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형 인간
나는 계획형 인간이다. 언제나 그래 왔다. 어릴 적 학창 시절부터 지금 가지 줄곧 언제나 계획형 인간이었다. 장기 계획이 아니라 단기 계획형이다. (어릴 적에는 장기 계획도 세웠지만, 지금은 바로 앞만 보고 살아가고 있다.) 나는 계획을 세울 때면 하고 싶고 해야 할 게 너무 많아서 제법 과하게 세우는 편이다. 다 지키는 날은 그날 밤에 침대에 뻗어버릴 정도로 지치게 된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나의 계획은 일부만 실천하게 되는 셈이지만, 그것만도 적지는 않다.
올여름에 내가 있는 나라에 언니네 가족과 사촌동생이 놀러 왔다. 어찌 된 게 나를 뺀 어른 세명이 딱히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들 그냥 비행기표 사서, 숙소 예약하고 그냥 왔다. 딱히 뭘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들이 다른 많고 많은 여행지 중 이곳은 찾은 이유가 내가 있기 때문이기에 이들이 즐겁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약간 마음에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매일 밤 나는 다음 날 계회를 세워서 모두에게 공유하곤 했다. 오전에는 어디, 어디, 어디를 가고 점심은 어디서 먹고 (미리 예약), 점심 후 갈 곳은 어디 어디이며, 저녁은 어디서 먹는다-등 전 날 미리 일정을 알렸다. 긴 시간을 있는 게 아니기에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어영부영 시간만 보내고 정작 봐야 할 것들을 많이 놓칠 것만 같았다. 나는 이런 계획이 세워져 있어야만 맘이 편한 사람이다.
아침에 연구실에 오면 제일 처음 하는 일이, 메일함을 열어 확인하고 그 후 오늘 할 일을 스케쥴러에 작성하는 거다. 투두 리스트를 작성하면 그제야 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해야 할 것들이 머릿속에 정리가 되고, 그에 맞춰 행동하기 시작한다. 계획을 다 지키는지 여부는 내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나는 계획과 함께 해야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란 거다. 계획이 없는 자유로움은 내게 불안감을 준다. 지키지도 못하는 계획 왜 그렇게 세우냐고 내게 뭐라 하지 마라. 지키는 건 다음 일이고, 일단 계획을 세우는 게 난 좋으니까.
12월에 엄마가 이곳으로 오신다. 엄마를 위해 계획을 문서로 작성했다. 언니에게 한번 검사를 받고자 공유했더니 언니가 "너는 진짜 계획형 인간이구나"라고 놀랍다고 했다. 이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나는 더 신기하지만, 그런 다름을 인정하는 것도 사람과의 만남에서 즐거운 요소이기도하다. 엄마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나니 맘이 한결 편해졌다. 이제 이걸 지키기만 하면 된다. 얼른 12월이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