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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Mar 02. 2023

봄날의 냉동 쭈꾸미볶음

아쉬워도 반가운 냉동주꾸미

나의 고향은 쭈꾸미로 유명한 해안가였다. 언젠가부터 봄이 되면 쭈꾸미 축제를 하곤 했다. 한 번도 축제에 가본 적은 없지만, 엄마는 봄이면 언제나 싱싱한 쭈꾸미를 사 와서는 쭈꾸미를 데쳐 샤부샤부를 해주셨다. 봄에 먹는 쭈꾸미는 머릿통에 알이 밥알처럼 꽉 차있는 것이 별미였다. 어릴 때도 딱히 알이 가득한 머릿통이 징그럽거나 하진 않아서 난 제법 즐겨 먹었던 것 같다.

봄이 오고 있다. 연구실에서 일하다가 잠시 창밖을 보고는 놀랐다. 벌써 하얗게 꽃이 펴있었다. 꽃이 피고 있는 걸 눈치채지 못했는데, 조금 날씨가 풀리더니 금세 만개해서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렸다. 내가 있는 프랑스에서는 아마 주꾸미를 먹진 않을 거다. 그래서 봄이 오더라도 쭈꾸미를 먹을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퇴근길에 들른 아시아마켓 냉동코너에 Baby Octopus라고 적힌 주꾸미를 발견했다. 냉동이지만 너무 반가웠다. 냉동이니 한국에서 가족들과 먹던 싱싱한 봄 쭈꾸미와는 당연 비교가 안 되겠지만, 그래도 쭈꾸미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제법 기뻤다. 냉큼 한 봉지를 안아 들고 집에 돌아왔다.

아무래도 냉동 쭈꾸미로 샤부샤부처럼 데쳐먹기는 맛이 아쉬울게 뻔했다. 그럴 땐 역시 양념이다. 싱싱함이 부족할 땐 양념 듬뿍 넣어 그걸 가려주면 되는 거다. 전에 사 왔던 냉동낙지는 쫄깃함이 조금 부족해서 아쉬웠는데, 쭈꾸미는 어떨지 조금 기대가 됐다. 양념을 준비한다. 뭐 별거 있겠는가.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설탕, 다진 마늘, 후추면 뚝딱이다. 냉동 쭈꾸미를 해동시켜 준다. 귀찮을 땐 물에 담근 채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줘버린다. 나만의 비법이다. 너무 오래 돌리면 익어버리니, 물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얼어버린 쭈꾸미가 녹을 정도만 돌려줘야 한다. 냉장고를 뒤져 채소를 준비한다. 양파, 쪽파, 당근 정도면 충분한데 양배추가 남아있어서 분명 잘 어울릴게 뻔했기에 양배추도 냉장고에서 함께 꺼낸다. 채소들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준다. 준비는 끝이다. 이제 팬을 꺼내서 기름을 두루고는 쭈꾸미를 넣고 볶아준다. 조금 익어갈 무렴, 양파와 당근, 양배추를 넣고 볶아내 준다. 거의 익어갈 무렴 만들어둔 양념장을 넣고는 볶아준다. 양념이 탈까 걱정된다면 살짝 물을 넣어주어도 좋다. 마지막으로 쪽파를 넣고는 휘리릭 한 번 섞어주며 마무리한다.


그릇에 담고 예쁘게 참깨를 뿌려내 주면 쭈꾸미볶음 완성이다. 밥은 역시 흰쌀밥을 준비한다. (어차피 잡곡은 없어서 흰쌀밥뿐이지만...) 조금 매운 고춧가루를 사용해서 매콤한 맛이 맘에 든다. 밥과 함께 매콤한 쭈꾸미를 먹어본다. 제법 쫄깃하다. 크기가 작아서 자를 것도 없이 한입 크기이다. 매콤한 맛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맛있다는 거다. 양념을 밥에 얹어 비벼 먹는다. 참기름을 가져와 살짝 뿌려준다. 참기름의 고소함에 매운맛이 조금은 사그라드는 듯하지만 내 혀는 여전히 얼얼하다. 엄마가 해주던 봄날의 싱싱한 한국 쭈꾸미와 비교하기는 많이 부족하지만, 기대도 못했던 쭈꾸미를 만난 덕에 조금은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한 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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