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를 마시기 위한 친구들과의 합주
학부를 졸업하고 유지되고 있는 모임이 있다. 열명이 넘는 인원으로 제법 큰 모임으로 모임명은 "율전메뚜기"이다. 워낙 잘 먹는 친구들이 많아서, 해치우는 게 메뚜기떼 같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그 안에서도 유독 친하게 지내는 친구 무리가 있다. 우리의 소모임명은 "암과흑"이다. 암과 명, 흑과 백도 아닌 암과 흑이다. 이런 이름은 한 친구의 말실수에서 시작된 것이다. 한 친구가 실수로 암과 흑이라고 한 마디 하자, 우리는 그걸 꼬투리 잡아 그 친구를 실컷 놀렸다. 그 당시 내가 베이스를 치고, 한 친구는 드럼을 배우고 있었고, 또 한 친구는 원래 기타를 좀 칠 수 있었기에 우리끼리 합주를 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었다. 그러다 어? 암과흑? 밴드 이름으로 어때? 가 되어버렸다. 우연한 말실수가 우리 모임에 이름을 가져다주었다. 어떤 친구 모임에서는 모두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 애쓰는 경우가 있다. 서로가 오직 칭찬만 해주면서, 그들의 본심을 알 수 없는 그런 모임 말이다. 이 친구들은 다르다. 장난 삼아 서로를 놀리기도 하지만, 진심으로 서로를 걱정해주기도 하고 때론 모진 말로 차가운 현실을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아 징징대고 싶을 때 찾아갈 수 있게끔 해주는 모임이다.
때는 2016년, 내가 한창 수제 맥주들에 빠져있을 때였다. 내가 자주 가는 연트럴 파크 쪽에 비어 슈퍼들이 곳곳에 생겨나던 시절이다. 주말마다 그곳에 들러 맥주 쇼핑하는 게 나의 일종의 취미였던 시기이다. 그때, 한 수도승이 그려진 9천 원이 넘는 맥주 하나를 샀었다. 나에게도 비싸게 느껴진 맥주라 아껴두고 있다가, 암과흑 멤버 한 명을 만나던 날 빈손이 허전해서, 이 맥주를 선물로 줬다. 그런 후, 몇 주 뒤 그 친구와 다른 멤버가 대체 무슨 맥주를 준거냐고 했다. 나에게 맥주를 마시는 인증 영상을 찍으면서 맥주를 마셨나 보다. 근데 하필 그 맥주가 사워 맥주였던 것이다. 즉, 신맛 맥주인 것이다. 나는 그들이 맥주가 왜 이렇게 시냐는 말에 납득이 안 갔다. 그 당시 사워 맥주에 대해 들어보지도 못했고, 맥주가 시다는 건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거였다. 바로 그다음 주에 함께 만난 우리는 합주 후, 비어 샵에 가서 그 맥주를 다시 한 병 샀다. 친구들이 나에게 마셔보라고 했다. 나는 대체 어떤 맛이길래 하며 맛을 보고 뿜을 뻔했다. 정말 신 맛이었다. 그런데 계속 마시다 보니 그 맛이 우리는 모두 매료됐다. 그때부터 우리는 어딘가 가서 사워 맥주가 있으면 서로 사진을 찍어서, "나 사워 맥주 마심"이나 "이건 별로 안 세네" 등을 서로 리뷰하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오랫 동안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다가 해외에 나오기 됐다. 해외에 나와서도 조금이라도 신 맛이 나는 맥주를 마시면, 그 당시 친구들이 생각난다. 주말 일요일에 엉망진창의 발전은 없으나 즐거운 합주를 하고, 전국 노래자랑이 항상 틀어져 있던 삼겹살집에서의 삼겹살에 소맥, 연트럴 파크 잔디밭에 누워 낮잠을 자고 맥주를 마시던 그때의 따뜻한 햇살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