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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Oct 26. 2022

연구실과 젤리곰

교수님 앞에 간식 두기

나는 먹을 것을 나눠 먹는 걸 좋아한다. 대학교 학부시절에도 도서관 내 사물함은 간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험 기간 중 밤에 나를 찾아와 혹시 간식이 있냐고 묻는 아이도 있었다. 난 나눠먹는 건 아깝게 생각되지 않는다. 아마 어릴 때부터 음식은 나눠먹으라며 베푸는 부모님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리라. 대학원 연구실에 들어간 후, 초반에 스트레스가 많았다. 스트레스가 쌓이니 단 것이 당기고, 뭔가 입안에 씹을 거리가 필요했다. 그때 내가 빠진 게 바로 독일 하XX 젤리곰이었다. 질겅질겅 씹으면 느껴지는 단 맛이 좋았다. 하지만 혼자 먹는 게 눈치가 보이기도 했기에 친하지 않지만, 젤리를 먹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먹을 수 있도록 공용 공간에 젤리나 다른 간식들을 가져다 두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먹어도 되냐고 계속 묻다가 나중에는 그곳에 놓인 것은 나눠먹는 걸 알고 바로 먹었다. 그러더니,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 나눠먹을 것을 사다가 두곤 했다. 의무적인 건 없었다. 모든 건 자발적인 것이었다. 함께 하는 문화가 된 것 같아 기뻤다.


연구실에서 내가 간식을 가장 챙기는 날은 랩 미팅이 있는 날이다. 처음에는 교수님께서도 나에게 애냐며 맨날 젤리 같은 걸 먹냐 하셨지만, 그런 말을 하고 계신 교수님의 손은 계속 젤리를 향하고 있었다. 랩 미팅에서 젤리나 다른 간식들을 접시에 담아 사람들 앞에 가져다 두었다. 길면 세 시간도 이어지는 시간이기에 점심을 먹었다 해도 다들 지치기 마련이었기에, 작은 간식이라도 다들 잘 먹었다. 특히 교수님께서 잘 드실 간식이면 교수님 기분도 덜 날카롭고 부드러운 것 같았다. 그런 걸 깨닫고 나니, 랩 미팅 때마다 교수님 앞에도 간식을 가져다 두었다.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라, 내가 먹으면서 함께 먹는 것일 뿐이다.

해외에 나오니, 이렇게 나누는 문화는 뭔가 특별한 경우에만 있는 것 같다. 이곳은 개인주의가 워낙 강해서, 연구실의 바비큐 파티에도 자신이 먹을 음료며 먹을 것을 모두 챙겨 오고, 남은 건 다시 본인이 챙겨가는 문화이다. 얼마 전, 아침에 빵을 사 먹으면서 연구실 사람들에게 나눠주게 몇 개를 조금 더 샀다. 연구실 내 오피스에 가져다 둔 후, 단체방에 배고픈 사람은 먹으라고 했다. 하나 둘 오는데 모두 하나같이 오늘 무슨 날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 날도 아니라고 했지만, 그런 질문들이 귀찮아서 나눠먹기를 관뒀다. 이곳의 문화가 그렇다면 굳이 내 식으로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방인은 나니까, 내가 이곳에 맞춰야지. 혼자서 젤리를 먹으면서, 한국에서 함께 나눠먹던 젤리곰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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