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비밀일기 17편
팩트를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본다
가슴에 구멍이 술술 뚫린다
그건 내게 상처를 내려는 '자해'같은게 아니다
오히려 나중의 아픔을 감당하려 미리 뚫어놓는 '숨구멍'에 가깝다
'사고'처럼 만나게 된 그 사람이였다
그 타이밍 마져 내겐 적어도 '인연'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였다
그 누구도 의도하지도 미리 짐작조차 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서로 끌렸고 그 끌림이 몸과 마음이 깊어지는 지금까지 오게 했다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다고 탓을 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행동이 있었다
그것은 책임을 동반해야 하는 행동이였다
우리는 내가 선택하고 행동한 것에 대한 책임은 질 수 있는
40대라는 나름 성숙한 나이 아닌가
책임질 수 있는 만큼 행동하라는게 그리 어려운 말은 아니였을텐데..
나는 10년이 넘는 결혼생활을 하며 모든것이 단절된 삶을 살았거든
같이 산 사람은 소통이 제대로 되지도 않았고
나의 필요를 살펴보고 채워주는 사람이 아니였어
그러다 보니 네가 챙기는 그 꾸준한 '작음 챙김'들이
내게는 '돌봄'으로 느껴지는 거라..
내 표정 변화, 목소리 톤 어떨때는 문자에서 조차 내 기분을 감지하는 널 보며
깜짝놀라는 순간도 더러 있었어
그만큼 예민하게 포착했다는건 네가 나에게 꽤 깊게 마음을 기울였단 뜻이겠지
40대가 되어 성숙한 연애를 한다면 우리 같은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어
우선 대화가 통했어
넌 그 어떤 말이든 들어줬고 공감해주기 위해 노력했어
기분 나쁜걸 말하면 즉시 말하고 되도록 수정하려 애썼어
내가 불편한걸 솔직히 말해도 관계에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단게
내게는 참 소중한 경험이였어
연락이 잘 돼지 않아도 불안해하지 않았어
'일이 바쁘겠지. 무슨 일이 있겠지.'하고 기다릴 수 있는 여유와 신뢰
때론 씻지도 못해서 덮수룩한 수염에 팬티와 런닝 차림에도
그 편안함마져 '애정'으로 느껴지는 마음이였어
그 모든게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익숙한 자연스러움이 되어가는게
'난 이런 사람을 꿈꾸는 구나. 이렇게 살고 싶구나' 깨닫게 했지
나..사실..내 '불안'이 길을 잃었던 것 같아
내 불안을 어디에 둘지 몰라 온통 너를 향했었던 것 같애
이제 내 불안이 조금씩 그 길을 찾아가려하니
이제서야 내게 있어 우리의 관계가 어떤 의미인지
내게 무엇을 남기는건지 보이는거라
마음이 차분하다 못해 마치 무감각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그날도 너는 그런 나를 감지했어
먼길을 달려와서 분명 쉬고 싶었을텐데
늘상 하던 것처럼 내 집으로 바로 오지 않고
'데이트'하자며 함께 커피숍을 향했지
그렇게 한참을 대화하고
집에 들어와서도 술 한잔하면서도 얘기하고
넌 내가 '정서적 교감'을 충분히 했다고 느낄만큼의 시간을 만들어주었어
이런 너니..내가 마음이 흔들리지.....
분명 가장 네게 감정의 진동이 차분했던 날이였는데...
결국에 난 우리에게 금기 같은 말을 해버렸지
"사랑해"
너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나도"라고 대답해주었어
그랬네
넌 내게 '40대의 첫 사랑'이였네
그리고 원래 첫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하잖아
그져 찬란하고 시렵게 아름다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