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상황맥락] 상사의 "바빠요?" 가 무서워요

말귀가 어두운 당신을 위한 처방전!

by 이승화

회사에서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가 "바빠요?" 입니다. 이 세 글자만 들으면 겁난다는 분도 있습니다. 여러 사례를 알아보고 상황에 맞게 듣고 행동하는 센스를 키워보도록 해요.


말귀 뻥 5.jpeg


*이과장: 오사원, 바빠요?

*오사원: 네, 지금 굉장히 바쁩니다! 야근하게 생겼어요.ㅠㅠㅠ

*이과장: 그렇군요.... 무슨 일 하나요?

*오사원: 결산 보고서 자료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과장: 아! 그거 별로 급한 일 아닌데, 일정 남았잖아요?

*오사원: 오늘까지 마무리하려고 마음 먹어서요.

*이과장: 오사원 마음 보다 중요한 건 회사 일정 아니겠어요?

*오사원: 그렇지만 저는 마무리를 해야 개운할 것 같습니다.

*이과장: 거참... 답답하네! 더 급한 일이 여기 있다니까요!

*오사원: 아, 업무 지시하시려고요? 말씀하세요.

*이과장: 알아서 센스 있게 받으면 좀 좋나요. 말귀 못 알아 먹네 참!

*오사원: 네, 죄송합니다.


토닥토닥 오사원! 구박 받아서 기분이 상했을 거예요. 많이 억울하기도 할 겁니다. 일을 시키려면 그냥 직접적으로 일을 시키면 되지, 괜히 바쁘냐고 물어 놓고 왜 혼자 급발진인지...? 당황스러울 거예요. 어쩌다 말귀 못 알아 먹는다는 말까지 들은 건지, 생각할수록 아리송할 겁니다. 오사원 입장에서, 이런 상황은 녹음을 하고 반복해서 다시 들어도 ~ 이해가 안 될 거예요. 텍스트 그 자체로는 전혀 문제가 없는 충실한 반응이었으니까요.


역으로 이과장 입장에서는 오사원이 되바라졌다고 오해할 수도 있어요. 이렇게 신호를 줬는데도 거절하다니, 철벽방어를 치는구나! 라고 말이죠. 나름 친절하게 이야기하려고 돌려서 ~ 돌려서 ~ 이야기한 것인데, 거절 당했다고 생각하니 더 화가 날 겁니다. 이과장이 기다렸던 그림은 이럴 거예요.




*이과장: 오사원, 바빠요?

*오사원: 아, 과장님! 괜찮습니다. 뭐 도와드릴까요?

*이과장: 이것 좀 봐줄래요. 급하게 처리할 건이라서요.

*오사원: 넵!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 듣고 반응해주길 바라는 상사의 마음!ㅋㅋㅋ 그래서 어떤 곳에서는 '회사어'라는 용어로 "바빠?" => "일 받아라!" 외우라고 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적절하지 않아요. 다른 예를 볼까요?




*이과장: 오사원, 바빠요?

*오사원: 네, 지금 굉장히 바쁩니다! 야근하게 생겼어요.ㅠㅠㅠ

*이과장: 바빠서 주변 정리가 미흡했던 거군요. 일 정리되면 주변 정리도 좀 하세요.

*오사원: 알겠습니다. 이것만 마무리하고 정리할게요!



*이과장: 고사원, 바빠요?

*고사원: 아, 과장님! 괜찮습니다. 뭐 도와드릴까요?

*이과장: 나는 안 도와줘도 되는데, 주변 정리 좀 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고사원: 아... 알겠습니다. 바로 할게요.




오사원이 암기한 대로, 열린 마음으로 반응했지만, 날아오는 것은 뾰족한 잔소리뿐! 오히려 방어할 명분이 사라졌습니다. 이 상황에선 오히려 오사원이 정당한 이유를 대고 잔소리를 피해갈 수 있었어요. 바쁜 사정상 '못'한 겁니다. 반대로 고사원은 '안' 한 것처럼 되었어요. 심지어 원래 지저분한(?) 이미지로 굳을 위험도 있네요. 반대로 뜻밖의 복이 찾아오는 예도 있습니다.




