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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단계: 듣고 생각하기_당신은 팔랑귀?

말귀가 어두운 당신을 위한 처방전

by 이승화

지금까지 충실하게 듣는 연습을 했다면, 이제 생각을 더하는 단계입니다. 추론보다 나아가 목적을 정하고, 해석을 하고, 판단을 합니다. 들리는 대로 듣는 것을 넘어서 좀더 주체적으로 듣는 연습입니다.


어찌보면 생각이란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 당연함이 무서워요. 나도 모르게 상대방의 의도를 곡해하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거나, 반대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이걸 바탕으로 반응하면 동문서답에 이어 싸움까지 날 수 있어요. 그래서 4단계입니다. 1단계부터 차근차근 ~ 쌓아 올리는 것이 중요해요. 우리가 "말하면 말한대로 좀 들어!"라고 하잖아요? "1단계부터 다시 해!"라는 말과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듣기가 진행되는 그 순간에 어떻게 분리하냐고 묻습니다. 분리가 안 되면, 1단계 사실적 이해 듣기와 4단계 생각하며 듣기가 충돌하는 것이 아니냐고요. 그럴 때 저는 운전 예를 많이 들어요. 저는 겁이 많아서 운전을 즐기지 않고, 긴장 상태로 핸들을 잡습니다. 신입 사전 시절에 회사 차를 운전하는데, 공용으로 쓰다 보니 이전 운전자의 흔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잔소리 들은 적도 많아요.


*회사 선배: 설마 사이드미러 한 쪽 접고 다닌거야?

*초보 승화: 출발할 때는 안 그랬던 거 같은데... 왜 접혀 있죠...

*회사 선배: 너 운전할 때 사이드미러 안 봐??

*초보 승화: 앞에 보고 신호 보느라 정신 없어요...

*회사 선배: 와... 너 백미러도 안 보지? 이거 각도가 안 맞네.

*초보 승화: 뒤에 볼 정신이 어디 있어요... 앞에 보기도 바쁜데...

*회사 선배: 동시에 봐야지! 그러다 사고나! 중간중간 보면서 해야지!

*초보 승화: 그게 가능한가...?


그 이후로 의도적으로 좌우 확인하는 연습, 뒤에 보는 연습을 거치고 지금은 나아졌어요. 이런 단계적 연습이 모여 퍼즐을 완성합니다. 능숙한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다 알아서 하지만, 초보들은 하나하나가 다 힘들어요. 이 부분을 이해해야 체계적은 학습이 가능해져요.


새로운 것을 배울 때마다 느끼는데, 잠깐 요가를 배우던 시절의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시작할 때 좌우 균형을 맞추어 바르게 양반다리(?)하며 앉도록 해요. 맞은 편에 있는 거울을 보는데, 좌우 균형이 안 맞는 겁니다. 좌골(?)이라는 엉덩이 뼈의 존재도 처음 알았고, 코어의 힘을 주고 앉는 것도 힘들었어요. 똑바로 앉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어요. 그런 기초 단계가 있어야 내 몸을 제대로 알고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듣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워낙 자연스러우니 가볍게 대하는 경우가 많지만, 잘 듣기는 힘들어요. 훈련의 시기니 1단계~4단계 순서를 나누지만 능숙한 청자는 동시에 진행됩니다. '아! 이렇게 말하는 구나. 이런 의미 아닌가? 저거 진짠가? 흠...' 머릿속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이후에 적절한 반응으로 이어지는 겁니다.




팔랑귀.png


귀갸 앏다, 팔랑귀~ 라는 말 들어 보았나요? 줏대가 없는 사람, 사람들 말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사람을 주로 이야기합니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죠? 팔랑귀가 되지 않으려면 기준을 잡고, 깊이 있게 생각해야 합니다.


팔랑귀: 줏대가 없어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 잘 흔들리는 성질이나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귀가 얇다: 남의 말을 쉽게 받아들인다.


몇 가지 깊이 있는 생각법을 알아볼게요. 첫째, 듣기 목표 설정하기. 읽기의 목적을 두고 읽듯이, 듣기의 목표도 설정할 수 있어요. 그 목표가 듣기 내용의 판단 기준이 되고 적절한 반응과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위로해 주어야지!"라는 목표를 갖고 듣는 것과 "사업 가능성을 검토해야지!"라는 목표를 갖고 듣는 것은 차이가 있어요. 전자는 사실 관계와 상관 없이 끄덕여주고, 맞장구치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해요. 들으면서도 "어느 부분에서 추임새를 넣을까?, 어떻게 공감의 메시지를 전할까?" 등을 고민합니다. 후자에서는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나를 속이지는 않을까?, 팩트체크는 되었나?, 압박을 해볼까?" 등을 생각하며 듣습니다.


재미있는 영상에서는 MBTI를 가져와서, 냉정한 대답을 하는 상대방에게 "너, T야? 왜 공감을 못해?"라며 톡 쏘기도 합니다. 성향도 중요하지만, 전략적인 반응도 충분히 가능해요. T(시간).P(장소).O(상황)에 맞추어 옷을 입듯이 목표를 정하고, 태도를 설정하는 것입니다.


