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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방콕(김기창) - 당신의 윤리 안테나는?

인권, 동물권에 대한 감수성을 복합적으로 풀어내다.

by 이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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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김기창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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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소외받은 외국인 노동자와 각 나라의 사람들이 방콕에 모여 벌이는 얽히고 설킨 이야기

*감상: 출근길 순삭의 힘... 제로섬 게임...ㅠㅠㅠ

*추천대상: 인권에 관심 있는 분

*이미지: 화려한 관광도시, 방콕

*내면화: 내가 가진 감수성(인권+동물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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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얽혀있다. 부당한 대우에 복수심을 품은 외국인 노동자의 이야기, 동물의 권리를 위해 애쓰는 여자의 이야기, 생존을 위해 애쓰는 방콕 여자의 이야기 등. 그들의 권리를 짜임새있게, 복합적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그 다양한 이야기가 모이는 곳이 환상적인 관광의 도시 방콕이다. 방콕에서 그들은 서로 뜨겁게 사랑하고, 살벌하게 오해하며 날카롭게 서로를 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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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출근길을 순간이동으로 만들어준 책이다. 말그래도 순삭! 처음에는 '소외된 외국인 노동자'의 이야기로 조금 무거운 느낌을 받았으나, 진행될수록 다이나믹한 전개가 스릴러 영화처럼 화려하게 진행되어 이야기에 빨려들어갔다. 다문화의 도시 안산에 오래 살았고, <다문화 다큐 읽기> 프로그램도 진행하며 나름 다문화 감수성은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은 복합적인 인권, 윤리 내용을 다루며 마음을 콕콕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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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하면 방에 콕! 박히는 것이 먼저 떠오를 정도로... 배경지식이 없었다. 해외 경험 자체가 없기 때문에, 방콕이 주는 이미지에도 관심이 없었는데 여러 나라의 문화를 오가는 이야기 속에서 방콕의 특성을 머릿속에 그려나갈 수 있었다. 쾌락의 도시, 다양한 관광객들 속에서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소외되는 아이러니. 안정을 추구할 수 없는, 모두가 붕 뜬 상태로 살아가는 환각의 도시. 이 도시에서 모든 것은 허황되다. 그래서 모두 진실을 보지 못하고 성급하게 오해한다. 섬머가 강조하는 '윤리의 안테나'도, 방콕에서는 신호가 잘 잡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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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인권+동물권) 감수성은 기껏해야 나의 시야가 머무르는 곳까지다. 그 이상은 나아가지 못하고 초점을 잃는다. 의도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상대방에게 닿지 못한다는 것은 같다. 이 소설에서 나쁜 사람 한 명 없이, 긴박한 사건 전개가 진행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은 모두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함일 뿐이다. 그것은 존엄성. 일반적이지 않은, 일반화할 수 없는, 각자의 소중하게 생각하는 대상에 대한 존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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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안락한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우리는 상대방에게 칼을 겨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이기적인 인물이다. 가장 착해보이는, 동물의 권리를 지켜주고자 애쓰는 인물 섬머 조차도 가장 소중한 남자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여자에게 의도하지 않은 상처를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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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어긋나는 인식 속에서도 우리는 사회 체계 속에서 그럭저럭 살아간다. 하지만 방콕이란 곳은 그런 체계가 통하지 않는, 모두가 취한 이공계와 같다. 뿌연 시야 속에서 자신만의 욕망과 존엄성이 최우선이 되었을 때, 그 모습을 유혈사태로 드러난다. 제로섬 게임과 같은 끔찍한 이야기 속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진실은 보지 못하더라도 오해는 최소화할 수 있도록, 내 감수성의 시야를 조금 넓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 말하는 '머뭇거림'을 희망으로 삼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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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 자신만의 규칙이 있는 사람은 지나친 선행을 베풀지 않았고, 쓸데없는 악행을 저지르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무의미한 웃음을 흘리지 않았다. p.16

- 고통은 신이 주는 게 아냐. 인간이 만드는 거지. p.32

- 이게 바로 윤리의 안테나라는 거야. 이걸 바짝 세우고 모든 곳을 주의 깊게 살피는 거지. p.32

- 어쩔 수 없는 것들도 만들어진 거야. 처음부터 존재했던 게 아니라고. 억지로 바꾸라는 게 아냐. 그걸 알고는 있어야 한다는 거야. p.35

- 많은 사람이 그래.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누군가의 고통에 눈감는 일이라고 생각해.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보다 누군가의 고통에 눈 감는 사람이 더 많아. 그래서 끝없이 고통이 반복되는 거야. 동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 눈을 감지 않는 게 중요해. 그러면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어. p.53

- 동물도 인간처럼 슬퍼하고 아파하고 괴로워한다는 거죠. 인간이 느끼는 비참함과 절망감을 동물도 느낄 수 있어요. 어떤 경우에는 더 예민하기도 하고요. 저는 동물의 고통에 더 쉽게 전염돼요. 인간보다 연약한 존재들이니까요. p.101

- 세상에는 싸워야 할 대상이 너무 많은데 자기 자신의 삶조차도 그 대상이 되는 건 너무 부당한 일이라고. p.245

- 내가 너에게 한 짓이 아니라, 너희가 내게 한 짓을 기억해. p.320

- 개별적 존재들의 삶이 들리지 않는 선율로 엮여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그 머뭇거림이 윤리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류의 종말은 윤리의 종말이지 다른 무엇은 아닐 것이라는 점도.

- 난장, 치정, 사고, 복수, 분노, 파국. <방콕>은 할 수 있는 만큼 온 힘을 다해 오해하고 읫미하다 끝끝내 형체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얀 천으로 모두 덮어버리고 싶은, 저항이 불가한 재앙. 그저 먼발치에서 구경하고 싶은 현대판 비극. 그러나 소설은 윤리와 계급, 존엄이라는 묵직한 돌을 맨 채로 깊은 물속으로 뛰어든다.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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