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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새벽 3시 반이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하루가 24시간뿐인데 당연한 거지.
잠은 죽어서 자면 되니까.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명상과 함께 '긍정 확언'부터 시작한다.
눈을 지그시 감고 배에 힘을 주고 강한 어조로 말한다.
그래야 나의 확언이 우주를 떠돌아 다시 지구로 흘러 들어올 테니까.
“나는 반드시 성공한다.”
“나는 반드시 부자가 된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
뭐가 되고, 뭐로 성공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그냥 뭐가 됐든 잘 벌어 잘 먹고, 잘 살 거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그리고는 미라클 모닝의 첫 단추, 새벽 러닝을 위해
아침밥은 전날에 만들어 놓은 '수제 드링크'로 가볍게 때운다.
재료는 커피 믹스 두 개와 박카스 한 병. 믹서기에 넣어 모두 갈았다.
주사기로 주입하듯 목구멍을 열어 쏟아부었더니 정신이 아찔했지만, 잠기운이 금방 희미해졌다.
엄마가 깨지 않도록 살금살금 걸어가 신발 끈을 묶으면 이제 오전 루틴의 절반이 끝난 것이다.
역시 새벽 4시는 나만의 시간이다.
해는 아직 뜨지도 않았고 공기 중을 떠도는 미세한 이슬방울이 모낭 하나하나에 스며들어 내 영혼을 일깨워주는 것만 같다.
그래, 이게 바로 미라클, 기적이야.
나의 긴 '수행생활' 중 지금이 가장 상쾌한 시간이 아닐까.
다음 주부터는 수면 시간을 3시간대로 줄여봐야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성공의 길을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고통의 수행자에게 4시간의 수면은 너무 길다.
'이래선 영앤리치가 될 수 없다..!'
집으로 들어왔는데도 가족들은 여전히 조용하다.
게으르고 어리석은 인간들. 가련하지만 별 수 있겠는가. 내가 언젠가 성공해서 먹여 살릴 식솔들인데.
나는 냉동실에서 얼음을 꺼내와 욕조에 뿌리고
수전 레버를 완전히 돌려 냉수를 가득 담았다.
이제 온몸의 도파민을 깨울 시간이다.
새벽에 뛰면서 빠져나간 노폐물을 닦아내고
피로물질 하나하나를 정화해 신체 컨디션은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집중력을 강화하는 작업.
들어갈 땐 비명을 참기 위해 혀까지 씹지만,
이렇게 씻고 나오면 나는 살아 숨 쉼을 느낀다.
기상 루틴 종료. 그래도 아직 6시밖에 안 됐다.
이어지는 오전 수행은 독서이다.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의 노하우를 녹여낸 에세이,
자기 계발서 등 각종 지식을 만리장성처럼 쌓는 시간이다.
내 책을 보면 알겠지만 너덜너덜하고, 각종 포스트잇과 밑줄로 도배되어 글자를 제대로 읽을 수도 없다.
그만큼 나는 한번 읽더라도 책을 거의 씹어 먹다시피 읽는 편이라, 눈으로 읽고, 나의 체세포 하나하나에 각인해서 영원히 기억한다는 것이지.
그래서 내 인생 책이 무엇이냐고?
글쎄.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는데.
그래도 굳이 하나를 꼽자면 내 인생을 바꿔준 최고의 은인, 세이노 작가님의 <세이노의 가르침>이 아닐까.
얼마 전에는 엄마가 이 책을 읽을 시간에 나가서
알바라도 하는 게 더 성공하는 길이지 않겠냐고 역정을 내길래 3일 내내 방문을 걸어 잠근 적도 있었다.
아무리 가족이 편하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아들의 영적 스승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걸까.
너무 나이가 들어서 판단력이 흐려진 게 분명하다.
나중에 내가 어떤 사람이 될 줄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깟 알바비 몇 푼 벌어보려고 일하는 거랑 지금의 나처럼 미래의 도약을 준비하는 거랑 어떻게 그리 쉽게 비교할 수 있지?
갑자기 화가 나서 더 이상 책을 읽을 수 없군.
이렇게 집중력이 흐트러졌을 때는 괜히 다시 집중력을 되찾아보려고 책을 계속 붙들고 있는 것보다 다른 매체를 활용하는 게 좋다.
이것도 인스타에서 봤는데 누가 했던 말인지는 기억이 안 나네.
가끔은 책 속이 아닌, 책 밖에서 더욱 귀한 지혜를 얻는다.
그래서 나는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켰다.
이렇게 책에 집중이 안 될 땐 차라리 성공한 유튜버나 사업가들이 어떤 방식으로 생각해서 성장했는지 분석하는 시간을 가지는 편이다.
어디 보자, 백종원 대표의 일대기를 봐야지.
거봐. 지금은 수백억이 있던 사람들도 나처럼 젊은 시절에는 별거 없었잖아.
그래. 이 배우도 CF랑 사업으로
돈 엄청 벌었을 텐데 15년이나 무명 시절이 있었네.
