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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국화 Oct 03. 2022

평범한 이들의 처절한 로맨스

카카오TV 오리지널, 넷플릭스 드라마 <이 구역의 미친 X>

      

우선 뻔함을 비켜 가는 대사가 좋았다. 그리고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올바른 태도를 견지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코믹 로맨스물이겠거니 생각하고 편하게 보기 시작했다. 간헐적으로 소리 내어 웃어 가면서. 한 회가 끝나면 다음 회차로 스무스하게 넘어갔다. 드라마의 공식에 맞춘 듯 중간중간 긴장감을 주면서 극은 서서히 상승 곡선을 탔다. 발단 전개 절정 하강 대단원의 구성에 충실할 듯 보였다. 그런데 뒤로 가면서 예상을 조금씩 비껴갔다. 이쯤에서 이만한 갈등 요소가 나왔으니 곧 정점을 찍고 이내 완만한 경사면으로 부드럽게 내려와 해피엔딩으로 안착하겠지, 하는 예상을 깨서 의외였다. 마지막 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 것은 상투성을 탈피하려는 작가와 감독의 의도일까. 결말 처리를 안이하게 하지 않고 현실에 가깝게 그리려는 고민이 엿보였다. 로맨스가 이렇게 긴장감과 공포, 서스펜스를 맛보게 할 줄이야. 막판 자동차 추격전에 액션 씬까지는 좀 나간 것 같았지만. 



다른 로맨스 드라마의 인물에 비하면 이 드라마의 남녀 주인공은 평범한 편에 속한다. 평범하다는 것은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으나 상위 몇 프로에 속하는, 평소 접하기 어려운 인물군에 속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사회의식을 보여주기 위해 작가가 잘 알지 못하는 취약 계층이나 소수자를 등장시켜야 한다는 강박이 없어 보여서 좋았다.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이라는 의미이다. 대신 조연으로 편의점 알바 공시생이나 성소수자가 등장하고, 유기 동물도 나온다. 정치적 올바름을 신경 쓴 결과일 거라 추측한다. 

작가는 우리 주변에 존재할 것 같은 인물을 창조해 내고, 그 인물에 현재 사회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녹이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서 강력반 ‘개새(개 같은 짭새?)’로 불리는, 남다른 정의감에 불타 억울하게 정직 처분을 받고 파혼까지 당한 후 분노조절장애 진단을 받은 남자가 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잘 나가는 대기업 사원이었으나 퇴사 후 사람들과 자신을 믿지 못하는 강박증과 망상 장애에 시달리는 여자가 있다. 그녀는 사랑했던 남자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별을 통보한 후 폭행 (‘데이트 폭력’이란 말은 잘못되었다. 그냥 폭력일 뿐.)에 불법 촬영, 협박까지 당하고,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향한 주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까지 감당해야 했다.


모든 드라마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판타지이다. 부조리한 현실은 쉽게 변하지 않고, 아픔을 가진 사람과 범죄 피해자들이 치유받고 세상에 나오는 일은 아주 적은 확률로 일어나는 법이니까. 그러나 문학이 그렇듯 영화나 드라마도 그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러하다고 보여주는 것만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환기하고 사회 문제를 인식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나는 오피스 드라마를 좋아한다. 보통은 그나마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실 속의 지난한 과정을 거쳐 결국은 우리가 바라는 결말을 짓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맨스 드라마에도 그런 현실적인 요소나 사회의 문제가 눈치 못 챌 만큼 들어가 있을 때 나는 쉽게 드라마에 빠져든다. 


로맨스 드라마라고 해서 유치한 대사를 주고받으며 달달하기만 할 거라는 선입견은 애초에 던져버리고 이 드라마를 봐야 한다. 사랑만큼 에너지 소모가 많고 서로의 가장 깊은 상처를 꺼내 들여다보는 행위가 있을까. 사랑의 본질이 피를 철철 흘리는 전투와 같은 것임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일처럼 떠올렸다. 그건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두 주인공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라는 사실로부터 짐작이 간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사실 누가 정신적으로 정상인지, 비정상인지를 돌아보게 된다. 짧은 에피소드로 잠깐 드러나는 바에 의하면, 아파트 부녀회 삼인방도 각각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세간에서 지역이기주의의 표본으로 여겨지곤 하는 아파트 부녀회장과 회원들은 이 드라마 속에서는 밉지 않은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평균적인 요즘 시대 인물의 초상을 그 인물들을 통해 잠깐 보여준 거라 생각한다. 각각 오지라퍼에 알코올 중독자, 악플러라는 이면을 갖고 있지만, 그들은 타인에 대한 기분 좋은 관심, 따뜻한 이웃에 대한 향수 같은 또 다른 판타지를 선물해 준다.



그 외의 인물로 두 주인공의 어머니가 있다. 두 사람 모두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지만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

휘오의 어머니는 따뜻한 품성의 소유자로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엄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큰 사람. 가사노동에 단련된 여자. 아들 집에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따뜻한 밥상을 차리는 엄마. 그러면서도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요리를 배우지 말라고, 잘하지도 말라고, 잘하면 계속해야 한다고 말하는 여자. 그 장면에서 시지프스의 바위 굴리기처럼 반복되는 노동의 지난함을 떠올리게 된다. 

1화에서 휘오가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모든 일이 꼬여버리자 아이처럼 엄마 보고 싶다는 말을 하는데, 그건 맹목적으로 사랑을 주는 이가 배경처럼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 큰 어른에게도 엄마는 필요한 법이다.

민경의 엄마는 어쩌면 작가가 이렇게도 디테일을 잘 살렸나 싶게 민경과 묘하게 닮았다. 타고난 성정상 예쁘게 말하는 데 익숙지 않고 거칠어 보이나 속은 딸에 대한 사랑과 걱정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


그 외에도 드라마는 가해자에게 서사는 필요 없다는 것,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이나 성범죄는 자동차 사고와 같은 일이라는 것을 건전하게 알려준다.


결말 부분에서 민경은 원래 꿈꾸었던 대로 꽤 긴 시간 동안 몽골에 다녀온 것 같다. 그가 몽골에 가고 싶어 한 이유는 그곳이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곳이라는 데 있었다. 그는 한동안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의 부당한 공격에 노출되었고 그래서 머리에 꽃을 꽂고 밤에도 선글라스를 끼고 다녀야 했으니까.     


마지막 장면의 그는 건강해 보인다. 아파트 복도의 모퉁이를 돌아 걸어오는 당당한 발걸음은 그가 완전히 회복되었음을 알려준다. 나는 그가 누구보다 자신을 믿게 되었길 바란다. 드라마에 보이지 않는, 이후 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다음 이야기이다. 건강한 자아를 세울 수 있을 때 타인과의 관계도 건강하게 맺을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인가, 민경과 휘오가 아파트 복도에서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으로 드라마가 끝난다.


취약한 내면을 가진 두 사람이 전쟁과도 같은 과정을 거쳐 자신을 알아가고 서로에 대한 믿음을 조심스럽게 세워가는 이야기. 로맨스의 공식에 따라 판타지적인 요소가 없지 않지만 눈감아 줄 수 있을 만큼 괜찮은 이야기를 오랜만에 만났다.    



(예전에 써 놓았던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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