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의 우선순위 가장 마지막에 있던 사람.
"수저를 떨어트려서 그런데 죄송하지만 수저 좀 다시 가져다 주시겠어요?"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남편이 직원에게 건낸 한마디는 참 다정하고 부드러우며 예의가 있었다
"나는 할 말 없고 변호사랑 얘기해라."
그날은 '협의이혼'을 위해 제출할 '조정신청서'에 적을 협의사항에 대해 의논하는 날이였다
방금 직원에게 상냥했던 그 사람이 마치 다른 사람인 듯 나를 향한 목소리는 차갑고 딱딱했다
"밥은 먹고 얘기하자. 애가 불편해서 체하겠다. 식사 끝나고 커피숍이라도 가서 얘기하자."
"아 글쎄 나는 할 말이 없다니까."
이혼 얘기가 나혼 이후 남편은 자기 입장을 한번도 제대로 얘기하지 않았고 뭐라도 얘기하려하면 자리를 피하기만 했다
그날은 본인 변호사랑 면담 후 입장을 정리한 후 꼭 얘기해주기로 하고 기다렸던 날이였다
당장은 아이가 불편하게 밥을 먹는건 아닐지 염려가 되었다
'아이도 혹시 느꼈을까...?'
또 하나의 염려가 있었다.
전혀 모르는 남에게는 '좋은'사람이 진작 아내에게는 '불친절'한 사람이 되는 아빠의 모습이
자신을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한다는걸 배우지 못하는건 아닐지..
남편은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했다
부탁을 거절하지도 못했다
간혹 그 부탁들 중에는 본인의 신상에 큰 문제게 될 만할 일도 있었는데도
상대에게 한 마디 말도 못하는 사람이였다
남편은 사람관계에서 쌓인 스트레스, 억눌런던 감정들을
편하고 만만한 나에게 쏟아내곤 했던 것이다
어머님은 그런 아들을 잘 아셨던 것 같다
항상 앉혀놓고는 네 옆에 있는 네 사람이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라 가르치셨으니
하지만 남편에겐 결국 의미 없는 '잔소리'가 되었을 뿐이다
당시 원룸 세입자 중 한명이 속을 썪이고 있는 상황이였다
계약서도 쓰지 않고 보증금도 없이
월세도 밀리고 가스,전기도 체납되고 있었다
빨리 정리하라는 나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어찌할지를 모르더니
결국 그 세입자가 핸드폰도 정지된채 잠수를 타버린 상황이 된것이다
10년 넘게 자식까지 낳고 같이 산 마누라는 아주 냉정하고 잔인하게 내 친 사람이였다
가족들 보험이 전부 계약자가 내 이름으로 되어있었는데
남편 변호사가 보험으로 보험대출을 내거나 해지하면서 해약환급금을 타는 일이 허다하다 조언을 해준 모양이였다
난 아무것도 쥐고 있는게 없었기 때문에 보험이라도 쥐고 있으려고 했다
사실 그 보험으로 뭘 할 수 있다고 생각조차 해본적도 없는 나였다
서류 정리되면 계약자는 바로 넘겨줄테니 걱정말라고 약속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바로 이행하길 바랬던 남편은 변호사를 통해 '이행요청서'를 날렸다
아주 나를 탈탈 털어버리려 하는 것 같았다
그 당시 나는 당장 생활비를 걱정해야하는 상황이였다
하지만 이제 그런건 남편에게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며 오히려 통쾌한 상황이였다
남편은 오로지 '돈'생각밖에 없는 상황이였고
한푼이라도 자신이 더 가져가고 나에게 덜 줄 생각밖에 없었다
나에게는 있는거 없는거 다 내 놓으라며
본인 뜻데로 하지 않았을 땐 '법적 대응'을 하겠다며 걸핏하면 협박하던 그는
그 세입자 하나를 어떻게 하지 못했다
나중에는 그런 세입자를 받은 네 잘못이니 나보고 그 원룸은 알아서 해결하라고 했다
그런 얘기가 오고 갔을 땐 이미 재산분할이 끝나 그 집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상황이였다
그러고보면 그는 항상 그랬다
나와 아이에 대한 배려도 기본적인 예의도 없었다
나는 자신의 우선순위에서 항상 마지막인 사람이였다
그걸 제일 잘 알 수 있는 한가지 일이 떠오른다
아이는 중이염을 항상 달고 살았다
한번은 중이염이 꽤 오래 갔던 적이 있었다
밤에 열이 났기에 이미 며칠을 잠을 잘 못 잔 상황이였다
항생제를 너무 오래 먹으니 설사를 했고 항문이 다 헐어서
기저귀를 벗겨놓고 따라다니며 흐르는 변을 따라다니며 닦던 날이였다
남편은 친구들과 저녁약속을 잡았다
난 도저히 나갈 수 없는 상황임을 얘기했지만 남편은 약속을 거절하지 못했다
밥만 먹고 오자는 약속을 받고서는 아픈 아이를 아기띠를 해서 결국 약속장소에 나갔다
아픈 아이가 얼마나 불편했겠는가
계속 칭얼거렸기때문에 나는 밥도 제대로 못하고 아기띠를 한채 계속 서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남편은 대화가 재미있었는지 식사시간이 길어졌다
상황을 알기에 당연히 얼른 식사만 마치고 일어날꺼라고 생각했던 나였다
이제는 집에 가나 했더니 남편은 2차를 같이 가고 싶어했다
나와 아이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이였고 혼자라도 다녀오라고 했다
부부모임에 어떻게 혼자 가냐며 남편은 노발대발 화를 냈다
며칠 잠을 못자고 아픈 아이 뒤치닥거리 하느라 몸도 지치는데
아기띠를 하고 두시간 가까이를 서 있었으니
내 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였다
나도 이건 도저히 양보를 할 상황이 아니였고
아이가 아파서 약속 취소해달라한걸 못한다고해서 나왔더니
밥만 먹고 빨리 일어서도 모지랄 판국에 뭐하는 행동이냐고 강경하게 나갔다
나의 말에 자극받은 남편은 핸드폰을 던져가며 폭발했고
결국 우리 둘을 집에 내려놓은채 친구네 부부들과 2차를 하기 위해 나갔다
친구가 가장 우선인 사람이였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보다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더 좋고 소중한 사람이였다
오죽하면 그렇게 좋으면 친구랑 살지 왜 나랑 사냐는 말을 했을까..
