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릇이 혼자가 되는 삶의 도입부
이혼도 하기전, 난 분가를 먼저하게 되었다
더 이상 한 공간에 있다간..말 그대로 피가 말라 죽을 것만 같았다
있는 짐에서 내 짐만 꺼내서 이사를 해야했기에 직접 짐을 싸야했다
가구라고 해봤자 아들이 쓰던 슈퍼싱글 침대, 싱글옷장 하나
가전은 방치되어 있던 4키로 세탁기가 다였다
이불 한채 가져가지 않는데도 짐이 꽤 많았다
내 짐을 다 싸두고 용달이사 사장님을 기다리는데 그때서야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아들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지 말자고
이사간 집에서 실컷 울자고 꾸역 꾸역 참고 있었는데
'이혼'이 정말 내게 올 일이란게 온 몸으로 체감되는 듯 했다
"아들..엄마 진짜 간다. 이제 엄마랑 더 이상은..같이 살지 않게 되는거야..."
아들은 엄마와 앞으로 같이 살지 못하는 현실이 믿지기 않는건지..
엄마가 자길 버리고 간다고 생각하는건지...
이 모든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외면하고 싶은건지.....
방안 침대에 누워 나와보지도 않았다
앞으로 아이와 떨어져 혼자 살아야할 나도
상처받았을 아이의 마음도 걱정이 됐다
이사 나가는 그날도 역시 남편은 없었다
내가 필요한 순간은 항상 자리를 비웠던 사람이였다
그래도 그날은 없는게 오히려 좋았다
짐을 싸면서 이건 가져가야하나 놔두고 가야하나
물어볼 필요도 눈치볼 필요도 없으니..
그런고보면 남편은 나란 사람을 잘 알고
사실은 깊은 마음속으론 믿고있었던 듯 하다
내가 뭘 들고 나갈줄 알고 확인도 하지 않은걸까...?
이혼을 진행하며 한푼이라도 손해볼까봐
내가 혹시 뭐라도 몰래 뭘 빼돌릴까봐
전전긍긍하던 모습과는 대조되는 날이였다
사실은 알았겠지
그 오랜 시간을 살아왔는데
내가 속이는건 커녕 거짓말도 못하는 사람이란걸
누구처럼 앞뒤 다르고 뒤에서 딴짓이나하는 그런 인간 아니란거
'신뢰'가 있었기에 10년 넘게 살았고
그것이 깨어졌기에 이혼하게 된 것이니..
이사와 동시에 혼자 산다는 그 사실이
낯설기만 한 공간이 한동안은 내가 살아야하는 곳이라는 현실이
너무나 어색했다
몇날 며칠을 울기만할까봐
짐이 엉망진창인 집을 그대로 두고 서울 여행을 떠났다
평소같으면 집을 그렇게 정리도 안된채로 어딜 갈 수 있는 성격의 내가 아니였다
오롯이 혼자인 시간, 혼자인 여행이 얼마만이였겠는가
너무나 자유로웠고 평온했다
많은 사람들의 복잡함 속에 혼자 고요히 있는게 전혀 외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게 좋다니.....'
'이렇게 자유로운 삶이 앞으로 내가 살아나갈 모습이라니...'
너무 좋아서..엄마로써는.....아이에게 미안할 지경이였다
이혼이라는게 아내로썬 엄마로썬 절대 좋을 선택일리 없는데
오로지 나라는 사람으로서는..여자로서는...솔직히 좋았다
'난 뭐든 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떻게 살아도 아무런 상관이 없구나...'
서울을 가서 살든 제주도를 가서 살든
돈을 조금 벌든 많이 벌든
내 집이 있든 없든 그모든게 아무 상관도 없었다
어떤 선택도 할 수 있다는 그 사실이
아직은 어색하기만 했다
자유로움을 마냥 좋아하기엔
아직은 어린 내 아이가 눈에 밟혔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어떤 엄마라도 그러하듯이 아이가 내 인생의 중심이였다
그 우선순위로 무언갈 선택할 땐 분명하고 쉬웠던 것들이
나만 생각하고 내 중심으로 선택하려 하니
오히려 어떻게 살아야하는것인지 혼란스러웠다
선택할 수 있는 스펙트럼이 한계가 없다는 것도 한 몫했다
원래 '꿈쟁이'인 나였다
내 스스로를 '몽상가'라 표현했으니..
그런데 이제 그 모든 '생각'을 현실로 만들 수도 있는거였다
그 생각을 하자 나도 모르게 설레기도 했다
집을 엉망진창으로 둔채로 서울 여행 갔다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만의 자유로움을 만끽한 이후여서인지 이사간 집에서 생각보다 난 많이 울지 않았다
일이 너무 바쁜게 한 몫 하기도 했고
집에서도 막상어수선한 짐을 정리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가전을 사고 가구를 사고
국자 하나도 없어 주방용품 및 생필품도 사고
이불 한채도 없어 가끔 우리 집에 자고 가는 아들 이불 장만까지 하고 나니
대략 500~600백만원의 돈이 지출됐다
내 인생 통틀어 단기간 가장 많은 돈을 쓴 날들이였을 것이다
큰 돈을 턱턱 써본적이 없는 나였기에 돈을 쓰는 일이 은근 해소가 되었다
받은 돈도 없이 비상금도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의 흔적,때, 기억이 묻은게 싫어서
없는 와중에도 모두 새 것으로 장만했다
김치냉장고 말고는 신혼때 샀던 가전 그대로 써온 나였다
나만을 위해 쓸 것들을 새것으로 사서 집에 들여놓는 것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다
물론 갑자기 눈물이 터져 아이처럼 소리내어 우는 날도 있었다
그런날은 아이가 너무 보고 싶은 날이였다
처음 분가 하고는 금요일 저녁에 집으로 데려와 하루밤 같이 자고 토요일은 함께 있다 보내는 식으로
일주일에 한번은 꼭 만났는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아이와 그렇게 물리적으로 분리될 일도 없었고
매일 아이를 볼 수 없는게.. 내 손으로 아이를 챙기고 먹일 수 없는게...
