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이 한꺼번에 쏟아져내렸다
사람일이란게 한치 앞을 모른다지만
삶이란게 내 생각대로 되어주는게 아니라지만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어떻게 그 모든 일들이 폭포수가 쏟아지듯
한꺼번에 일어날 수 있는걸까
드라마 작가가 모든 시점을 계획해서 써내려갔을 때나 있을법한 날들이였달까..
우연의 작고 큰 사건들이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 듯
그 어떤 존재가 분명 마음먹고 짜놓는 판인게 아닌이상
이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만큼
내 모든 것들이 박살나고 잘못되고 있었다
정말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하다 하다 이런것마져 안되나 하는 순간들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마치 물을 담아두었다 일정 양이 모아지면 쏟아져내리는 바스켓처럼
준비도 되지 않은 나에게 그렇게 한꺼번에 모든 일이 쏟아지는 그런 날들이 이어졌다
마치 그 어떤 존재가 나를 시험해보는 듯 했다
삶의 무게를, 아픔을, 고통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 인간인건지
나는 신이 인간이 감당할 만한 고통을 준다고 그렇게 믿는 신념이 있었는데
이건 뭐 신이 날 과대평가한 그런 수준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든 감당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에 닿은 듯 했다
'진짜 저한테 왜 이러시는거에요...'
시작은 원망이였다.
모든 일들이 마치 나를 벼랑 끝에 내모는 듯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나를 떠미는건 역시나 남편이였다
'이건 그냥 나더러 죽으라는거구나..'
그렇게 느낄 수 밖에 없었다고 해야하나
"내가 자살하면 돼? 그걸 바라는거야?"
남편에게 한번은 실제로 내뱉은 말이다
아무리 화가 나도 할말 안할말은 구분하는 나였다
하지만 불안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나의 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나는 통제되지 않았고 그 무엇보다 말이 통제되지 않았다
내 속에 있는 말이 뇌를 거치지않고 입 밖으로 바로 튀어나온다고 해야하나..
냉전인 시간이였다 해도 남편은 놀란 눈치였다
내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닌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고통따위 신경쓸 사람이 아니였다
"그런건 너 알아서 하고"
남편의 대답이였다
오히려 그래서 오기가 생겼던 것 같다
'내가 진짜 죽어버리면 저 인간 좋은 일만 시키는 꼴이 되겠군
어쨌든 목숨줄 잡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가 이긴거 아니겠어?'
내 나름대로 '정신승리'를 해보자는 결단이 섰다
그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게
어쨌든 죽진 말고 죽이되든 밥이 되든 살아있긴해보자였던 것이다
말이 통제 되지 않는 나를 그 모두가 감당하지 못해했다
특히 깊은 비밀까지 나누는 나의 오래되고 깊은 친구들과 내 가족들이 그랬다
처음으로 '선'을 정확히 긋고 내 생각과 의견을 정확히 말했다
가족들에겐 그동안 나에게 부당하게 했던 행동 하나씩을 지적했다
모두가 다 그런 나의 말에 상처를 받았다
항상 받아주던 성격의 나였기에 한번쯤은 '급발진'해도 받아줄꺼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들 다소 강경해진 나를 어떻게 대해야할 줄 몰랐고
자신들이 받은, 받을 상처들이 두려워 나를 피했다
30대와 40대초반이 다 의미도 없이 먼지처럼 날아가버리는 것만 같았다
결혼으로 맺은 내 가정이
어린이집에서 만난 인연으로 10년 넘는 시간 함께한 친구들이
그래도 피붙이라 의지하고 싶었던 친정식구들까지
그 모든 관계에 문제가 생기고 균열이 생기니
이건 필시 나에게 무슨 큰 문제가 생긴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내가 이상하게 변했다고했고
남편은 내가 어떤 특정 정신병이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나 마져도 내가 그 병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오히려 날 더 병들게 했다
아픈 날 품어주고 지켜주어야 하는 사람들이 날 더 아프게 한다는 생각때문에..
하지만 실제 나는 그런 정신병이 없었다
인생에서 한번쯤은 올 수 있는 마음의 독감 같은거였는데
남편은 아픈 나에게 '문제'와 '유책'이 있다며 당당하게 말하며
자신의 가족, 내 가까운 사람들에게까지 내가 '정신병'이 있다고 선동했다
내 지인들이 남편의 말을 무조껀 믿었다는건 아니다
다들 내가 달라졌다고 느꼈고 있었기에 남편의 그런말에 흔들렸던 것이다
혹시나 '사실'일까봐 하는 걱정과 염려이기도 했다
당시 나는 정신과에서 처방받아 먹는 약이 있었다
혹시 감정이 흥분이 되어 조절이 되지 않을 때 '비상시'에 먹는 약이 있었다
그 약을 먹으면 멀미약을 먹은 것처럼 몽롱해지고 온 몸에 힘이 빠졌으므로
당시 엄청난 업무강도에 시달리던 나는 최대한 비상시 약 먹는 것을 자재했다
비상시 약만 별도로 보관해 두었고 그 약봉지가 어느새 가득차있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비상시'약은 내 신경들을 강제로 눌러버리는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저거 한꺼번에 먹으면 잘하면 죽을 수도 있겠는데?'
