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잔치국수

늦은 밤 아버지의 야식

아버지는 잔치국수를 좋아하신다. 잔치국수를 먹자고 하실 때면 꼭 "간단하게 국수나 하나 말아먹자"라고 하신다. 늦은 밤 퇴근 후에 자주 이렇게 국수를 주문하셨다. 그럴 때면 난 속으로 '먹는 거나 간단하지. 육수 내고 그러려면 별로 안 간단한데...'라고 생각하곤 했었다. 엄마는 항상 말없이 준비하셨다. 엄마의 잔치국수는 멸치, 다시마로 육수를 내고 호박 등의 채소 약간과 다진 김치를 얹는 형태였다. 나는 국물에 김칫물이 드는 게 싫어서 김치를 넣지 않는 게 더 좋았다.

아버지가 잔치국수를 좋아하시는 걸 알고 있어서, 해외로 나오기 전, 아버지께서 올라오시면 배고파하실 때 "잔치국수 하나 해드릴까요?"라고 제안하곤 했다. 그럴 때면 언제나 OK지시가 떨어졌다. 항상 양 조절에 실패하여 국수를 너무 조금 삶았다. 아버지는 이게 다냐고 하시곤 했다. 그렇게 항상 부족하게만 만들 던 잔치국수를 요즘 해외에서 혼자 만들어 먹을 때는 항상 너무 많이 만들고 있다.

아시아 마켓에서 소면을 발견한 날, 바로 잔치국수를 떠올리며 소면을 사들고 왔다. 소면을 삶을 때는 물이 넘치지 않게 중간에 찬물을 조금씩 부어줘야 한다. 면이 삶아지는 동안 다른 거를 하려다가 물이 넘쳐버리는 걸 몇 번 경험하고는 소면 삶을 때는 그저 소면에 집중하는 편이다. 면을 삶기 전에 당연히 육수를 먼저 준비해야 한다. 육수가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잔치국수의 육수는 엄마처럼 멸치와 다시마를 이용해 우려낸다. 그렇게 끓여낸 육수를 체로 걸러낸 후, 나는 보통 국간장과 액젓을 이용하여 간을 한다. 너무 색이 진해질 것 같으면 추가로 소금으로 간을 하기도 한다. 고명은 냉장고에 있는 어떤 채소를 써도 좋다. 엄마처럼 김치를 얹기보다는 따로 접시에 담아 국수와 곁들여 먹는 편이다. 평소와 다르게 냉장고에 부추가 남아 양념장을 곁들여 보았다. 국물이 물 드는 것을 보니 난 역시 양념장이 없는게 더 좋았다.

다음번에 아버지께 해드릴 일이 있다면, 그 때는 잔치국수를 넉넉하게 만들어서 배부르게 해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