가장 큰 상실의 고통이였다
어쩌면...아이가 나를 의지한 것 보다
엄마인 내가 아이를 의지한 마음이 더 컸던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맞는것 같다.
그나마 너를 붙들며 그 긴 시간동안 가정을 지켜왔으니.....
남편은 날 경제적으로 힘들도록 내버려놓고
내 주변 사람들을 이간질 시켜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한 상황에서도
끄떡없이 잘만 사는 것 같아 보였는지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일 수 밖에 없는..
아이와 내 사이를 이간질 하고
급기야 한동안은 아이를 보여주지 않았다
나를 괴롭히는게 목적인게 분명했다
아이를 3주나 보지 못하는 시간이 있었다
내가 아이를 더 의지했다는걸 증명이라도 하듯..
아이는 날 찾지 않았다
물론 전화를 걸수도 영상통화를 걸 수도 있었겠지만
없는 트집도 만들어서 과장하는 남편 때문에
하필이면 그런 말들을 절대 하지 말아야할 아이에게 하는 바람에
아이에게 거는 전화 한통 마져도 조심스러웠다
엄마로써 섭섭한 마음도 있었지만
사실 아이를 보지 않는게 솔직히..마음이 평안했었다
어렸을 때부터 복합적인 발달 문제로 다소 무난하지 않게 키웠던 아이였다
애를 쓰고 돈을 쓰고 시간을 쓰는 만큼 나아지지도 않았고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것에 때로는 히스테리를 부렸던 나였다
'숙제'같이 느껴지는 아이를 온전히 사랑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였다
나에게 가장 치열한 '현실'이였고 내 노력만으로 해결되지도 나아지지도 않는
가장 무겁고도 무서운 '책임감'이자 '현실'이였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애가 타고 절절거리고
미안하고 죄스럽고 복합적인 마음이였는데
오히려 아이가 눈에 안보이니 마음이 평안한 것이였다
지금까지 아이에게 관심도 없던 남편이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에 왜 걱정이 없겠는가
하지만 걱정한다고 신경쓴다고 마음의 애를 쓴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것에 마음의 에너지를 낭비하는 스타일의 내가 아니였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 많이 힘들었고 그 덕에 내가 연습된 것 들이 있었다
그 중에 몇 가지가 이런 상황에서도 나를 버티게 했고 나를 살게 했다
그 중에 하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였다
매일 같이 있는 것이 아니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아이를 한발 떨어져서 볼 수 있었고
조금은 객관적이게 되자 아이를 받아들이고 품을 수 있는 부분이 오히려 커졌다
만나는 그 시간이 온전할 수 있도록 아이에게 집중했고
그동안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들어주는게 죽어도 안되던 내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그 역할을 점점 잘하게 되었다
'양보다 질'이라고 했던가
엄마로써 내가 선택할 수 있는건 그것이였다
한걸음 떨어져서 본 내 아이는 생각보다 많이 괜찮았다
어쩌면 내 걱정에 내 불안에 내 시야를 가렸던건 아니였을까 할만큼
"엄마 아빠가 헤어지는게 절대 좋은 일은 아니겠지만, 진흙 속에 진주가 있는거거든.
우리 이 아픔속에서 진주를 찾아보자. 나를 지키는 갑옷을 만들고 그 갑옷으로 내 사람도 지킬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성장해보자."
아직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얘기하는 연습이 더 필요하긴 했지만
이제 중학생이 되는 아이라 내가 전하고 싶은 의미는 알아듣는 듯 했다
이래 저래 내 삶이 통째로 갈아엎어져 갈아끼워지는 듯 했다
오랫동안 쓰던 밭에 작물들이 다시 잘 자라게 하려면
그 흙을 다 파 뒤집곤 한다
내 인생이 마치 그 타이밍이 된 것 같았다
사는 집도, 다니는 직장도
내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고 맺는 모습들도
내가 문제를 해결하고 생각하는 자세와 생각 그 모든 것이
완전히 갈아 엎어져 새로워지고 있었다
'아..새 인생을 살라는 거구나...'
종교는 없지만..힘든 시간동안 그 어떤 알 수 없는 존재를 향해 묵상을 했었다
'저는 지금 이런 일을 왜 겪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런 일 뒤에 계획하신 일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저를 위해 준비하신것이 있다는 걸 믿습니다.
시간이 지난 이후에는 반드시 왜 지금 이런걸 겪었어야만 했는지 깨달으리란걸 믿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연습된 것 중 하나가 그거였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내장이 끊어질 듯, 심장이 옥죄어오는 고통도 분명히 지나가리는 것을 알기에
나 답지 않은 시간들이 반복되었다
아니 어쩌면 내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또 다른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그건 내 원래 모습도.. 진짜 모습도 아니라고 하며 걱정했고
나 조차도 너무도 다른 내 모습을 부정했다
하지만 지금의 내 모습조차 당연히 '내 모습'인 것을
내가 나인 것을 부정당하고 비난당할 이유가 없다는 그 사실을 깨닫자
오히려 마음이 평안해지며 진정한 나를 다시 찾아가기 시작했다
마음이 온전해지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나 답지 않은 시간은 잠시 지나가는 마음의 '질풍노도'의 시간일 뿐
앞으로 완전히 달라질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할 내 자신을 다시 찾는 시간이였다
이제 다시 내 길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오롯이 혼자 걷게 되는 내 삶의 길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