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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 다 같이 먹는 식사도 졸업

'끝'을 향해 가고있는 '가족'이란 이름

by Heana

설 명

난 이혼전에 분가를 먼저

그랬기에 아들의 졸업식은

2~3주 가량을 남편을 보지 않았던 시점이였다


남편은 졸업식에 꽤 늦게 나타났고

졸업식에 오는 사람 답지 않게 덥수룩한 모습이였다

시간이 지나서 안 건데

하필이면 내가 보낸 '조정신청서'가 그날 도착한 것이였다


나도 사실은 아들 졸업식은 지나고나서 뭐든 하려고 했었다

분가를 하는 것도 본격적으로 이혼을 진행하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이미 마음의 고통이 가득차서 그 시간을 인내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였다

그래도 조정신청서 받는날이 졸업식 되길 바라진 않았는데

하필이면 딱 그날 '조정신청서'가 도착한 것이다


어쩐지 그날 남편은 매우 화가 난 모습이였고

아들과 손을 잡고 쌩~사라지며 나를 따돌리 듯 행동했다

전혀 의도한 상황이 아니였지만 남편은 당시 마음이 매우 상했고

더욱 분노한 남편이 나를 더 괴롭히게만드는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다


"내일은 아이를 위한 날이니까. 싸우지 말고 식사 한끼 하자."

졸업식 전날 내가 한 말이였다

그말을 듣고 그날만은 좋은 맘을 먹고 나야야지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남편이였다

그런데 떡하니 '조정신청서'가 도착했으니 그 분노가 오죽 했을...


다같이 밥을 먹으러 가긴했지만 분위기는 냉냉했다

딱히 언쟁을 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화기애애하게 식사할 수도 없는 황이였다

남편은 그날 다른 일이 있어 먼저 자리를 떠났고 아이와 둘만 남게 되었다


"오늘 졸업 축하해 아들. 좋은 날 슬픈 소식 얘기해야해서 미안하지만 너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오늘 가족으로 다 같이 먹는 점심도 마지막이 될 것 같다. 가족으로 다 같이 먹는 식사도 '졸업'하는 거란다.'


아이는 아무 잘못이 없다

분명 가족의 일원이지만 가정이 깨어지는데 어떤 의견을 낼 수도 없다

엄마 아빠 둘이서 하는 결정에 오롯이 따라올 수 밖에 없고

자신의 인생의 큰 부분이 오락가락하며

가장 상처 받는 존재이다


학교에 크게 정을 붙이지 못했던 아이였기에

학교를 '졸업'하는데한 슬픔과 아쉬움은 없었다

아이에게는 '가족으로써 마지막 식사'가 더 슬펐을 것이다


엄마 아빠의 이혼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하고 설명하는 것도

역시나 오롯이 나의 역할이였다

분노에 차오른 남편이 아이에게도 나에 대한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한 때여서

아이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킬게 훨씬 더 많아졌다


말하면서도 슬프고 미안하지만

꼭 해야만 하는 일이였다

슬프다고 아프다고 회피하면 안되는 일이였다

"아들, 아프다고 힘들다고 피하면 안돼. 사람은 순간 그럴 수 있거든?

하지만 그렇게 계속 '회피'하다간 정말 소중한 걸 잃을 수도 있는거야.

엄마도 이런 말을 할 때 너무 속상하고 슬프거든

너도 알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을 수도 있을거야

너가 알 필요 없는 것까지 말해서 굳이 아프게 하진 않을테지만

네가 꼭 알아야할 것들은 엄마가 계속 설명해줄께

우리 제대로 아프자

그리고 아픔속에서 성장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어보자."


아마 아이는 내 말을 온전히 다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도 아이의 눈높이에서 얼만큼 얘기하고 어떻게 설명해줘야하는지

항상 어려움을 겪었고 고민이 되었다

그래도 내가 아이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은 느끼는 듯

내가 하는 대부분의 말들은 알겠다고 대답해주었다


무엇보다 고마운 건 어린 자기가 듣기도 이상한 아빠의 말들을

내게 와서 항상 확인해봤다는 것이다

아이와 신뢰관계에 실패했다고만 줄곧 생각했던 나였다

하지만 아이의 질문 속에서 나에 대한 신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빠가 엄마에게 대해서 일부러 나쁘게 말한 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의도가 아들과 나 사이를 멀어지게 하려한다는 것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발달이 느려서 어리게만 생각했던 아이였는데..

어느 정도 사람도 볼 줄알고 상황 파악은 할 줄 아는 것 같단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평상시 내가 느꼈던 아이보다 실제 아이는 더 성숙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빠 말이 '사실'이 아닌 줄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혹시나 사실일까봐 하는 불안이 조금은 있었기에 나는 아이를 끊임없이 안심시켰다


"지금은 엄마와의 신뢰도 있고 아빠 말이 '잘못'되었다는걸 느끼지만

엄마는 가끔보고 아빠는 매일 같이 살고

아빠가 아니면 너는 아빠가 없으면 살 수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계속 듣다보면 어느 순간 그 말이 '사실'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될 수 있어,

그걸 '가스라이팅'이라고 하는 거란다."


이런것 마져 설명해줘야하는게 맞는지 이런 표현이 맞는건지

말하면서도 내 스스로도 의문스러웠지만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은 아니였기에 나에게도 매우 어려운 숙제였다

남편이란 사람은 도대체 왜

'사실'이여도 아이에게 하지 말아야할 이야기를

다분한 의도를 가지고 아이에게 얘기하는 건지..

밉다못해 한심하게 느껴졌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이는 아빠의 말에 많이 흔들리지 않았고

지금까지 '의지'하며 자신의 의사없이 살았던 남편은

아이를 심적으로 의지기 시작하며

오히려 아이에게 이기지 못하고 휘둘리고 있었다

솔직히 그것도 걱정이긴 했지만

'가스라이팅'을 당하느니 차라리 아빠를 '가스라이팅'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짜피 내가 손 쓸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도 했다


분가한 나는 나대로

아빠와 둘이 사는 아이는 아이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삶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었다

우리의 이혼도 양쪽 변호사를 통해 절차가 진행되어 가고 있었기에

'가족'이란 이름이 그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아들의 '졸업식'

'가족'이란 이름으로 셋이서 먹는 식사도 '마지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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