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 사유는 '소통의 부재'였다
남편은 다혈질인 성격이였다
요즘 말하는 MBTI로 말하자면
'F' 즉, 감정을 우선으로 반응하는 사람이였다
나도 이제서야 생각해보는건데
내가 말하는 방식에서도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오래했었다.
그래서 설명이 길었다 해야하나?
항상 서론이 길었고
말이 길다보니 집중력도 참을성도 이해력도 부족한 상대가 듣기엔
도대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건지 의도파악이 안돼고
오히려 들으면 들을수록 머리만 복잡해지며
결국 본인에게 남는 메세지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남편은 '대화'란 무엇인가를 해결하기보단
오히려 문제를 키우는 것이라 생각하며
대화는 피하는게 상책이란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대화를 안한다고 그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리가 없는데도
그런 내 설득이 먹힐리가 없었다
남편이란 사람은 자신의 '필요'가 있는 일이 아니면
그 어떤일에도 관심이 없었다
내가 분명히 강조해서 몇 번이고 했던 이야기도
언제 그런 말을 했었냐고 까마득히 잊어버리는 사람이였다
그게 혹여나 자식에 관한 문제와 고민이였다해도 말이다
남편은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였다
자격지심도 큰데다 피해의식까지 있었는데
그 모든 자신 안의 문제들을 나에게 표현했다
내가 편하다는 이유로
나를 믿는다는 이유로
어떻게 대해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곁에 있는 사람이 나란게
그에게는 나를 함부로 대해도 되는 허락이 되어버렸다
받아준 내 잘 못도 있다는걸 알기에 그 사람만 탓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상황들을
그가 나에게 했던 수준 낮은 말과 행동들을
어떻게 감당하고 용서하며 참아왔던건지..
내 자신이 다시 보이기도 한다
나는 그릇이 큰 사람이 아니다.
내 스스로 '간장종지'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이란 사람을 품고 또 품으며
어쩌면..이혼을 하지 않았다면 평생 품고 살았을
그런 사람이 나라는걸 생각해보면
사실 내 그릇이 컸던건 아닐까?? 싶기도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 절대 내 그릇이 커서 그를 품을 수 있었던게 아니였다
나에게는 긴 시간동안의 '꿈'이 있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꿈.
하지만 그 바람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였던가.....
나만 잘하면 행복하게 유지되는게 결혼생활인줄만 알았다
나에게 있어서 결혼생활은 서로 맞춰가는 것이 아니였다
'갑을관계'그 자체였다
남편은 지는법을 배워본 적이 없는 사람이였다
부부사이에 왜 이기고 지는게 필요한지..
그 자체를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딸 셋 중 둘째로 자라며 양보하고 지는게 일상이였던 나는
남편에게 져주고 양보하는 일이 솔직히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지는게 곧 이기는 것이란걸 진작에 배웠던 이유도 있었다
물론 싸워보는 시간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내게 '신혼'은 생각처럼 달콤한 시간들이 아니였다
'신혼'은 오히려 우리 부부에게 있어선 '기'싸움을 하는 시간이였다
남편에게 지지 않고 끝까지 대응해보기도 하고
울면서 빌어보기도 하고
손 편지를 써보기도 하고
그 수많은 방법에도 지면 죽는줄 아는 남편을 이길 수 없었다
남편은 지지 않기위해 점점 폭력적인 방법을 썼으므로
결국 상처받는 것은 나였고
이러다간 가정이 풍비박산 나겠다 싶어 결국은 내가 지는걸 선택한 것이였다
이따금 그냥 져 버리기엔 집에 큰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 싶은 상황들만 끝까지 싸웠다
끝까지 싸우는 그런 순간이면 남편은 반드시 이성을 상실하고 하지말아야 하는 행동을 하곤했다
이렇게 일상적인 대화도 힘들었던 사람이였으니
'이혼' 얘기가 나오고는 더 대화가 되지 않았으리란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돈이 매우 중요한 사람이였다
돈에 대한 큰 상처가 있었기에 이해해줄 만도 했다
남편은 조금의 손해도 볼 생각이 없었고
이혼에 있어 자신이 피해자라 생각했으므로
본인 입장에서 잘못이 있는 나에게 부당한 대우와 상처를 주고 싶어했다
남편의 마음 속에는 어느순간부터 내가 '남'이되어있었다
그런 남편을 서류정리 될때까지는 그래도 내 남편이자 아이의 아빠라면서
끝까지 감싸안으며 내 도리를 다하려 했던 내 모습이
아둔하게도..이제서야 그 모든게 허튼짓이였음을 깨닫는다
사실 재산이라고 해봤자 빚 많은 집 한채밖에 없어서 돈으로 싸울 것도 없었다
어떤 문제든 회피하는 성향의 남편이였기에
조금만 대화가 깊어지려하면 자리를 피해버렸다
나는 감정 소모가 너무 심했고 나는 당시 회사 일까지 너무 바빴다
그 어떤 대응도 대처도 할 수 없었던 난 결국엔 변호사를 선임하게 되었다
변호사를 선임한다고 꼭 재판이혼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난 사실 가까운 사람 중에 이혼한 경우가 없어서
이혼에 관한 과정이든 뭐든 아는게 없었다
이혼은 '협의이혼'과 '재판이혼' 두가지로 나눠지는 거였다
'협의이혼'이란 것 안에 두 사람이 원만하게 대화해서 하는 '협의이혼'과
나처럼 변호사를 껴서 '법적효력'이 있으면서 판사의 개입이 있는 '협의이혼'이란게 있는 것였다
그것을 흔히 '조정이혼'이라 부른다.
