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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wain Mar 28. 2023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2)

hwain 단편선 (4)

 "그.. 그만해요 형! 우리 얘기 좀 해봐요."

 

 일찍이 타이머를 확인한 정우가 소리쳤다. 톱은 이미 망가졌고, 재성의 발목에도 깊지 않은 생채기가 났다. 그의 거친 발광보다도 달라진 그의 눈빛이 상황을 더욱 건조하게 만들었다. 그 눈빛은 분명 아까와 달랐다.


 "지금 얘기해서 달라질 게 뭐가 있어. 어차피 우리 인생이 50분도 안 남았는데. 씨발 군대에서 계속 좆뺑이 까다가 갑자기 이게 무슨 좆같은 일이냐고!" 재성의 손에서 날아간 톱은 명주 쪽으로 죽 미끄러졌다.


 "자자. 일단 모두 살아서 나가야 되니까 진정 좀 하게." 명주가 입을 열었다.


 "살아서 나가? 어차피 할배는 여기서 나가도 오래 못 살잖아. 아까 뭐? 나라 지키는 군인이 이래도 되냐고? 그래 씨발, 나라 지켜줬는데 이게 무슨 꼴이냐. 할배는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전역 100일도 안 남았는데 씨발 진짜..." 재성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울음소리는 재성에게서만 나지 않았다.


 "저도 나가야 해요.. 집에 아픈 어머니가 계셔요.. 저 없으면 금방이라도 돌아가신다고요. 저는 직업도 미용사예요. 손가락 없으면 저는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죠? 저희 엄마는요? 저는 절대 못 잘라요" 침묵을 유지하던 효진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소리쳤다.


 "그래요. 우리 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다들 진정하고 일단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모두 살아서 나가야 될 거 아니에요. 아가씨도 진정하고, 군인 아저씨도.."


 "닥쳐, 씨발." 재성의 한 마디에 미정의 말이 증발했다.


 "그러는 아줌마는 손가락 자를 준비 됐어? 몇 개나 자를 수 있는데?"


 "..."


 "봐, 씨발 사람 좋은 척은 다 하더니 그러니까 그냥 아가리나 닥치고 있으세요. 그리고 어이 미용사. 너 솔직히 구라지? 아까는 지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 기억도 못한다면서 뭐? 미용사? 엄마가 아파요? 지랄 좀 그만해. 그 정도 구라는 나도 치겠다."


 "제발 그만 좀 하세요!" 정우가 일어나 소리쳤다. 정우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이 뒤섞여 거미집을 이루었다.


 "여기서 누가 손가락 자르고 싶겠어요. 일단 다 같이 살고 봐야죠. 그럼 누군가는 잘라야 해요. 각자 두 개씩 자르던가, 아니면.." 정우의 목소리가 다시 작아졌다.


 "아니면?" 미정이 되물었고, 옆에서 효진도 정우를 쳐다봤다.


 "너 씨발 게임 같은 거 하자고 하면 죽여버릴 거야 진짜. 살아서 나가도 내가 때려죽일 거야 이 좆만한 새끼야!" 재성이 발끈하면서 발목의 쇠사슬이 찰랑거렸다.


 "아까 할아버지.. 기침이 심하시던데.. 폐 안 좋으신 거 아니에요? 저희 할아버지도 폐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어차피 폐암 걸리면 오래 못 산다 했어요.."


 "뭐.. 뭐라고?" 명주가 놀라서 컥컥거렸다.


 "그렇지, 저 새끼가 드디어 옳은 말을 하네. 내가 말했잖아. 저 노인네 살아봐야 얼마나 더 살겠어. 여기 땅바닥 차서 저 할아버지는 나가도 병에 걸릴 판이야. 저거 봐, 혈색이 벌써 송장이야, 송장." 재성이 울음을 그치고 씨익 웃었다.


 "군인 아저씨.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얘야, 너도 말 좀 가려서 해라.. 이래서 내가 학교 안 다니는 아이들은..."


 "뭐라고? 이런 씨발 지금 그 말이 왜 나와! 네가 나 자퇴하는 데 보태준 거 있어? 고양이 밥 퍼다 주는 게 인생에서 유일한 낙인 쓸모없는 년이.."


 "뭐어? 어머 얘 말하는 것 좀 봐. 그래, 이렇게 된 거 다 죽자 죽어. 너 같은 놈들은 사회에 나가는 게 죄야. 내가 관상을 좀 볼 줄 알거든? 너희는 밖에 나가서도 범죄 저지를 더러운 관상이야. 이런 사탄의 자식 같은 놈들."


 "아.. 아줌마... 괘, 괜히 사람들 자, 자극하지 마요.. 저, 저는 여기서 나가야 되, 된다고요.." 효진이 다시 울상을 지었다. 몸을 덜덜 떨고 있는 것이 상태가 안 좋은 것이 분명했다.


 "아줌마? 이게 어디 엄마 뻘한테 버르장머리 없이 아줌마래? 하여간 미용하는 것들은.. 쯧쯧. 너도 그냥 발악하지 말고 여기서 죽어 그냥. 이 세상에 널리고 널린 게 미용사야. 네 엄마도 너 죽고 그냥 기초생활수급 받는 게 더 좋을 걸?"


 "왜.. 왜 그러세요.." 효진에겐 분노할 힘조차 없어 보였다.


 서걱서걱..


