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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Jul 13. 2023

도토리묵과 프랑스산 명이나물 전

프랑스에서 한국에서보다 맛있게 먹다

프랑스에서 박사 후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이곳의 한글학교에서 주말에 봉사도 하고 하다 보니 아는 한국인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하루는 내가 봉사활동 중인 한글학교 유아반 한 학부모에게 연락이 왔다. (다른 행사에 같이 참여하고 연락처 교환했음!) 명이나물을 좋아하냐는 거였다. 뜬금없었다. 갑자기 명이나물? 하면서 네 좋아하죠~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러자, 자기가 명이나물을 수확하러 숲에 왔다는 거다. 명이나물이 널려있다면서 다음에 같이 오자고 나에게 말했다. 그렇게 명이나물 채집 약속을 잡고, 만나기로 한 날이 되었다. 명이나물을 담아갈 에코백 하나를 챙겨서 약속 장소로 갔다. 트램에서 내리면 나를 차로 픽업해서 데려간다고 했다. 만나서 인사하고는 함께 차를 타고 숲으로 갔다. 숲에 들어서는 순간, 명이나물의 그 알싸한 향이 확 났다. 왜 명이나물이  wild garlic인지 알 수 있었다. 정말 마늘향이 강하게 났다. 그냥 어디를 둘러봐도 보이는 게 명이나물이었다. 태어나서 생 명이나물을 처음 봤다. 지금껏 한국에서는 간장에 절여져 삼겹살 집 테이블 위에서나 구경하던 그 명이나물이 숲에 널려 있었다. 뭔가 현실감이 없이 너무 신기했다. 그 집 초등학생 아이도 함께 와서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를 유튜브로 틀어주고는 (노동요가 필요하니까) 열심히 명이나물을 가위로 잘랐다. 금세 챙겨 온 가방에 가득 찼다. 함께 온 학부모와 그녀의 지인이 백을 그 작은 걸 챙겨 왔냐면서, 자기가 딴 명이나물 한 봉지를 내게 그냥 줬다. 다들 너무 착하다.

그렇게 한국에서도 해보지 못한 명이나물 채집을 마치고는 친구와 약속으로 공원에 피크닉을 갔다. 명이나물을 가득 안고서 말이다. 아무래도 혼자 먹기엔 너무 많을 것 같아 친구에게 한 봉지를 줬다. 공원에서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서 내 명이나물이 시들까 너무 걱정됐다. 그래도 집에 돌아와 보니 멀쩡해서 안심하고는 명이나물 세척을 시작했다. 명이나물을 씻다가 손 시려 그만두고 싶은데 여전히 명이나물이 남았다. 그래서 한글학교 선생님 카톡방에 명이나물 나눔을 하고 싶다고 연락하니, 근처 사는 분이 원한다고 하셔서 얼른 들고 찾아갔다. 나는 너무 많아서 나눔 하는데 고맙다며 한국 시골집에서 직접 딴 도토리를 보내줘서 그걸로 만든 도토리 묵이라며 한 그릇 건네줬다. 다들 정말 착하다!


집에 돌아와 씻어둔 명이나물의 물기가 마른 걸 확인하고는 간장, 식초, 설탕, 물로 장아찌 국물을 만들고는 명이나물이 잠기게 부어줬다. 내가 가진 가장 큰 통에 두 개가 가득 찼다. 뭔가 같은 맛은 질릴까 봐 다른 한 통에는 칠리플레이크로 매운맛을 추가해 줬다. (청양고추가 있다면 고추를 잘라 넣었을 텐데 아쉽다.) 그렇게 하고도 명이가 남아있었다. 언뜻 듣기로는 명이로 전을 해도 맛있다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명이나물이 귀하지 않나. 전으로 부쳐먹을 신선한 명이나물을 애초에 구할 수가 없으니 한국에서 맛보지 못했었는데 프랑스에서 맛보게 되었다.

전이니 간단하다. 부침가루를 꺼내 물을 붓고는 농도를 맞춘다. 잘 씻은 명이나물을 듬성듬성 잘라준다. 그런 후, 부침가루 반죽에 넣고 섞어주고 빨간 고추를 살짝 잘라 함께 넣어주었다. 기름을 아주 넉넉히 팬에 부워주고 (전에는 기름을 아끼지 말자!) 바삭하게 앞뒤로 구워내 주었다.


전이 구워지는 동안 감사인사로 받아 온 도토리묵을 위한 양념을 준비한다. 한국에서도 우리 엄마는 언제나 도토리묵을 찍어먹을 간장 소스로 양념을 만들어 줬었다. 그런데 밖에 나가니 다들 고춧가루에 상추도 넣고 해서 도토리묵을 무쳐주더라. 나는 엄마딸이니까, 엄마처럼 간장소스를 만들어 본다. 간장에 물을 조금 부어 너무 짜지 않게 농도를 맞춰주고는 식초를 살짝 넣고 참기름을 넣는다. 여기에 다진 마늘과 다진 파, 참깨를 넣고는 함께 섞어주면 고소하면서도 짭조름한 맛있는 소스가 만들어진다. 도토리묵을 그릇에서 꺼내 먹기 좋게 잘라준다. 자르면서도 탱글탱글함이 느껴진다.


그릇에 명이나물 전과 도토리묵을 옮겨 담는다. 먼저 도토리묵을 하나 먹어본다. 맛있다! 내가 도토리묵을 잘 사 먹지 않는 이유가 밖에서 사 먹는 도토리묵에서는 뭔가 씁쓸한 맛이 나기 때문인데, 이 도토리는 맛이 부드럽고 깨끗하다. 내가 싫어하는 맛과 향 없이 은은하게 도토리 맛이 나는데 정말 탱글탱글 부들부들, 맛이 좋다. 게다가 내가 만들었지만 간장 소스의 간도 딱 좋았다. 도토리묵을 먹고는 바삭한 명이나물 전을 잘라서 한 입 베어 물어본다. 맛있다!! 오늘은 모든 음식이 성공적이다. 명이나물이 익으니 부드러워지면서, 향이 살짝 나는 게 이게 부추와 비슷한 식감인데 향이 달랐다.

맛있어서 혼자 먹기 너무 아까워서는 시티센터에 사는 다른 친구에게 연락했다. 도토리묵과 명이나물을 맛 보여 주고 싶었다. (혼자 먹기 너무 아까웠다.) 그렇게 너무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는, 명이나물 전을 추가로 더 굽고, 도토리묵에 양념도 추가로 준비하여 도시락 통에 담아서는 도시락배달을 나갔다. (나중에 친구에게 연락이 오기를 도토리묵 너무 부드럽고, 명이나물 전 왜 이렇게 맛있냐고-했다.) 아 둘 다 정말 맛있는 요리였다. 글을 쓰는 지금도 생각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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