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비밀일기 22편
넌 연애시절에도 감정표현이 참 서툴고 느린사람이였다
당시에 넌 '사랑해'란 말을 내게 처음 썼다고 했었다
그때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할 수 있다 했었는데..
난 너에게 내 경계를 얘기했다
난 이별을 말하는게 아니였고
내 말은 최후통첩도 아니였다
우리가 같은 방향은 보고 있기는 한건지 확인받고 싶은게
과한거냐고 물었을 뿐이다
하지만 너는
내 스스로도 답을 못 찾는 질문을
너에게 떠넘기는 듯 느꼈고
불편해했고 부담스러워했다
넌 마음을 묻는 순간은 항상 부담스러워하고 생각이 막히는듯했다
'성(性)'에 대한 대화는 그 누구보다 잘 통하는 우리인데
마음과 감정을 얘기하는 순간만큼은 소통불가가 되어버렸다
사실 난 네가 나에게 언젠가 한번쯤은 '사랑'이란 말을 꺼낼지도 모른다는
그런 막연한 예감이 들곤 했다
하지만 '예감'이 아닌 '기대'일까봐 얼른 지워버리곤 했었다
그런데 돌아 돌아 돌아온 너의 대답은 희안하게도 '사랑'이였다
"우리가 무슨 사이인지 말할 수 있어?"
"애인이지"
그런데 난 그 대답에 불같이 화를 냈다
사실 네가 사랑이란 말을 꺼내면 난 많이 놀랄꺼라 생각했다
어쩌면 드디어 듣고 싶은 말을 드디어 들은 듯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40대의 나는 20대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고
그 반응은 내 스스로도 뜻밖이였다
40대의 나는 선택도 없고 책임도 없는 사랑이란 단어에 반응하지 않았던 것이다
너는 그져 '애인'이라는 말을 '사랑하는 사람'이란
단어 그 뜻 그대로의 의미로 내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엄연희 '관계의 이름'이였다
우리는 그런 관계의 이름을 매길 수 없는 사이다
그렇기에 내가 이토록 혼란스러운 건데 넌 아무렇지도 않게 '애인'이라니
세상에 밝힐수도 없는 어쩌면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 비밀에 두어야할지도 모를
그런 존재를 누가 '애인'이라 부른단 말인가
너에게 그렇게 단순하고 쉬운 일이였나..
우리의 관계를 정의하는 일이
그져 서로에 대한 마음이 같은 그 하나면 된다는
그것만으로는 우리가 용인되는 사이가 아니라 생각하는 내가 복잡한건가
그래도 나름은 피하지 않고 솔직하게 자기 마음을 '사랑'이란 표현한 넌
내 반응에 당황하고 또 상처받아했다
나는 오히려 너와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분명해졌다
나는 니가 시간이 필요한거라고 이해했거든
사고처럼만나 생각치않게 깊어졌으니
스스로의 감정이 뭔지 깨닫을 시간이 필요한거라고
드디어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에만이 무언가 바뀔꺼라고
그런데 경계를 말하는 나의 그 모든 말들을
넌 연애하던 시절 투정부리듯 '이별'얘기했던 나의 모습과 같다고 여겼다
내 말이 그렇게 어렵나..?
우리 관계의 이름을 매길 수 있는 무게 만큼
자신의 행동에 책임 질 수 있을만큼만
행동해야 맞지 않겠나는 그말이
네가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나 만나보겠다고 지어내서 할 사람도 아니란거 잘 안다
그 말을 꺼낼만큼 너도 진심이란거
하지만 네 입에서 '사랑'이란 말이 나온 그 이후도
너는 그 아무것도 움직일 생각이 없다는걸 난 이제 알아버렸거든
나는 마져 남았던 1%도 다 비워내게 돼
딱 이정도가 시간을 건너 다시 만난 우리의 인연의 깊이였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