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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듣고 추론하기_숨은 의도는?

말귀가 어두운 당신을 위한 처방전

by 이승화

정확하게 잘 들어도 부족한 영역이 있습니다. 말은 특히 불완전한 문장이 많고, 함축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그런 부분은 듣고 추론해야 하는 영역입니다. 텍스트 자체가 중의적인 표현인 경우도 있고, 텍스트 영역 밖에 있는 요소들이 텍스트에도 큰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센스가 있다/없다’라고 두루뭉슬하게 표현하기도 하지만 결국 고차원적인 능력이에요. 분명 이것도 학습하면 향상될 수 있습니다.


예능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배우 신형탁이 지인들과 국수를 먹는 장면이 있는데 화제가 되었습니다.

*심형탁: 국수 진짜 맛있다.

*지인이자 국숫집 아들: 그러니까 내가 사는 거죠.

*심형탁: 아니야! 네가 왜 사! 내가 살거야!

*지인이지 국수집 아들: 그니까… 내가 먹고 산다구요.

*심형택: 됐어, 내가 산다! 그냥 먹어!


국수집.png


텍스트 상으로 사다(buy)와 살다(live)의 활용형 ‘사는’은 같은 소리가 납니다. 문장만 보면 충분히 오해할 수 있고 해석이 갈릴 수 있는 부분이에요. 여기서 추가적으로 필요한 것이 화자에 대한 정보, 청자와의 관계, 대화의 맥락입니다. 저 말을 한 사람이 ‘국숫집 아들’이라는 외부 정보, 여기가 그 식당이라는 정보가 더해지면 해석이 좁혀집니다. “국수가 맛있으니까, 가게가 장사가 잘 되고, 그 덕에 내가 옷 입고 밥 먹고 살고 있는 거죠!”라고 풀어서 이야기하면 좋겠지만, 구어체의 특성상 효율적으로 함축된 문장을 이야기해요. 생략된 부분은 우리 청자가 추론해서 채워야 합니다. 해석할 때 이런 문맥 단서를 적극 활용하면 좋아요.




이런 상황은 아이들과 대화할 때 많이 등장합니다. 유치원생 형한테 “동생, 잘 보고 있어~”라고 하면 형은 책임감을 갖고 아이를 봅니다. 큰 눈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아이를 쳐다 봐요. 부모님은 동생 잘 보살피고 있으라는 의미의 보다(care)였을텐데, 유치원생 형은 눈으로 보다(look)라고 이해했어요. 아이는 정확하게 듣고 이해했지만, 맥락적 요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또 이런 사례도 있어요. 어린 아이와 농장 체험을 하면서, 엄마가 “고추에 물 줘~”라고 하며 호스를 줬더니 갑자기 바지에 갖다 대는 겁니다. 더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아도 되겠죠?


그래도 아는 단어는 여러 의미 중에서 골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맥락을 활용해서 범위를 좁혀 나갈 수 있어요. 하지만 모르는 단어는 어떻게 할까요? 검색도 힘들고, 묻기도 힘들다면? 텍스트 속 단서를 최대한 활용하고 배경지식을 활성화해서 어휘의 의미를 추론합니다. 예를 들어, 최선책이라는 표현이 나왔는데, 낯설어요. 하지만 “최선을 다했다!”이런 표현은 익숙해요. 그럼 이 배경지식을 활용해서 “최선을 다한 무언가구나”라고 추론하는 겁니다. 뉴스에서 “이번 사고는 인재였다.”라는 표현을 들었는데 ‘인재’란 어휘가 낯설어요. 그때 ‘사고’라는 단어를 단서로 삼고, 사람을 뜻하는 ‘인;을 접목하면 ‘사람이 만든 사고’ 정도의 의미 추론이 가능해요. 거기다 재난, 재해라는 단어에서 ‘재’까지 가져오면 더 완벽해집니다.