"음~ 지금은 우선 상대방의 감정에 공감해 주어야겠군."

"이런... 문제가 꽤 심각한데, 해결 방법을 고민해 보자!"

"흠... 누구의 잘못일까? 제대로 된 분석이 필요하겠는데."


둘째, 사실과 의견 구분하여 듣기입니다. 비판적 듣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확인 절차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기분 나빠할 수 있거든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생각의 출처'입니다.


무슨 내용을 말하느냐, 그 다음은 그 내용을 어떻게 알았느냐를 점검해야 합니다. 어떤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사실'인지, 자신의 머릿속에서 나온 '의견'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해요. 그걸 바탕으로 내가 믿어야 하는지, 가볍게 참고하고 넘어가야 하는지, 교정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정확한 확인을 위해서 질문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 말 어디서 들었어? 그 내용 어떻게 알게 되었어?"


기분 나쁘지 않게, 진정 궁금해서 그렇다는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해요. "또 거짓말 아냐?"와 같은 뉘앙스면 갈등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말하는 사람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던 내용이, 이런 질문을 통해 정리되는 경우도 있어요. 상황에 따라 적절한 비판이 더해지며 건강한 상호작용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이야기해? 확인해 봤어?


상대방이 알고 있는 내용이 객관적이고 일반적인 것인지, 아니면 지엽적인 개인의 의견인지 확인하는 질문이에요. 쉽게 말해 크로스 체크! 다수가 유사한 내용을 이야기 할수록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 권위자일수록 좋고요. 그래서 '학계의 정설은 ~'과 같은 표현을 종종종 들을 수 있어요. 다른 의견도 있긴 하지만, '정설'은 이 의견이라는 것이죠.


혹시 어떤 의도가 있는가? 이 내용으로 누가 이익을 보나?


대화는 심리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결합되곤 합니다. 특히 '뒷담화'와 같은 대화는 의도가 뚜렷하죠. 누군가를 음해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정당성을 인정 받고 싶은 경우가 많아요. 이런 숨은 의도를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가져온 이유, 저런 의견을 곁들이는 의도 등등에 대해 생각해 보아요. 그럼 듣는 내용의 실체가 좀더 명확해 지기도 합니다.



셋째, 듣고 적용하기입니다. 열린 질문, 인문학적인 질문에 큰 도움이 되는 듣기 방법입니다. 듣고 흘릴 것인가, 듣고 삶에 적용할 것인가, 이 문제는 중요하기 때문에 앞에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해요. 요상한 내용을 잘못 듣고 적용했다가 큰 피해를 볼 수 있으니까요. 의미 있는 내용에 '나의 상황', '현재의 문제'를 대입해 보거나,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사고를 확장할 수 있어요.


이 적용도 단계를 쪼개어 생각할 수 있어요. 1단계: 바로바로 실천할 내용을 생각하며 방법입니다. 최근에 '탕후루'가 이슈입니다. 여러 의사 선생님들이 뉴스에 나와 '탕후루'가 위험하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내과 의사, 치과 의사, 약사 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를 듣고, '탕후루'의 위험성에 대해 이해하게 되어요. 그리고 더이상 탕후루를 먹지 않기로 합니다. 두 번 먹을 것을 한 번으로 줄이는 것부터 시작하죠. 이렇게 듣고 삶에 적용할 수 있어요.


2단계: 나의 상황을 대입해서 가치관을 자극하며 듣는 방법입니다. 올해 트렌드에 대해서 열심히 강의를 듣고 있어요. 어떤 내용인지 파악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생각을 더할 수 있습니다. "지금 7가지 트렌드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는데, 이 트렌드 중 내 분야에 접목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질문으로 미래 방향성을 정할 수 있어요. 인문학적인 질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뉴스나 교양 방송을 듣다가, 대화 중에도 "나의 가치관'을 중심으로 생각할 수 있어요. "내가 생각하는 정의란 무엇일까? 공정이란 무엇일까?" 시작은 1인칭 나입니다. 자연스럽게 깊은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3단계: 창의적으로 상상하며 듣는 방법입니다. 사람들의 말을 듣다 보면 이런저런 상상에 빠지는 순간들이 있어요. 제대로 집중하지 않고 상상에 빠지면 매너 없는 듣기 태도이지만, 내용을 이해한 후에 자유롭게 상상하는 것은 창의적인 듣기 태도가 될 수 있습니다. 엉뚱한 질문들이 세상을 바꾼다고 하잖아요? 맥락만 잘 유지한다면, 대화의 확장이 될 수 있습니다. 탕후루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럼 건강에 좋은 탕후후를 만들 수 없을까?"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고요. 트렌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10년 뒤 미래의 모습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그 이후의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궁금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듣느냐, 어떤 질문을 떠올리느냐, 어떤 삶을 사느냐! 모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요. 이렇게 듣기는 사고와 직결됩니다. 잘 들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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