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잘러의 어휘력
그래서 시급이 얼마?
한 커뮤니티에 이런 질문이 있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지원하는 중인데, 괜찮은 곳을 찾았어요. 공지사항을 보니 시급은 10,000원이고 3개월간 지각, 결석 없을 시 3개월 후 시급 12,000원으로 소급 지급된다고 적혀 있었어요. 이때 이 지원자는 고민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급이 10,000원이라는 건지, 12,000원이라는 건지 헷갈리죠. 그래서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시급이 얼마인가요?
대충 보면 인턴처럼 3달간 시급 10,000원 주고, 좀 적응하게 되면 12,000원으로 준다고 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럼 하루 5시간씩, 20일 일한다고 했을 때, 100만원 정도 받을 수 있습니다. 3개월간 월 100만원을 받고 그 이후에는 월 120만원씩 받겠네요. 이렇게 계산했을 때, 1년을 일하면 300만원(3개월)+1080만원(9개월)=1380만원을 받는 겁니다.
하지만 소급 적용은 다릅니다. 지각, 결석 없을 시 ‘12,000원’을 지난 3개월에 적용해서 차액 금인 60만원을 더 받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3개월 이전으로 다니면 시급 10,000원이고 3개월 이후로 다니면 처음부터 시급 12,000원인 겁니다. 그러니 1년 다니면 120만원x12개월=1440만원을 받는 거예요. 비교해보니 차이가 있죠?
처음 이 글을 접했을 때는, 왜 이렇게 복잡하게 공지를 올렸을까 의문이긴 했어요. 업무 능력 때문에 그런거면 소급 적용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댓글을 보니 많은 아르바이트생들이 3개월을 넘기지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성실하게 일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고요. 이렇게 하면 뒤에 60만원을 받으려고 3개월은 좀 성실하게 일하며 버틴다는 겁니다. 더 오래 함께 일하면 좋지만 3개월이라도 열심히 일해보자는 마음이죠. 문득 생각하면 퇴직금 받으려고 1년은 버티는 직장인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씁쓸합니다.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소급(遡及)은 거스르다 ‘소(遡)’, 미치다 ‘급(及)’이 합쳐진 말로 과거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미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소급 적용’이란 말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계약이나 정책이 이전 시점부터 효력이 생기도록 설정하는 과정을 말해요. 법률적으로는 새롭게 제정된 법률이나 규정이 과거에 발생한 사건에까지 적용되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 개정된 정책이 이전과 분리되어 내일부터 반영되는 것과 차이가 있어요.
예를 들어, 새로운 세금 관련 법이 만들어졌을 때, 이 법이 특정 기간 소급 적용된다면 과거의 세금 관련 문제에도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럼 추가로 세금을 더 내야 할 수도 있고, 낸 세금 일부를 돌려 받을 수도 있겠죠.
공정성 면에서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고, 현재의 시각으로 다시 혜택을 돌려주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기도 합니다. 재평가한다는 의미도 있죠. 이렇게 정책이나 법률이 다시 적용되었을 때 모두에게 혜택이 주어지면 좋겠지만 손해보는 사람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잘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최저시급 인상에 따라 월급을 소급하여 지급하겠습니다.
*완화된 세율을 바탕으로 이자를 소급 적용할 계획입니다.
재평가가 시급하다
만화로 그려진 조선왕조실록을 보며 역사 공부에 흥미를 가졌어요. 제가 초등학교 때 본 만화에서는 ‘연산군’과 ‘광해군’만 ‘군’인 이유가 중간에 왕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그럼 또 궁금하죠, 왜 쫓겨났을까? 우선 연산군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방탕한 삶을 살며 조선 사회를 망쳤어요. 연산군의 분노를 폭발하게 한 ‘피 묻은 한삼 자락’이라는 코너와 그림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마찬가지로 광해군도 어머니를 폐하고 동생을 죽이며 가족을 함부로 대하고, 무리한 개혁으로 주변 사람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쫓겨났어요. 남은 가족들도 끔찍한 결말을 맞이하며 폭군으로 함께 기록되었습니다. 이렇게 이 두 왕에 대한 기억은 어려서부터 부정적으로 심어져 있었어요.
그러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대박이 난 후, 광해군에 대한 재평가가 시급하다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그 당시 집권층의 눈에는 못마땅한 것들도,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거죠. 특히 대동법과 중립외교는 실리적인 개혁 정책이라고 높게 평가되기도 해요. 이런 재평가를 생각하면, 제가 읽었던 조선왕조실록 만화책도 개정 증보판이 필요하겠구나 싶습니다.
전 직장 동료들을 다시 만나면, 이전 회사 이야기가 빠질 수 없죠. 막 첫 회사에 입사해서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면, 우리를 힘들게 했던 상사분들이 등장합니다. 지금도 원망스러운 분들도 있지만, 재평가되는 분들도 있어요. 우리가 팀장이 되어 보고, 사업을 운영해 보면 이해되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럼 “그때, 참 대단한 거였어!”, “지금 생각하니 다 이해가 돼!”라는 진심어린 감탄사도 나와요. 이것도 지금의 평가를 소급 적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죠?
히스토리를 파악하라
이직 후 얼마 안 되었을 때, 보안에 민감한 회사 때문에 불편한 점이 많았어요. 보안이 중요한 것은 알지만 업무가 너무 비효율적으로 진행되었어요. 외부 USB 접속 방지는 기본이고, 오직 내부 메신저만 사용해야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 메신저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네트워크를 막아 두었어요. 외부 업체와 소통해야 할 일이 많은데, 너무 불편해서 짜증을 냈어요.
그랬더니 오래 다닌 직장 동료분이 히스토리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예전에 랜섬웨어 감염되어서 회사가 크게 고생한 적이 있다고 말이죠. 그리고 대표님이 지나가시다 업무 시간에 외부 메신저로 시간만 때우는 사람을 직접 목격하고, 전원 금지를 시켜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요. 그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 이해가 갔습니다.
새로운 일터에서 다른 사람이 하던 일을 이어 받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왜 일을 B 방법으로 하지?, 너무 비효율적인데? A 방법으로 하면 되는데?” 하지만 알고 보면 다 사연이 있더라고요. 효율적인 A 방법으로 했었는데, 어떤 사고가 나서 B 방법으로 바뀌었다거나, 상사 분이 B 방법을 선호한다거나, 회사가 어떤 관련이 있다거나, 제도적인 문제가 있다거나… 등등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비난하거나 불평하기 전에 우선 그 히스토리를 파악하려고 노력하세요. 관심 있는 나라의 역사를 공부하듯, 그 조직의 역사에 관심 갖는 태도도 소중합니다.
히스토리를 무조건 따르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파악한 후에 바꿀 수 있는 부분인지 아닌지는 다음 단계로 고민해요. 상황적 맥락을 보았을 때 이해가 되어 순응할 것인지, 이해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제안을 할 것인지 선택이 필요해요. 지금 새로운 기술이 발달했고, 상황도 달라졌으니 업무 방식도 바뀔 필요가 있다면 건강한 제안을 하면 됩니다. 과거 문제의 재발 방지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둘 다 놓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