문법 지식도 활용해서 예측하며 들을 수 있습니다. 문장에서 성분의 호응 관계가 정해진 경우들이 있어 의미 해석. 어조 파악에 도움이 됩니다. 대표적으로 부사어 ‘결코, 전혀, 절대로’ 뒤에는 부정적인 표현이 옵니다. (예)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 “전혀 배고프지 않다.”, “절대로 양보하지 않겠다.” 또 부사어 ‘마땅히’는 ‘~ 해야 한다’와 잘 어울립니다. 의무와 책임을 부가하는 느낌이죠. ‘만약’이라면 가정법으로 ‘~일 것이다’가 나오리라 예측할 수 있고, ‘왜냐하면’이라면 뒤에 그 이유 ‘~때문이다’가 나올 것을 기대할 수 있어요. ‘마치’가 나오면 비유적 표현으로 ‘~같다’가 나올 확률이 높아요. 그럼 무엇을 무엇에 비유하는지 찾아야겠죠. 강조할 때 많이 쓰는 것 중에 “비록 ~ 일지라도 ~할 것이다”라는 표현이 있어요. 앞은 한계이고 뒤는 목표라는 것을 추측하며 들을 수 있어요.


이렇게 어휘, 문장 단위로 예측하는 것을 넘어 다음 단락, 내용과 흐름을 예측하며 들을 수도 있습니다. ‘큰 단위’로 들으며 조금 더 거시적인 시각을 갖는 거예요. 세부적인 어휘, 내용, 문법 지식은 살짝 넘어가고 큰 그림을 그려 보는 겁니다. 우선 예측을 위한 단서를 미리 습득하면 안정적인 예측이 됩니다. 회의 전에 미리 회의안을 받는다거나, 수업 전에 강의계획서나 참고 자료를 미리 받은 후에 살펴보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배경지식도 쌓이면서, 앞으로 진행될 대화의 양상도 예측할 수 있어요.


자료가 없는 상태라면 즉흥적으로 예측해야 합니다. 이 훈련이 되려면 우선 반복된 패턴을 인식해야 해요. 특정 장르의 소설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은 다음 내용을 예측하면서 즐겨요. 그리고 많은 확률로 예측이 적중합니다. 그 장르의 특성에 익숙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특정 글의 구조나 상대방의 화법 구조가 익숙하면 그 흐름을 충분히 예측하며 들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이전 회사의 대표님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어요. 그분은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전에, 성경의 비유를 자주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누구누구가 핍박 속에서 고난을 겪었다가 극복한 이야기를 실컷 해주시고, 우리 회사도 이렇게 역경을 극복하자! 이런 방식의 스토리텔링 패턴이었어요. 회의 초반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름, 지역 이름 등등을 하나하나 새겨 들었어요. 하지만 패턴을 알고 나서는, 이야기의 메시지 중심으로 듣고 회사에 적용할 부분을 예측했어요. 어김없이 뒷부분에 적용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거기에 더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예측도 적중하는 경우가 많았고요. 훈련이 어느 정도 된 상태에서는 예측하며 들으며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어요. 효율적인 듣기가 가능한 것이죠.




하지만 기존 텍스트를 벗어난 과한 추론은 위험할 수 있어요. 충분한 데이터가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기존의 편견과 작은 경험으로 성급한 일반화를 하거나 곡해할 수 있으니까요. 괜히 예측했다가 민망한 경험도 생길 수 있습니다. 예측이 틀렸을 때는 적절한 전략 수정이 필수입니다.


*아들: 엄마, 오늘따라 유난히 아름다우시네요.

*엄마: 뭐여, 또 용돈 필요하니?

*아들: 아! 그런거 아니라고!

*엄마: 뭐가 아니야, 뻔하지!

*아들: 오늘 장학금 받아서, 엄마 선물 사왔는데 ㅠㅠ

*엄마: 아이고, 미안하네.


내용에 집중해서 듣는 것이 익숙해지면, 이제 주변 요소도 신경 쓸 필요가 있습니다. 언어 그 자체에 담기지 않는 비언어적 요소(몸짓, 표정, 분위기 등)와 반언어적 요소(억양, 강세, 높낮이, 빠르기 등)가 중요한 의미를 전달하기도 합니다.


*오대리: 과장님, 여기 보고서입니다.

*이과장: 됐다, 됐어.


이 맥락에서 이과장의 언어적 텍스트보다 중요한 것은 비언어적, 반언어적 텍스트입니다. 한숨을 쉬면서 “됐다, 됐어…”라고힘 없이 이야기 했다면 보고서가 마음에 안 든 것이죠. 가망 없다고 생각하는, 포기하는 듯한 부정적인 뉘앙스입니다. 하지만 미소를 띠면서 큰 소리로 “됐다, 됐어!:라고 했다면 보고서가 마음에 든 것이죠. 작성자를 껴안을 태세로 긍정적인 뉘앙스를 느낄 수 있어요. 이런 부분도 추론의 요소로 꼭 챙겨 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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