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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듣고 이해하기_당신은 넵무새인가?

말귀가 어두운 당신을 위한 처방전

by 이승화

다음은 듣고 이해하는 단계입니다. 소리 그대로 입력이 잘 되었으면, 그 소리의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해야 합니다. 잘 듣는 사람은 이 과정이 매끄럽게 잘 이어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글을 읽을 때, 글자를 소리 내어 읽는 것과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을 구분하는 것처럼요. 우선 직접 언급된 말을 이해하는 것부터 해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한 학생에게 “뒤에 있는 문 닫아줘!”라고 했을 때, 이 소리를 정확히 듣고 “뒤에 있는 문 닫아줘!”라고 말하는 것은 그 소리를 잘 들었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다음, 듣고 이해했다면 바로 문을 닫는 행동을 했을 겁니다. 소리와 의미의 차이죠.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아빠 샘이 아들 밴틀리를 훈육하는 부분이 나와요.

*샘: 아빠 화났을 때 뭐라고 하랬지? '네' 해야지.

*밴틀리: 네 ~

*샘: 알았어?

*밴틀리: 어

*샘: '네' 하라고 했잖아.

*벤틀리: 네!

*샘: 알았어?

*밴틀리: 어!

*샘: 아빠가 "알았어?" 물어보면 네가 '네'라고 하는 거야.

*밴틀리: 네~

*샘: "어" 하지마, 알았지?

*밴틀리: 응

*샘: '네'하라고 했지.

*밴틀리: 네.

*샘: 그래, 아빠가 화났을 때는 '어' 하지마. 알았지?

*밴틀리: 응

*샘: '네' 하라고

*밴틀리: 네 ~

*샘: '어' 하지 말라고. 알았지?

*밴틀리: 응 ~


네~.jpg


왜 이런 상황이 생길까요? '이해'가 누락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아빠가 화가 났을 때, 무언가 잘못한 상황에서는 반말을 하지 말라는 의미인데, 그 의미가 쏙 빠지고 청자가 '네'를 하느냐 마느냐만 남았어요. 그러니 기계적으로 '네'를 하라면 하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적용이 안 됩니다.


직장인들도 “넵무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기계적으로 “넵! 넵. 넵~”을 외치지만, 실제로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죠. 습관적인 반응, 영혼 없는 리액션은 위험한 측면이 있어요. 적절한 반응을 하지 않고 넘어가서 나중에 일이 터지면, “그때, 네~ 라고 했잖아!”라며 책임을 뒤집어 쓸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정확히 따라하기’에서 이해의 영역으로 넘어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고나서 알맞은 반응을 해야죠.




많은 분들이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어요. 이해의 시작은 호기심을 갖는 것입니다. "왜 저런 말을 하지?" 의문을 갖는 거예요. 친절한 화자는 차근차근 말을 해줍니다.


*이과장: 여기 지나다니는 길목이 좁으니까, 이 짐을 치우면 좋겠어요.

*오차장: 글자가 화려해서 가독성이 떨어지니까, 폰트를 바꾸면 좋겠어요.


이렇게 이유까지 말해주면 이해하기 좋겠죠. 하지만 많은 화자는 "이 짐 좀 치워요.", "폰트 좀 바꿔요."라고 짧게 말합니다. 짐을 치우라고 해서 치웠는데, 다른 길목을 막으면 또 지적 받겠죠? 폰트를 바꾸긴 바꾸었는데, 더 예쁜 폰트로 바꾸면 또 지적 받겠죠? 그래서 이해를 하고 반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라는 대로 하는데, 왜 난리여~'라는 반응이 나오죠. 의도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시작점입니다.




구체적으로 능력이 필요한 경우, 어휘력과 배경지식의 기본기를 다지면 도움이 됩니다. 읽기와 듣기 모두 외부 정보를 수용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같은 맥락이 적용됩니다. 우리가 팝송을 듣거나 외국 영화를 볼 때도, 아는 단어는 더 생생하게 들리죠. 그리고 아는 문화권의 이야기나 장르의 이야기는 이해도 더 잘 됩니다 제 친구는 법정 드라마를 좋아하는데, 법정 전문 용어나 판결 시스템을 빠삭하게 꿰고 있더라고요. 이런 상황에서는 배우의 전달력이 안 좋다고 해도, 더 쉽게 이해합니다. 대신 충실한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에요.


