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시그니처 레시피
많은 집들이 그 집 만의 시그니처 요리 한 두 개 정도는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우리 집에도 다른 곳에서는 맛보지 못한 엄마만의 요리가 몇 가지 있다. 반찬으로는 내가 어릴 적부터 제일 좋아했던 오징어조림과 아버지가 좋아하는 콩나물 조림이 있다. 그 밖에도 엄마표 육개장이 있다. 이름만 들어서는 뭐가 다를까 싶겠지만, 엄마만의 방법으로 요리해서 밖에서는 먹을 수 없는 우리 집만의 요리들이다.
예전에 만났던 사람이 엄마의 요리가 생각날 때가 있다고 얘길 했다. 그 친구는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의었는데 어머니는 음식을 잘 못하셨다고 했다. 어머니의 요리가 특별히 맛있거나 하진 않았지만 다른 집에서는 먹지 못하는 어머니의 요리가 있었다고 했다. 바로 감자조림이었는데, 밖에서 감자조림을 맛보기 전까지 그 친구에게 감자조림이란 요리는 어머니의 감자조림뿐이었다고 했고 그게 다르다는 것도 몰랐다고 했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가거나 학교에서 급식을 먹으면서 엄마의 감자조림이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감자조림과 완전히 다른 요리라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그런 감자조림을 어머니를 여의고는 맛볼 수가 없어서 한동안은 잊고 살았다가 그리운 어머니의 감자조림을 고등학생 때 찾아간 이모댁 식탁에서 마주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 감자조림을 먹으며 울컥했다고 얘길 했다. 아마도 그 감자조림은 친구 어머니 집안의 레시피였던 것 같다.
친구의 반가움과는 정도가 다르겠지만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적이 있다. 엄마의 오징어조림을 다른 곳에서는 맛보지 못해서 엄마만 할 줄 아는 요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날 막내 이모댁에 갔다가 식탁 위에서 익숙한 오징어 반찬을 마주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우리 엄마의 집안에서 내려오는 반찬이었던 거다. 그런 오징어 조림을 먹고 자라서인지 나와 언니에게는 일종의 소울 푸드가 아닌가 싶다. 언니가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엄마가 언니에게 먹고 싶은 거 말하면 엄마가 반찬을 보내준다고 연락을 하자 언니가 바로 말했던 것이 바로 이 오징어조림이라고 했다.
이런 엄마의 오징어 조림은 지금 내가 지내는 프랑스에서는 만들기가 어렵다. 이 반찬은 생물 오징어가 아닌 마른오징어를 이용해 만드는 반찬이기 때문이다. 먼저 마른오징어를 모두 적당한 크기로 잘라준 후 물에 담가서 살짝 불려준다. 마른오징어를 불려주는 과정을 통해 엄마 오징어 조림 특유의 적당한 쫄깃함이 나타난다. 오징어가 적당히 물에 불고 나면 팬에 기름을 두르고 고춧가루, 간장, 다진 마늘 정도를 기름에 볶았던 것 같다. 양념을 한 번 부르르 끓이고는 불려뒀던 오징어를 넣어 조려주던 엄마의 모습이 생각난다. 항상 엄마가 만들어 주셨기에 딱히 레시피를 여쭤본 적이 없어 정확한 레시피는 알지 못한다.
지난겨울, 추웠던 어느 날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었다. 냉장고에 사다 뒀던 소고기가 있어서 채소들과 소고기를 이용해 매콤 칼칼한 고깃국을 끓여야지라고 생각했다. 이 날은 특별히 정해진 레시피는 없었다. 소고기를 이용해서 육수를 내고는 내가 내키는 대로 재료들을 넣으며 간을 보고 그저 맛있게 만들자는 생각으로 했던 요리이다. 먼저 고기로 육수를 내고 양파 같은 것을 좀 넣고 국간장, 고춧가루, 그리고 약간의 조미료로 굴소스도 넣고 내 입에 맛있다고 느껴지게 맛을 냈다. 그러다 문득 냉장고에 남아있던 부추가 생각났고 잘 어울릴 거란 생각에 부추를 잘라 넣었다. 그렇게 요리가 완성되어 맛을 보는데 너무나도 익숙한 맛이었다. 분명 어디선가 먹어본 맛이었다. 바로 우리 엄마의 육개장 맛이었다. 나도 모르게 엄마의 육개장 맛을 따라 만들고 있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먹고 자란 엄마의 부추 육개장이 내 기억 속에 맛있는 칼칼한 고깃국으로 자리 잡고 있어 자연스럽게 내 혀가 나를 엄마표 육개장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사실 엄마의 육개장은 육개장이라고 부르기는 조금 애매하다. 엄마의 부추 육개장은 다른 육개장들과는 다르다. 이걸 육개장이라고 불러도 되나 싶은 게, 보통의 육개장들에 들어가는 고사리나 토란대 같은 재료는 엄마는 넣지 않는다. 엄마는 깔끔한 국물 맛이 좋아서 그런 재료들 대신 부추를 넣으셨다. 보통의 육개장에 들어가는 재료를 모두 생략하고도 엄마는 이걸 육개장이라고 부르셨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이 국이 바로 육개장이었다. 나도 내 옛 친구처럼 밖에서 다른 육개장을 맛보고서야 엄마의 육개장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문득 혹시라도 엄마가 먼저 떠나시게 되면 엄마만의 요리들을 다시는 맛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서 서글퍼진다. 엄마와 따뜻한 집밥과 내 평생 먹으며 자라 온 우리 집만의 레시피가 이어져나갈 수 있도록 한국에 돌아가면 엄마에게 엄마 요리들을 배워야겠다. 아직 늦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