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김에 독서모임
주말에 뭐 했냐고 인사치레로 많이들 묻습니다. 그때 독서모임을 했다고 하면,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묻습니다.
독서모임? 그거 노잼 아냐?
인정하기 싫지만,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노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노잼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모임도 예외는 아닙니다. 같은 노잼 그룹에 속합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와! 멋지다!', '똑똑해 보인다!' 이런 반응 속에도 노잼이란 인식은 깔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해의식 아니냐고? 비교를 해보면 티가 납니다.
"주말에 뭐 했어요?"
"영화관에서 '파묘' 핫하길래 봤어요!"
"와! 재밌었겠다! 인기 많던데, 어땠나요?"
"주말에 뭐 했어요?"
"부산 여행 다녀왔어요!"
"와! 재밌었겠다! 뭐 했어요?"
"주말에 뭐 했어요?"
"만화방 다녀왔어요!"
"와! 재밌었겠다! 뭐 보나요?"
"주말에 뭐 했어요?"
"독서모임 했어요!"
"와! 멋있다!"
소중한 주말에 노잼 독서모임을 하느라고 고생했다! 자신을 이겨내고 유익한 시간을 보내서 멋있다! 물론 건강하고 유익한 시간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인정합니다. 하지만 너무 건강해서 손이 가지 않는 건강식처럼 멀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단짠단짠의 조화 마라탕후루가 인기 많은 이 시대에 건강함의 영향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재미,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우선 책은 재미있습니다. 아니, 재미있는 책도 많습니다. 여기서부터 반발이 예상되지만 좀 더 들어주세요. 소설을 읽는다면 이야기의 맛에 빠질 것이고, 에세이를 읽는다면 작가의 글빨에 키득키득할 것이고, 비문학을 읽는다면 새로운 지식을 알아가는 재미를 느낄 것입니다.
장류진 작가의 소설집 <연수>를 읽으며 공감 가는 직장인 이야기와 자전거 모임 이야기에 유쾌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또 김혼비 작가의 에세이 <다정소감>을 읽으며 화려한 글빨에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한병철 작가님의 <서사의 위기>를 읽고 지금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맥락의 부재를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통찰력!
나는 갑자기 김솔통 같은 글을 쓰고 싶어졌다. 지구상의 중요도에 있어서 김도 못 되고., 김 위에 바르는 기름도 못 되고, 그 기름을 바르는 솔도 못 되는 4차원적인 존재이지만, 그래서 범국민적인 도구적 유용성 따위는 획득하지 못할 테지만 누군가에게는 분명 그 잉여로우면서도 깔끔한 효용이 무척 반가울 존재.
<다정소감>, 김혼비
책에는 감동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자주 묻는 질문 중에 "책을 읽고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있나요?"가 있습니다. 생각보다 꽤 있다. 눈물 주르륵은 아니라도 코끝이 찡했던 경험은 많이들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지하철에서 눈물을 흘리는 입장에서, 이 감동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카타르시스를 느껴 보았나요? 울고 나면 뭔가 개운해집니다.
가장 최근에 흘린 지하철에서 눈물은 소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제제 때문입니다. 성장 소설의 주인공,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제제를 통해 사랑의 의미, 보살핌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겼습니다. 이 어린 소년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말을 할까요. 오, 나의 제제... 다행히 늦은 지하철이라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엄마, 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요. 내 풍선처럼 됐어야만 했어요.”
에세이 중에는 박지현 작가의 <참 괜찮은 태도>가 버스를 타고 퇴근하는 저를 울렸습니다. 옆좌석에 앉은 사람은 제가 실연당했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꺼억꺼억 울어서리... 앞이 보이지 않는 할머니의 배려심에 저는 넋을 놓아버렸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보고 있겠다고... 잘 살라고... 스쳐가는 인연도 소중하게 대하시는 어르신, 그저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내 여기, 벽에 창틀 있는 여기까지밖에 못 가. 더 나가면 내가 돌아올 수가 없어. 그럼 잘 가고, 가서 재미나게 하는 일 잘하고, 잘 살아. 그래도 내가 여기서 보고 있을게. 내가 앞은 안 보여도 그래도 니 저 골목 끝으로 나갈 때까지 보고 있을게.”
사실 비문학을 읽고 눈물을 흘리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슴 먹먹해지는 경우는 많아요. 빌 맥과이어 작가의 <기후변화, 그게 좀 심각합니다>에서는 지구열대화로 인한 여러 피해가 나옵니다. 폭염 때문에 여행 가기 힘든 게 문제가 아니라, 더워서 짜증 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목숨이 오고 갈 수 있다는 사실. 거기다 가장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가장 극단적인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턱 막혀 왔습니다.
2003년 폭염으로 7만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 가운데 상당수가 야간 기온이 24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도시에서 더위를 피할 수 없었던 노인들이었습니다.
책에 대한 어필로 시작했지만,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분도 많을 것입니다. 다른 미디어들과 비교하면 말빨이 조금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히든카드를 제시합니다. 바로 독서모임이 재미있는 이유는 사람 때문입니다. 저는 독서모임에서 만난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북렌즈에서 몇 커플이 결혼했습니다. 연애까지만 한 커플은 더 많을 겁니다. 이 정도면 설명이 충분하죠?
얼마나 모임이 재미있으면 막 커플들이 탄생하고 그럴까요? 진정성 있는 대화를 오고 가며 서로의 매력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화가 안 통해서 헤어지고, 싸우고, 관계가 멀어집니다. 하지만 독서모임에서는 책이라는 공통된 맥락을 통해 자연스럽게 대화가 진행됩니다. 대화 소재가 떨어지지를 않아요. 책을 기반으로 넓고 깊은 대화 주제, 나눌 이야기가 넘쳐납니다.
책에서 조금 흥미가 부족했다고 해도, 독서모임에서 충분히 회복됩니다. 상호 존중과 공감을 바탕으로 한 대화는 서로를 행복하게 합니다. 자극적이고 재밌는데 기분이 나쁜, 공허한 쾌락이 아니라 속이 알찬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북클럽을 만들고 첫 모임을 진행했어요. 독서모임을 처음 해보신 분들이라 책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자 자유도서 모임을 진행했어요. 90분 정도 독서모임을 한 후에 동료분이 말했습니다. 그냥 새삼... 기분이 무척 좋아진다고요!ㅎㅎㅎ 별거 없는데,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독서모임입니다!
이래도 노잼인가요? 흠...
그럼 다음에는 아주 건강하고 유익한 이유 100가지를 만들어 오겠습니다.
기다려 주세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