*이과장: 오사원, 바빠요?

*오사원: 네, 지금 굉장히 바쁩니다! 야근하게 생겼어요.ㅠㅠㅠ

*이과장: 아! 점심에 외주자 분들 오셔서 같이 식사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군요. 거리가 좀 있는 호텔이라서... 알겠어요.



*이과장: 고사원, 바빠요?

*고사원: 아, 과장님! 괜찮습니다. 뭐 도와드릴까요?

*이과장: 아! 점심에 외주자 분들 오신다고 하는데 같이 식사할까요? 거리가 좀 있는 호텔이라서 시간이 좀 걸리는데, 여유롭게 먹고 옵시다.

*고사원: 오와! 완전 좋죠! 알겠습니다.


말귀 뻥 1.png




처방전

또 다른 상황은 무궁무진합니다. 상황에 따라 유리한 답이 바뀌어요. 그래서 암기로 되지 않습니다. 외부적인 요소를 잘 파악해야 해요. 이런 담화는 '화자(말하는 사람)' + '청자(듣는 사람)' + '메시지(나누는 이야기)' + '상황(이야기가 오고 가는 맥락)'으로 구성됩니다. 하나하나 볼게요.


1. '화자' 파악하기


: 이과장은 어떤 사람인가요? 평소 어떤 화법을 쓰나요? 돌려 말하기를 자주 하나요? '바빠요?'라는 말을 자주 하나요? 자주 한다면 그 상황은 어떤 상황이었나요? 나름 데이터를 모으는 겁니다. 직접적으로 말하는 사람인지, 에둘러 말하는 사람인지에 따라 1차원적으로 이해할지, 복합적으로 이해할지 태도가 정해지니까요. 반복되는 데이터로 화자를 파악할 수 있어요. 처음에 삐끗하더라도, 그 상황을 꼭 기억해 두세요! 오답노트에 기록하듯이!ㅋㅋㅋ


2. '청자' 파악하기


: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정말 눈치가 없는 건가요? 아님 알면서 회피하는 건가요? 은연 중에 일 떠맡을까봐 피할 수도 있어요.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반응할 수도 있으니, 스스로의 심리를 잘 파악해 보세요! 정확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해하고 추론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내가 저 사람과 따로 대화를 나누기 싫다고, 아니면 추가로 더 일을 하기 싫어서, 여러 이유로 무조건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척... 하고 있다면, 그것 또한 파악해야 합니다! 척만 하다가 진짜 멍청해지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어리버리하게 이미지 굳어지면, 실제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어요!


3. '메시지' 파악하기


: 사실 그대로, '바빠요?" 이 글자는 귀에 쏙쏙 들어왔는지 확인합니다. 숨은 의미는 아니더라도, 그 자체로 파악하는 것이 우선 중요해요. 차라리 추측 없이,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고 뒤에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이 나을 수 있어요. "바쁩니다. 왜 그러세요?", "그렇게 안 바빠요. 무슨 일 있나요?"


4. '상황' 파악하기


: 이번 사례의 포인트! 상황과 맥락을 통해 메시지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추론의 힌트가 될 수 있어요. "지금 회사 일이 많고 바쁜 상황인가?", "여유롭게 커피 먹을 수 있는 타이밍인가?", "주변 상황이 지저분한가? 잔소리 타이밍인가?" 등등 여러 요소의 퍼즐을 활용하세요. 안테나를 쫑긋 세워야 상황에 맞는 반응도 가능하니까요. 상황에 따라 평소 화자의 패턴이나 관계 데이터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습니다. 평소처럼 커피 한잔 하시려나 ~ 가볍게 반응 했다가 크게 혼나고 상처 받을 수도 있어요! 방심은 금물! 센스 충전!


'말귀'라는 것은 복합적인 요소입니다. 이렇게 4가지 구성 요소를 차근차근 분석하면 안테나를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돼요.



말귀 뻥 2.png




keyword
이전 01화듣기란 무엇일까, 구성 요소 이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