곧 '조정이혼' 또한 '협의이혼'인 것이다
남편은 의사가 분명하지도 않고 그 의사를 나에게 표현하지도 않았다
사실 그는 무엇을 결정하거나 결단 내리는 성격이 못됐고
항상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사람이였기에
이혼에 관해 결정하는 그 모든게 그에겐 매우 어려운 일이 였을 것이다
나를 의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 제일 먼저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들을 끌어들였고
그게 안통하니 친구들을 통해 내 친정식구들을 끌어들였고
그 마져도 해결이 안되니 둘이 같이간 정신과 선생님께 의지하다가
그것마져 소용이 없으니 자신이 선임한 변호사에게 의지했다
부부의 문제는 오롯이 둘의 문제이고
아무리 친한 친구도 가족도 부부 사이는 모르는 것이다
나와 해결해야할 문제를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 '판'을 키워버린 것이
오히려 우리 부부 이혼의 과정을 더 악화시켰다
이혼변호사들은 말그대로 이혼만 전문적으로 하는 변호사들이다보니
많은 경험을 통해 상대를 직접 보지 않아도 일을 진행하다보면 성향이 훤히 보이는 모양이였다
"말도 안통하고 모든걸 감정적으로 대처하는데다 유치하고 치사하기까지 하네요
이렇게까지 하시는 분 솔직히 사실 잘 없거든요?
아직은 남편이시라 듣기에 표현이 좀 불편하실 수도 있겠지만.. 도대체 그동안 어떻게 사셨어요?
저희도 이혼을 진행하다보면 간혹 다시 생각해보시라고 말씀드리는 분들도 있는데
의뢰인분은 정말 이혼하시길 잘 하시는 것 같네요."
변호사의 그 냉철한 평가가
솔직히 나쁘지도 좋지도 않았다
다만 '내가 아주 힘든 결혼생활을 견뎌내온 건 맞구나' 하는걸
'전문가'에게 인정 받았다는 정도의 기분이였다
나는 사실 같이 산 13년이 넘어가는 그 시간보다
'이혼'이란 말이 나오고 지낸 3개월의 시간이 남편에게 더 질려버리는 시간이였다
너무도 못나고 유치하고 치사하기까지한 밑바닥의 모습을 보게 되자
그래도 자식낳고 10년 넘게 산 남편이란 사람이 저 정도의 사람이란게
내 삶에 대한 회한과 내 선택에 대한 자책으로 돌아왔다
내가 그만큼 부족한 사람이였기에
그만큼 준비되지 않았던 사람이였기에
이 정도의 사람밖에 만나지 못 한 것이라고...
어쩌면..어떤 사람이란걸 전혀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가정을 지켜야하니 내 스스로 눈 가리고 아웅했던건 아닐까.....
사는 동안 항상 내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하며
잘못이 없어도 사과하며 먼저 손 내밀고 다가간 나를
오로지 가정을 지키기위해 낮은 자세를 취했던 내 모습이
남편이란 사람에게는 막대해도 되는 아주 쉬운 사람으로 느껴지게했던걸지도 모르겠다
모든 가정이 다 그들만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사실 알고보면 사이가 좋은 부부들이 뭔가 대단한게 다른게 아니다
바로 '대화' . 즉, 소통.
소통만 잘 되어도 대부분의 문제가 '표면적 문제'로 들어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남편은 끝까지 회피했고
자신의 책임을 스스로 지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결정을 전혀 남인 변호사란 사람에게 떠 맡겼다
난 사실 대부분의 말들을 상호 변호사들끼리 의논할꺼라 생각했다
하지만 '조정'이란 결국 협의이혼이였으므로 부부간에에 계속 의사소통을 해야했다
감정 소모를 하지 않고 남편과의 대화를 더 이상 하고 싶었던 나의 의사와 전혀 무관했다
남편은 자신이 선임한 변호사랑 얘기하라며 나와의 대화를 항상 피했는데
웃기게도 그 변호사 마져도 무응답인 시간들도 있었다
남편의 목적은 날 괴롭히고 피말려서 마음을 죽게 만들고 싶은거구나 하는 생각이 확신에 이르렀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순간 변호사들을 혹시 모를 '재판이혼'을 준비하게 된다
지나간 시간 속 남편의 잘못을 증명할 방법은 없었으므로
'일기'가 재판의 증거로 채택되었단 글을 어디서 본 기억으로
'남편에 대한 회고록'을 몇날 며칠을 써서 변호사에게 제출했다.
'회고록'을 썼기에 자연스레 그 모든 시간을 '회상'해보게 되었다
나는 공든탑을 쌓고 있는 줄 알았는데
견고하게 해줄 '소통'이란 '시멘트'가 없었으니
무른땅위에 그져 '무너지지만 말아라'하며
그 긴 시간동안 힘없는 벽돌만 쌓고 있었음을
'가정'이란 이름이 허무하리 만큼 힘없이 무너지는 걸 보고서야 깨달았다
'가정'이란 이름은 당연 부부과 함께 쌓아올려야 하는 것을
어떤 모양으로 어떤 방향으로 쌓아올릴지, 어떤 노력으로 단단하게 만들지,
상호간에 '소통' 없이 오로지 혼자 애쓰고 희생하며 쌓아올렸으니..
남편이 홧김에 흔들어본 그 탑은 버틸 힘도 없이 와르르 무너져내린 것이다
많은 문제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가지를 뻣어 나왔겠지만
결국 이렇게 이혼에 닿게 된 그 뿌리는
'소통의 부재' 그 자체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