너무도 의연하게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들 떠올리는 스스로에게 흠칫 놀랐다
나는 '비상시'약들을 내 시선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꽁꽁 싸서 깊숙히 넣어버렸다
감정이 잘 조절 되지 않는 그 시간동안은
일하다가도 느닷없이 숨통이 꽉 조여오고 눈물이 쏟아지기도했다
그러면 난 회사건물 옥상에 올라갔다
주변에 그만큼 높은 건물이 없어 바람이 시원했고 의외로 뷰가 좋았다
옥상에 올라가면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조절 안되는 눈물을 겨우 겨우 멈춰 사무실에 돌아가기도 하는
잠시 숨을 돌리는 공간이였다
하지만 '비상시'약들을 보며 '죽음'을 나도 모르게 떠올린 주간은
통제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두려워 옥상을 올라가지 못했다
'진짜 우울증은 이런거구나..'
진짜 우울증은 자신이 우울증인걸 느끼지 못한다고 하더니..
자신의 의지와 의도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그곳이 더 아름답고 편안해보여 나도 모르게 죽음의 길로 가게 되는 거라고 하더니..
'죽고싶다'라는 생각이 드는게 아니였다
지금의 고통이 너무 고통스러워
그 고통을 끝내버리고 싶은 것이였다
분가를 하면서도 그 '비상시'약들은 그 집에 고스란히 두고 나왔다
혼자 있으면 얼마나 위험해질지..
그렇게 죽어버리면 뉴스에 나오는 '고독사'중 한 명이 될 수도 있을터였다
그런 일이 절대 '남의 일'만이 아님을 이미 인생을 통해 깊게 경험한 나였다
이대로 있다간 죽을 것 같아 돈 한푼도 못 받고 뛰쳐나온 집이였다
그 때는 내 자식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였다
내 아이도 엄마가 잘못되는 것보다는 같이 살지 않은 편이 나을게 아닌가.....
나 답지 않은 시간들이였다
아니 어쩌면 지금이 내 밑바닥에 숨어 있던
나 조차도 몰랐던 나의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당시는 그런 시간이 얼마나 지속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였다
아직 시작도 안했것 같은데 내 고통은 이미 감당할 수 없이 깊어져있었다
혹시나 나도 모르게 또 죽음을 생각할까봐
그 생각만 피할 수만 있다면 어떤 미친짓이든 나쁜짓든 해도 좋을 것만 같았다
안그래도 무일푼으로 분가를 해서 경제적으로 힘들었는데
나는 평소에도는 사지도 않을 것에 돈을 썼고
누군가의 흔적,기억,때가 묻은게 싫어서
없는 상황에서도 카드 무할부를 최대한 끊으며 가전과 가구들을 다 새것으로 장만했다
평생 카드 무할부라곤 써본적이 없는 나였다
그래도 진짜 미친짓, 나쁜짓을 할 수는 없으니
차라리 돈을 쓰는 편을 선택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에게는 그 마져도 '일탈'이였으니
분가를 하고 짐도 채 정리하지 않은 채로 서울 여행을 홀로 떠났다
집을 그렇게 엉망으로 둔채 어딘가를 갈 수 있는 성격의 나도 아니였다
이제 내 밥벌이는 내가 해야한다며
늦은 나이에 새롭게 시작한 일과 다니는 직장을 놓을 수 없어
말도 안되는 업무강도를 감당해놓고는
결국에 내 발로 그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몇 달은 월급보다 카드 할부금이 더 많이 나올 상황이였다
비상금 한푼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어떤 곳에 가서 어떤 일을 할지 일은 할 수나 있을지 결정도 되지 않은채로 회사를 관뒀다
그렇게 대책없이 행동할 나는 더더욱 아니였다
나는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난 경주 자동차 같았다
내 스스로 통제 할 수 없는 상태인데
속력을 미친 듯이 나고 있었다
그러니 차가 전복되어 뒹굴거리고
여기 저기 부서지고 불이 붙어 타는데도 멈춰지지 않았다
안그래도 달라진 내가 하지 않을 행동과 선택을 하니
가까운 사람들이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는건 아닌지 불안의 시선으로 보는것도
솔직히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였던 것이다
지나서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것이 '살기 위한 몸무림'이였다
'죽을 바에야 잘못된 선택이라도 해서 살아있는게 안낫나'하는 마음이였다
살아있으면 반드시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올 것이기에
그때 잘못되고 고장나버린 것들을 바로 잡으면 되는 것
그렇기에 지금 비로 엉망진창인 선택들 뿐이다해도
나중의 나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과정이라며 내 자신을 설득했다
모든일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듯 했다
예상도 대비도 못한 나에게 구정물이 와르르 쏟아져내렸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면 나는 죽음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그래도 목숨줄은 붙들고 있자며 발버둥 쳤고
그렇게 나 답지 않은 시간들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