드남이 인기인 거 몰라? 생각보다 귀여운 구석도 있던데? 저번에 말 걸어보니까 어버버 하는 게 조금 귀엽더라”



참 나원 이상한 취향이네



쳇 도지훈이 무슨.. 뭐가 멋지다고....



2.



유미나 녀석 점점 장난이 심해진다. 어렸을 때부터 동네 남자애들이 나를 놀릴 때 싸우던 섬머슴 같은 녀석이었지만 요즘 점점 더 심해진다.



저번엔 별 신경도 안 쓰던 녀석이 앞에서 뭐라 하던 걸, 유미나가 혼자 발끈해서 싸우던 적이 있었다. 나는 겨우 말렸고.



또래 애들보다도 거칠게 사춘기가 온 주제에 인기는 좋아서 말이지 주위의 바보 같은 남자애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꽤 거슬리지만 나는 그런 거 아예 관심 없으니까!



‘슈뢰딩거의 고양이... 슈뢰딩거가 양자역학의 아버지인 보어의 불확실성에 대한 이론을 반박하기 위해 고양이를 활용한 사고 실험을 하였다...’



“야야 유미나 쟤 진짜 이쁘지 않아? 한번 고백이나 해볼까? 받아주는 거 아냐?”



“그만둬 주먹으로 얼굴을 날려버리는 여자애랑 사귀면 너 갈비뼈 뿌러짐ㅋㅋ”



젠장 책이 눈에 안 들어온다. 괜히 저 ‘고백’이라는 단어가 더 크게 들리는듯한 기분이다.

다시 집중해야지



‘슈뢰딩거는 고양이 사고 실험으로 보어의 이론을 반박하였는데.. 닫힌 상자 안에 고양이를 넣고 독약이 든 병을 넣는다. 독약이 깨지면 고양이는 죽고 안 깨지면 산다.’



꽤 잔인한 실험이네



‘그리고 밖의 관찰자는 상자 안의 상황을 알 수가 없는데 그러면 고양이는 상자 안에선 죽은 건지 살아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태인 것이냐며 보어의 불확실성원리에 대해 반박하였다.’



불확실성이라....



젠장 왜 또 유미나를 보는 거지 아 눈이 마주쳐버렸네



혹시 설마



3.



그날 저녁 소년과 소녀는 괜히 서로의 눈치를 보며 폰을 만지작 거린다.



‘유미나 녀석... 어차피’



소년은 괜히 거울 앞에 서서 본인의 헝클어진 곱슬머리를 긁적거리며 바라본다. 곱슬머리, 두꺼운 안경 그리고 봄바람에 살짝 붉어진 뺨. 괜히 열이 있나 이마를 만져보지만 차가운 이마아래 손등은 땀에 살짝 젖어 있다.


‘감기인가.. 참’



소년은 괜히 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메신저 친구 목록에 있는 유미나를 찾는다. 그리곤 괜히 1대 1 대화 창에 들어가 가만히 했던 대화들을 본다. 시시껄렁한 이야기들 서로 동영상 공유하며 웃던 이모티콘들



소년은 말없이 침대에 누워 한참 동안 대화들을 바라본다.



한편 소녀는 학교에서 여자애들이 수군대던 소리가 지금도 귀에 맴도는 불쾌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녀석들 언제부터 도지훈을 봤다고 귀엽다느니 뭐니 그러는 거야? 내가 단속을 시켜야 하나 괜히 바보처럼 말 더듬지 말라고..?’



괜히 손톱을 물어뜯으며 침대에서 본인만 한 곰인형을 안고 있던 소녀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핸드폰을 집는다.


‘녀석은 바보니까.. 괜히 말 안 해주면 더 비웃음 당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냥 주의를 주는 거야 맞아!’



메신저 대화 목록 가장 위에 있는 소년과의 대화창을 열어 쓰고 지우 고를 반복하는 소녀였다.



4



쏴아아 아



결국 폰만 만지며 예전 대화만 보던 소년은 샤워를 하고 있다. 더운 여름도 아니지만 뺨이 붉어지고 더웠다. 봄의 찬 바람이 장독대를 깨는 이 시기에 소년은 이상하게 더워 샤워를 하고 있었다.



‘유미나 녀석...’



