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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정 Feb 03. 2023

포틀랜드에서 만난 홈리스

너가 들고 있는 그 도넛 내놔

우리는 포틀랜드에 1박 2일간 머무르기로 했다. 이렇게 일정을 짧게 한 이유는 개인적으로 끌리지 않았기 때문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다음 여행지가 시애틀(포틀랜드에서 두 시간 거리)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지간한 명소들은 포틀랜드보다 시애틀이 볼 게 더 많았고, 그전에 하이킹이며 캠핑이며 몸도 고단했기 때문이다.

 호텔 체크인 전 한식 충전을 위해 달려간 노스웨스트 23번가(갤러리, 부티크샵, 카페, 식당등 쇼핑거리)에서 우린 김치찌개랑 제육을 시켰다. 이게 얼마 만에 한식이야... 지금도 글을 쓰면서 침이 고인다.. 음식도 맛있었지만 사장님이 정말 유쾌하셨는데, 우릴 보고 며칠 굶었냐며... 밥 한 공기와 제육을 더 주셨다! 이런 게 동포의 정인 걸까? 만세~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 귀여워 보이셨는지 사장님은 호구조사를 시작하셨다. 미국에는 왜 왔니.. 한국에서는 어디 살았어? 정말? 난 부산 영도 사람이야 ~ 다음에 한국 가면 영도 가봐 진짜 좋아~ 포틀랜드는 처음이니.. 로드트립 중이라고? 겁도 없구나~ 라며 20분 만에 친화력 100프로를 보여주셨던 사장님~ 잘 지내고 계시죠? 그때 정말 재밌었어요 ㅋㅋㅋㅋㅋ   

  우리는 배부르게 밥을 먹었으니 소화도 시킬 겸 본격적으로 길거리 구경을 시작했다. 가죽공방, 옷, 향수, 문구, 서점 등 거리 곳곳에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정~말 많았는데, 다들 자기만에 스타일이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왼쪽부터 :  편집숍1 / 편집숍2 / 아이스크림가게 (Sweet&Salt)
왼쪽부터 : 포틀랜드 거리 / 파월서점

그래.. 참 좋았다.. 오랜만에 보는 빌딩과 한식까지.. 단 하나 홈리스만 빼면 말이다.

그동안 라스베이거스와 샌프란을 제외하고 다른 도시를 가보지 않았던 탓도 있겠지만, 포틀랜드는 홈리스가 정~말 많았다. 그나마 내가 구경하고 다녔던 노스웨스트는 관광거리로 유명해서 그런지 덜했지만 조금만 모퉁이를 돌고 나가거나 외곽으로 빠지면 거리 곳곳에 텐트가 쳐져 있었다. 텐트를 지나가야 하는 길이면 괜히 긴장되고, 팔짱을 꽉 끼며 빠른 걸음으로 구역을 지나쳤는데 이건 뭐... 계속 있으니깐.. 걸음이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중간중간 우릴 보며 “니하오마! 곤니찌와”라고 외치는 사람도 있었고.. 돈을 달라고 말을 거는 사람도 있었는데, 못 알아듣는 척~ 하며 상황을 모면했다. 그래 그렇게 잘 모면했는데... 문제는 포틀랜드에서 유명하다던 도넛을 사고 오는 길에 발생했다.

포틀랜드 3대도넛중 하나인 Voodoo Doughnut

 포틀랜드 여행 후기를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3대 음식이 커피, 맥주, 도넛인데 나는 술도 잘 못 마셨고, 그날따라 커피도 당기지 않았다. 그래도 3대 음식 중 하나는 먹어봐야 하지 않겠냐며 우리는 저녁으로 간단히 도넛을 먹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유명하다던 도넛(부두도넛)을 픽업하고 체크인을 하려는데.. 갑자기 한 남성이 다가왔다..  


“Where are you from?”

“We’re from South Korea”

“Oh I know South Korea. What brought you here?"

"We're having a road trip now."

"Sounds nice. I’m a highschool teacher 블라블라”

(대충 이 근처의 고등학교 선생님이고, 포틀랜드 어땠냐 많이 돌아다녔냐 여행 중이냐는 이야기를 물어봄)     

그의 본론은 이거였다.

“You have a Vudoo. Have you had the doughnut?” (우리가 들고 있는 도넛을 가리키며..)

“No, not yet. we are gonna eat later”

“Can I see It?”     

응? 뭐래... 도넛 좀 봐도 되냐고? 갑자기 왜? 이때부터 이상했던 남성은 갑자기 남편이 들고 있는 도넛 상자를 열려고 다가왔다. 순간 남편은 한걸음 물러나며 단호히 말했다.     

“Nope. we are going to check in to the hotel now. Have a good night, bye bye”.      

라고 말한 뒤 뒤돌아 가고 있는데 갑자기 길을 막아서며 상자를 잡는 게 아닌가!! 기가 막혔다. 그리고 하는 말이   

“나 사실 그 도넛 진짜 좋아하는데 지금 가면 다 팔렸을 거 같아 우리 같이 나눠먹자^^”      

좋게 말하면 갈 것 같았던 아저씨는 갑자기 쓰고 있던 안경까지 벗으며 우리를 계속 겁박했다. 분위기가 험악해지려던 그때 우리가 들어가려던 호텔 직원이 갑자기 나와 욕을 시원하게 날려주었다.

“Get off  XXXXXXX ” (영화서 듣던 FuckXX을 들음..)


직원은 우리랑 실랑이하던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CCTV로 지켜봤다며 저 사람 고등학교 선생님 아니고 홈리스라는 설명을 해줬다. 낮에 거리에서 봤던 홈리스와 달리 옷도 멀쩡하고 단정해 보여서 나와 남편은 노숙자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상습적으로 호텔  투숙객들에게 뭐 하나라도 달라고 치근덕거린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그전에도 길거리를 지나가면서 많은 홈리스를 봤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스몰톡을 하며 액션까지 취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호텔로 들어와 도넛을 먹으며 남편은 “00아 우리 내일 아침 일찍 시애틀로 출발하자, 솔직히 시애틀이 도시도 더 깨끗하고 홈리스도 적데.. 여긴 너무 많아.. 올드타운이라 지저분하고.. 커피는 거기서 먹자 스타벅스 1호점에서” 나도 남편의 말에 적극 동의했다.

“그래.. 시애틀에 가서 놀자 오빠”


하지만 그땐 우리 둘 다 몰랐다.. 홈리스와의 시비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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