그래. 지금은 내가 힘없고 볼품없지만 나도 언젠가 이 사람들처럼 될 거야.
이 사람들? 아니지. 비교도 못 하게 더 대단하고, 더 멋진 사람이 될 거야.
오? 근데 이 배우는 돈이 많아서 그런가.
평범하게 생겼는데 아내가 엄청나게 이쁘네. 내가 아는 그 사람도 살짝 닮았네.
나도 배우나 해볼까.
배우는 업무 시간이 자유로우니까 사업 아이디어 구상도 병행할 수 있으니. 또, 내가 지금은 살집이 좀 있지만 내일부터 식단을 빡세게 조절하고 오전 운동량을 좀 더 늘리면 캐스팅에는 별 무리가 없지 않을까?
[아들, 밥 먹어.]
젠장. 벌써 아침 먹을 시간인가.
뭘 했다고 벌써 7시지?
“안 먹어! 나 배 안 고파."
[그럼 안 치울 테니까 나중에 먹어. 샌드위치 해놨어.]
엄마는 늘 저런 식이다. 내 성공 의지를 자꾸 꺾는다.
내가 다이어트를 좀 해보려고 하면 고칼로리 음식을 주지 않나, 1일 1권 챌린지를 좀 하려고 하면 나가서 일하라고 닦달하지를 않나.
내가 나중에 성공하면 당신은 국물도 없을 줄 알아.
엄마가 7시 반에 출근하고 나면 그때부터 나는 더욱더 몰입한 '무아지경'에 이른다.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해 1분 1초도 허비하지 않는 것이다.
훗날 다국적 기업 설립에 필요한 영어 회화와 서양 문화 공부를 위해 명작 미국 드라마 몇 편을 정주행 하고
인스타나 유튜브에서 철학자들의 명언으로 세상의 지혜를 이해한다.
또 자수성가한 사업가들의 전자책 파일을 사기 위해 받았던 용돈(설명을 확인해 보니 내 사업 방향성과 달라서 결국 구매하지 않기로 했다.)으로 사업 아이디어 구상을 위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다양한 자료를 수집한다.
나는 이 시간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학교 공부는 그렇게 졸리고 지루했건만, 세상 공부는 왜 이리도 달콤하고 즐거운지.
역시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 대한민국 교육방식이 문제였다니까!
밤이 오면 곧장 헬스장으로 뛰어간다.
나는 근력운동에는 자신이 없어서 운동하러 가기보다는 세상을 공부하러 간다.
여기는 성공한 사람들이 가득하니까.
자신을 가꿀 줄도 알고, 신체와 정신이 건강한,
그런 '진화 인류’들의 집합소가 아닌가!
게다가 무엇보다도 최근 배우들의 몸매 트렌드가 기생오라비 같은 미소년 타입에서 야성미 넘치는 근육질의 반전 몸매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넘어가고 있으니까,
나처럼 사업적 번영과 연예계 진출을 목전에 둔 사람이라면 운동은 둘째 치고, 인생 공부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와야만 하는 곳이다.
[저, 저기요.]
오?! 이 여자는? 이럴 수가, 벌써 눈치챈 건가?
사실은 내가 앞서 밝히지 않은 또 다른 이야기가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이 헬스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아리따운 여성.
그녀는 작년쯤 9급 공무원을 준비할 때 학원에서 만났던 여자, 한솔 씨다!
그땐 수줍어 말을 걸지 못했지만, 하루하루 거룩하게 성장 중인 지금은 다르다.
내 눈빛이 달라지니 이 사람도 존재감 없던 나를 이제야 알아본 것이다!
“아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아니, 그게 아니라. 왜 자꾸 찾아오시는 거예요. 지난번 학원에서도 자꾸 선물 주면서 따라오셔서 제가 설명해 드렸잖아요. 저 남자친구 있고, 한 번만 더 그러면 경찰에 신고한다고요.]
옆에서 꽤 덩어리 진 남자친구가 나를 훑어보며 씩씩거렸다.
“죄, 죄송합니다.”
당연히 하나도 무섭지 않았지만 잘 참고 일단 밖으로 나왔다.
나중에 큰일 해야 할 사람인데 벌써부터 소란을 일으켜서 빨간 줄이라도 생기면 골치 아프니까.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 어딘가가 찝찝하고 불편하다.
나는 왜 그 남자에게 한마디도 못 하고 걸어 나온 거지? 뭐가 부족했던 거야?
자존감이 부족했나? 아니야, <자존감 수업>이라는 책으로 공부했잖아.
돈이 부족했나? 아니야, 그건 그 남자도 부유해 보이진 않았어.
피지컬이 딸렸나? 아니야, 요즘 여자들은 나처럼 푸근한 곰상을 좋아해.
아! 그렇구나, 긍정 확언이 부족했던 거야!
앞으로 매일 한 문장씩 더 추가해야겠어.
“나는 여자에게 인기가 많다. 김한솔은 나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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