 소란 속에서 두꺼운 도화지를 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기울여야 들리는 작은 소리가 하나씩 쌓여 방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이윽고 노인의 앓는 소리도 뒤따랐다.


 "어어?" 재성이 뒤늦게 명주를 발견했다.


 "하.. 할아버지!" 정우의 애타는 목소리가 들렸다. 재성의 혀는 곧 마비될 정도로 바싹 말랐고, 어떠한 말이라도 해고 싶었던지 혼자서 어버버거렸다. 미정은 꽥꽥 소리를 질렀고, 효진은 두 손으로 눈과 얼굴을 가렸다. 미정이 내지르는 소리에 잔혹한 소리는 감춰졌지만, 모두의 머릿속에서 그 끔찍한 소리가 공명 쳤다.


 "허억 허억.." 피를 뚝뚝 흘리는 노인은 이젠 양 발에 톱을 끼운 채 다음 행동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하.. 할아버지 그만하세요." 정우가 소리를 질렀다.


 "왜.. 그냥 내버려 둬.. 너도 살고 싶잖아. 그냥 닥치고 지켜보자. 봐, 이제 얼마 안 남았네." 정우의 눈동자에 비친 재성은 이미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웃을 때 드러나는 송곳니는 짐승의 이빨처럼 날카로웠고, 울퉁불퉁한 두상은 흘러내리는 용암을 닮았으며, 눈빛은 살의를 가득 눌러 담은 포대자루 같았다.


 "그... 그치만.." 정우는 이제 자책감과 자괴감을 넘어 자학이라도 하고 싶어졌다. 그는 갑자기 바닥에 머리를 쳐 박기 시작했다.


  쿵쿵 거리는 소리와 서걱 거리는 소리,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그들의 심장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져 방안은 공해 수준의 소음으로 가득 찼다. 틈틈이 한 여성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도 들렸다.


 노인의 땀방울이 핏방울로 얼룩지던 무렵, 쇠사슬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철거덕.


 "돼.. 됐다! 살았어!"


  재성은 타이머를 보았다. 남은 시간은 3분 남짓되는 시간이었다. 그는 옆자리에 머리가 터진 채 쓰러진 정우를 들쳐 엎고 명주에게 다가갔다. 명주의 입술은 오래된 휴지처럼 색이 없었다. 그는 무슨 말을 하려고 뻐끔거리고 있었다.


 "할배! 정신 차려 봐! 눈 떠! 씨발 우리 다 같이 나가려고 애쓴 거잖아!"


 "... 났어."


 "뭐라고? 뭐가 났는데!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재성은 명주의 손을 옷으로 감싸 지혈하고, CPR을 준비했다.


 "기억났어.."


 "뭐가!"


 "난 편지를 쓰고 있었어.."


 "에라이, 씨발 닥쳐봐. 할배! 정신 차려! 할배 죽으면 소용없어! 야! 너는 저기 가서 여자들 확인해 봐!" 재성은 정우를 두 여자가 있는 쪽으로 밀어냈지만 정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묽은 침이 피와 섞여 흘러나오고 있었다.


 "야! 문 열어! 네가 시키는 대로 다 했잖아! 문 열어! 씨발!" 효진이 벽을 쾅쾅 두드리며 소리쳤다.


 "하, 씨발 그냥 나도 몇 개 자를 걸 그랬나..?" 미정이 허공에 대고 중얼거렸다.


 재성의 다급한 몸부림에도 타이머의 시간은 멈출 줄 몰랐다.


  천장이 열리고 치익- 소리가 들려왔다. 곧 방안의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진짜 이상하단 말이지.."


 "뭐가요?"


 "아니, 5명이나 실종됐다가 한꺼번에 발견된 건데, 이상하지 않냐고. CCTV에 증거도 없지, 유가족들 반응도 시큰둥해, 게다가 서로 연고도 없어."


 "뭐, 전국적으로 보면 하루에도 몇 십 명씩은 없어지고 하잖아요."


 "근데 이렇게 강가에서 줄줄이 소세지 마냥 발견되는 건 이상하지."


 "그렇긴 하네요. 손가락도 잘려있고. 종교 단체 비슷한 걸까요?"


 "근데 모두 사인은 가스 중독이야. 이건 아무래도 연쇄 살인도 생각해 봐야겠지."


 "근데 신원 조회 결과 보셨어요? 얘들 만만치 않던데요?"


 "봤지. 한 놈은 교내 성폭행으로 퇴학처리 된 쓰레기고, 또 한 놈은 군대 부조리로 유명했다 그러고, 또 한 놈은... 뭐였더라?"


 "죽은 여자 둘 중 하나는 길고양이 밥에다가 농약 타서 수십 마리 죽인 동물 학대범이고요, 다른 하나는 친모 가정 폭력으로 구치소까지 들어간 이력이 있네요."


 "한 명 더 있지 않았나?"


 "아 할아버지요? 그분은 털어도 털어도 안 나와서 집까지 들어갔었는데, PC 한 대만 있더라고요. 아내는 수년 전에 죽었고."


 "PC에서는 뭐가 나오디?"


 "아, IP추적 때려보니까 화려하더라고요. 뭐 5.18 유족들한테 욕설이랑, 뉴스 기사 악플에, 위안부 할머니 주소로 협박 손편지까지. 아주 그냥 태극기 부대 연대장급이네요."


 "하."


 형사의 머리 위로 담배 연기가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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