우선 추천드리는 방법은 맞춤형 어휘 목록을 만드는 것입니다. 내가 듣지 못해서 힘든 상황, 긴장하는 상황에서 자주 나오는 단어를 미리 학습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학교 수업시간이라면 그 수업시간에 중요한 학습 개념어를 미리 공부하는 겁니다. 그럼 수업 내용이 귀에 더 잘 들어올 거예요.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주 사용되는 전문 용어들을 미리 정리해서 공부하면 상사의 말도 잘 들리고, 업무 파악도 훨씬 잘 됩니다. 대화 도중에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수시로 검색합니다. 모르는 말인데, 흐름상 중요한 것 같을 때는 빠르게 알아봅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하기 힘든 환경이면, 살짝 물어보는 것도 괜찮아요. 그 일부분 흘려 보냈다가 더 많은 내용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배경지식을 기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관련된 지식을 미리 선별해서 학습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분명한 목적을바탕으로 한 범위 조절입니다. 모든 것에서 다 배경지식을 쌓을 수는 없으니까요. 학교 수업이라면 다음 수업에 대해 예습을 하고, 전체 교육의 흐름을 파악하면 이해가 훨씬 잘 됩니다. 업무도 관련 지식이 쌓이면 훨씬 능숙하게 알아 듣고 일할 수 있어요. 그래서 신입사원 때 어리버리, 말귀 못 알아 듣는다는 소리를 듣다가도 연차가 쌓이면서 자연스레 일잘러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관련 지식이 쌓였기 때문입니다. 저또한 새로운 분야의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할 때, 꼭 관련된 책이나 영상을 미리 살펴봅니다. 그럼 잘 들리고, 이해도도 쑥쑥 올라가더라고요.




지금까지는 선행되는 노력이 필요했다면, 앞으로는 집중력이 필요한 방법들을 소개할게요. 기록하면서 듣는 방법입니다. 메모가 대표적이고, 힘들면 녹음한 후 다시 들으세요. 기록할 때 중요한 것은 선택과 집중이에요. 말이 손보다 빠르니, 다 옮겨 적을 수 없답니다. 필요한 것을 골라서 잘 적어야 해요. 그 기준을 세우기가 쉽지 않을텐데요. 그 기준은 분명한 듣기 목적에 있습니다.


학습 중이라면, 어느 개념이 시험에 나올까? 선생님이 강조하는 부분일까? 업무 중이라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언제까지 해야 할까? 등입니다. 저는 군대에서 듣고 메모하는 습관을 들였어요. 가슴 주머니에 항상 손바닥만한 수첩을 들고 다녔는데요. 그곳에는 항상 소대장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적었습니다. 회의 내용은 거창하게 사단 – 연대 – 중대 순으로 쭉쭉 내려오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바로 실행해야 할 일이니까요. 그 관점이 업무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회사의 방향 어쩌구저쩌구 ~ 결국 우리 연구개발팀이 해야 할 일, 우리 파트가 해야 할 일을 중심으로 정리하면 큰 구멍은 생기지 않더라고요.


목적 외에 꿀팁 중 하나는 표지어입니다. 표지판처럼 안내해주는 말들이에요. 사람마다 언어 습관이 있고, 강조하는 방법이 다양해요. 친절한 선생님들은 “이 부분 시험에 꼭 나오니까, 잘 들어라!”와 같은 친절한 안내 멘트도 해주죠.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이야기하면 그것도 강조하는 포인트니 중요한 것이고요. 이런 저런 말을 하다가 “정리하면 ~, 내 말은 ~, 사실은 ~, 그러니까 ~,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 등의 추임새로 힌트를 주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딱! 귀를 쫑긋하며 기록해야죠. 이 모든 활동에는 집중력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다음은 기록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억력을 활성화하는 방법이에요. 듣고 따라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이해하는 과정까지는 잠시나마 들은 내용을 머금고 있어야 합니다. 아주 빠르게 휘발되거나 반대쪽 귀로 빠져 나가면, 뭐 따라하고 이해할 것도 없으니까요. 그러기 위해선 그 대화의 장소나 상황, 분위기 등의 비언어적인 부분을 활용해 기억하는 겁니다. 이미지화하는 것도 좋고요. 다양한 방법으로 내용을 붙잡아 두고, 생각해요. 무슨 소리였고, 무슨 의미였는지. 누가 말했는지, 어떤 표정이었는지 등등 다양한 요소를 기억에 활용합니다.


우리는 의미 있는 것들을 잘 기억합니다. 달력에 있는 수많은 날짜 중에서 기념일을 콕 집어 기억할 수 있듯이 말이에요. 첫 여행, 첫 만남, 첫 키스 등 의미를 부여하면 보통의 순간도 특별해지고, 오래 머릿속에 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의미 있는 것들과 연결지어 기억하는 유의미 학습법도 있어요. 태양계 행성(수금지화목토천해명) 이름 외울 때 선생님이 "태수야~ 금지야~ 화목토일에는 천해명에 가자!"라고 했던 것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그때 반에 태수가 있었거든요!ㅎㅎㅎ 들으면서 간단히 의미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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