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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Oct 26. 2022

우리는 암과흑, 그리고 사워맥주

맥주를 마시기 위한 친구들과의 합주

학부를 졸업하고 유지되고 있는 모임이 있다. 열명이 넘는 인원으로 제법 큰 모임으로 모임명은 "율전메뚜기"이다. 워낙 잘 먹는 친구들이 많아서, 해치우는 게 메뚜기떼 같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그 안에서도 유독 친하게 지내는 친구 무리가 있다. 우리의 소모임명은 "암과흑"이다. 암과 명, 흑과 백도 아닌 암과 흑이다. 이런 이름은 한 친구의 말실수에서 시작된 것이다. 한 친구가 실수로 암과 흑이라고 한 마디 하자, 우리는 그걸 꼬투리 잡아 그 친구를 실컷 놀렸다. 그 당시 내가 베이스를 치고, 한 친구는 드럼을 배우고 있었고, 또 한 친구는 원래 기타를 좀 칠 수 있었기에 우리끼리 합주를 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었다. 그러다 어? 암과흑? 밴드 이름으로 어때? 가 되어버렸다. 우연한 말실수가 우리 모임에 이름을 가져다주었다. 어떤 친구 모임에서는 모두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 애쓰는 경우가 있다. 서로가 오직 칭찬만 해주면서, 그들의 본심을 알 수 없는 그런 모임 말이다. 이 친구들은 다르다. 장난 삼아 서로를 놀리기도 하지만, 진심으로 서로를 걱정해주기도 하고 때론 모진 말로 차가운 현실을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아 징징대고 싶을 때 찾아갈 수 있게끔 해주는 모임이다.


때는 2016년, 내가 한창 수제 맥주들에 빠져있을 때였다. 내가 자주 가는 연트럴 파크 쪽에 비어 슈퍼들이 곳곳에 생겨나던 시절이다. 주말마다 그곳에 들러 맥주 쇼핑하는 게 나의 일종의 취미였던 시기이다. 그때, 한 수도승이 그려진 9천 원이 넘는 맥주 하나를 샀었다. 나에게도 비싸게 느껴진 맥주라 아껴두고 있다가, 암과흑 멤버 한 명을 만나던 날 빈손이 허전해서, 이 맥주를 선물로 줬다. 그런 후, 몇 주 뒤 그 친구와 다른 멤버가 대체 무슨 맥주를 준거냐고 했다. 나에게 맥주를 마시는 인증 영상을 찍으면서 맥주를 마셨나 보다. 근데 하필 그 맥주가 사워 맥주였던 것이다. 즉, 신맛 맥주인 것이다. 나는 그들이 맥주가 왜 이렇게 시냐는 말에 납득이 안 갔다. 그 당시 사워 맥주에 대해 들어보지도 못했고, 맥주가 시다는 건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거였다. 바로 그다음 주에 함께 만난 우리는 합주 후, 비어 샵에 가서 그 맥주를 다시 한 병 샀다. 친구들이 나에게 마셔보라고 했다. 나는 대체 어떤 맛이길래 하며 맛을 보고 뿜을 뻔했다. 정말 신 맛이었다. 그런데 계속 마시다 보니 그 맛이 우리는 모두 매료됐다. 그때부터 우리는 어딘가 가서 사워 맥주가 있으면 서로 사진을 찍어서, "나 사워 맥주 마심"이나 "이건 별로 안 세네" 등을 서로 리뷰하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오랫 동안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다가 해외에 나오기 됐다. 해외에 나와서도 조금이라도  맛이 나는 맥주를 마시면,  당시 친구들이 생각난다. 주말 일요일에 엉망진창의 발전은 없으나 즐거운 합주를 하고, 전국 노래자랑이 항상 틀어져 있던 삼겹살집에서의 삼겹살에 소맥, 연트럴 파크 잔디밭에 누워 낮잠을 자고 맥주를 마시던 그때의 따뜻한 햇살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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