소년은 다시 소녀를 생각하고 있었다. 불쾌한 답답함에 머리를 감아보지만 가슴의 답답함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늘 학교에서 같은 반 남자애들이 ‘고백’이니 뭐니 하던 게 계속 마음에 맴도는 소년의 마음이었다.



‘바보 같아 그런 불확실한 행동을 왜 하는 거야’



괜스레 머리를 감는 손이 더 격해지는 소년의 눈은 비눗물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감정 때문일까 조금은 충혈되어 보이는 듯했다.



‘아아아 젠장 하... 연락은 왔을까?’



샤워가 끝나고 머리를 말리면서 폰을 가지러 가기 위해 방 안으로 들어가는 소년이지만 문고리 앞에서 조금 멈칫하다 방 안으로 들어간다.



검은 화면인 스마트폰



소년은 전원 버튼을 가볍게 그리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눌러본다.



‘아...’



내일 아침에 일찍 나와



딱 한 줄이었지만 소년은 고목나무가 쓰러지듯이 침대에 쓰러지고 있었다.



5.



쌀쌀한 금요일 아침



봄의 추위가 아직 겨울의 따스함 정도 일 때 두 소년과 소녀는 학교 가는 골목에서 마주친다.



“어이...”



어색하게 손을 흔드는 유미나 오늘따라 조금은 더 단정해 보이는 단발머리 사이로 찬 바람이 휘날려 소녀의 살짝 상기된 뺨을 머리카락과 함께 가려주는 거 같았다.



“뭐.. 뭐가 어이야 아침 댓바람부터 사람이나 불러내고”



투덜거리는 어투의 소년 하지만 손에는 두꺼운 과학책은 없었다. 조금은 더 단정해 보이는 소년의 교복에 덜 헝클어진 곱슬머리 그리고 살짝 내려온 다크서클 아래로 보이는 붉은 뺨



아마 봄바람에 뺨이 붉어진 것이라 자기 암시하는 소녀와 소년



조금 이르게 핀 벚꽃의 꽃잎들이 봄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야 뭐야 너... 그 말 더듬는 거 언제 고칠 거야? 주위 여자애들이 놀린다고..”



“남이사 내가 신경 안 쓰는데 어때 뭐”



“야 너는 왜 내 앞에서는 말을 안 더듬냐 응?”



소년의 허벅지를 가볍게 차는 소녀 그리고 아무 말없이 받아주는 소년



“너.. 너야말로 뭐야 너무 나.. 남자애들처럼 행동하지 마 주위애들이 가볍게 말 걸려고 하더라”



“뭐? 나야말로 그런 애들은 쥐뿔도 관심 없는데?”



콧방귀를 뀌며 오히려 본인을 가볍게 보는 남자애들에게 화내는 소녀였지만 소년은 가슴의 답답함이 나아지지 않았다.



“야 근데.. 뭐야 애들이 막 고백이니 머니 하더라 너 인기 있는 거 아니야? ㅋㅋㅋ”



“뭐?”



소녀는 걸음을 멈추고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녀의 뺨은 떨어지는 벚꽃잎보다 조금은 더 붉어져 있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고 뭐 그냥 그렇게 들은 거 같기도 하고 그게 아니라...”



소년은 팔을 흔들며 해명을 하고 있었다. 괜히 물을 넘치도록 받다가 흘린 아이처럼 소년은 팔을 휘저으며 변명을 하였는데 소녀는 그런 소년을 보며 한걸음 더 다가왔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상관없어?”



“뭐..?나...ㄴ. 나는..”



붉어진 뺨에 말을 더듬는 소년과 그런 소년을 보자 안심하듯이 살짝 미소를 짓는 소녀. 소녀는 소년의 넥타이를 잡아끌어 당겼다.



슈뢰딩거의 실험은 상자라는 고립계가 있어야 성립되는 실험이다. 상자 안의 상황은 누구도 알 수 없어야 상자 안 고양이는 죽음과 삶의 상태에 영원히 중첩이 되어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관측이 되면 중첩된 상태는 붕괴되고 하나의 상으로 고정된다.



봄의 찬 바람뒤로 따뜻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꽃잎이 휘날리고 아침햇살은 떠오르고 있었고 하늘아래 새털구름이 태양빛을 반사해 황금색처럼 보였다.



“빨리 와 이 바보야”



소녀는 메롱을 하며 앞에 서 있었고,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다크서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붉은 뺨을 손등으로 감추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오늘의 글은 나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