남편이 가족을 뒷전으로 뒀던 일이 한두번도 아니였지만
저 날이 특별히 기억이 나는건
나만 불편하고 나 혼자만 참으면 되는 상황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아픈 아이가 같이 고생하고 불편했다는 점에서 화가났다
배우자로써 내가 고른 사람이니 나에게 어떻게하든 감당하는건 당연 내 몫일 것이다
하지만 자식한테는 '부모'로써 동등한 존재 아닌가
아이를 배려하지 않고 아이를 위하지 않고 아이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건
도저히 참아줄 수도 용서도 되지 않는 일이였다
누군가의 돌 잔치에 가서 막상 우리 아이는 챙기지도 않으면서
남의 아이에게 어린이 수저를 챙겨주는 남편을 보면서
저 사람의 머리 회로 속은 어떻게 된걸까 진심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였다
그래서 인정욕구가 강하기도 했다
가족에게 인정받는건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반드시 해야하는 '의무'가 있기에 그 선을 넘었을 때만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에게 받는 인정은 참으로 쉬웠고
남편은 '쉬운 인정'을 선택했던 것이였다
아직은 내 아이도 어려서 아빠의 손길이 필요한 시간들 속에서도
항상 남편은 남의 아이와 가족을 먼저 챙겼다
언제든 내가 필요한 순간들마다 내 곁에 없던 사람이였다
그의 우선순위 가장 마지막에 있던 사람이니..
소중한줄도 귀한 줄도 모르는 존재였으니...
그러면서도 그 모든걸 당연하게 생각했던 사람이였으니......
이혼하게 되는것도
이혼으로 벌어지는 그 모든 상황들도 그리 이상한것도 아닐지도 모르겠다
나를 '내 사람'이라 생각해본적 없는 남편이였을 것 같다
그러니 자식도 있는데 '명백한 이유'도 없이 이렇게 이혼하게 되는게 아니겠는가
딱히 잘못도 없는 내가
부당함과 억울함들을 다 받아내야 하는 것도
처음부터 헤어지는 순간까지 '남'이였으니 그런 것 아니겠는가
물론 '진짜 남'에게는 항상 친절하고 상냥하고 예의바른 남편이였지만
어쩌면 남편에게는 유일하게 '함부로 대해도 되는 남'이 였던건 아닐지..
누군가 그런 조언을 해준 일이 있었다
첫 딸은 시집보내고 본인도 어떤 가정의 가장이자 누군가의 남편인 50대 남자분이였다
그래도 자식 낳고 산 남편이 낫다고
병상에 누워있어도 없는거 보다 나은게 남편이라고
나는 그말을 실제 공감하는 입장이였고 인정이 되었기에
그 말들이 가슴에 돌덩이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날을 뒤돌아 보아도 그렇고
이혼을 진행하며 겪는 남편들을 행동과 말들을 보고 있으니
내 남편에게만은 '예외'가 될 수 있는 말이리라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이 돌덩이에 있던 그 시간동안
왜 그리도 와이프를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남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을까...
'나에게는 아무 상관도 없는 말이였네.'
그렇게 결론이 나자 그 돌덩이 같은 말들이 마음 속에서 부셔져서 가루가 되었다
소중한지도 귀한지도 감사한지도 모르는 사람이기에 곁을 지키는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엄마'이기 때문에 그래도 '가정'이란 이름의 끈을
끊어질 것 같아도 할 수 있는데까지는 붙잡아 보려한 나였다
나 역시도 후회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람일이란 알 수가 없으니..
이제 자식 낳고 사는 '일반적 가정'의 모습을 꾸릴 수 없는 것이 컸다
남편이 못났든 어쨌든 '가정'이 깨어지는 것은 큰 상처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짧은 시간도 아니고 13년이 훨씬 넘은 시간동안
오로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참아내고 인내하고 품어온 시간이였다
그 시간들이 물거품처럼 의미도 없이 흩어지니
어찌 아프지 않겠는가.....
그래도 미련 한줌이 없었다
'아내'로써는 뒤돌아 볼 일이 실 한오라기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나마 그 긴 시간의 유일한 보상이 그것이였다
가족이였을 때도
그에게 항상 '남'보다 못한 나는
그 어떤 '남'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