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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Oct 26. 2022

조카와 미역국

입 짧은 조카를 위한 미역국

나는 조카 부자다. 조카가 다섯 명이다. 해외로 오기 직전 서울에서 지내던 집을 다 정리하고, 언니네 집에서 한 달 가까이 지냈었다. 그때 미안한 마음과 내가 하고 싶은 마음 반반으로 매일 아침, 저녁으로 언니네 가족을 위한 요리를 했었다. 그때 조카들을 위해 내가 자주 한 요리는 아이들이 최고로 좋아한 미역국이다. 삼 남매 조카들 중 막내는 입이 짧다. 먹는 것보다 말하는데 입을 더 많이 사용하는 아이이다. 그런 막내가 잘 먹는 요리가 바로 미역국이다. 집에 들어와 미역국 냄새만 맡아도 막내의 기분은 좋아졌었다.


나도 미역국을 좋아한다. 한참 살이 빠졌던 시기가 있었는데, 미역국으로 다시 살이 쪘다. 그 당시 언니가 출산을 했었는데, 엄마께서 언니에게 매일 사골 미역국을 끓여주셨다. 그 미역국을 같이 먹으면서 언니는 산후조리를 하고 나는 입맛이 돌며 엄청 잘 먹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살이 대놓고 찌기 시작한 것 같다. 그 미역국을 함께 먹지 말았어야 했던 것 같지만, 생각해봐도 그 미역국들은 참 맛있었다.


미역국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난 소고기 미역국만 좋아한다. 미역국에 해산물을 넣거나 다른 재료로 끓인 미역국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먹는 것만 요리한다. 그래서 난 소고기미역국만 끓인다.


미역국은 어려울 게 없다. 좋은 고기를 사고, 적당량의 미역만 잘 불리면 끝이다. 예전에 연예인들이 시골에 가서 요리하는 프로에 게스트로 온 배우가 엄청 좋은 고기를 사 왔는데, 그걸로 소고기 뭇국을 끓이는 장면이 나왔었다. 유튜브에서 댓글들이 저 좋은 고기를 국으로 끓여버리냐며 타박하는 게 주를 이뤘는데, 거기서 한 댓글이 구이용 고기로 국 끓여보면 정말 맛있다고 한번 해보라고 적혀있었다. 그게 기억에 남았다. 이곳에 와서 마트에서 고기를 살 때, 이 나라 말을 몰라서 부위를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구이용이라고 적힌 것을 사 와서 국을 끓이곤 하는데 매번 성공이다. 미역국의 고기만큼 중요한 게 있다면 바로 밥이다. 미역국에 밥은 무조건 백미다.


조카들이 언니와 함께 나를 만나러 내가 사는 나라, 이 작은 도시에 왔다. 이 지방의 요리를 파는 식당에도 데려가고 외식도 했지만, 아이들이 그다지 많이 먹지 않았다. 그래서 그날 밤 집에 돌아가서, 미역국을 끓였다. 다음날 조카들이 있는 에어비앤비에 가서 미역국을 데워주었다. 미역국을 보자 막내 조카는 환호성을 질렀다. 밥 먹으라고 몇 번을 말해야 자리에 앉던 아이들이 미역국이란 소리에 냉큼 자리 잡았다. 밥과 미역국을 보자마자 미역국에 밥을 말아버리고는 금세 비워버렸다. 다른 반찬도 이것저것 준비했었지만, 아이들에겐 그저 미역국이 최고였다.


미역과 같은 해조류를 먹는 것이 환경에도 좋다는 글을 봤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하는 요즘 시대에 걸맞은 식재료라고 한다. 어차피 나는 맛을 위해서 먹고 있긴 하지만, 환경적으로 도움이 된다면 일석이조로 좋은 것 아니겠는가. 조카들을 돌아가고 이제 다시 혼자 남아 미역국을 끓이며, 시끌벅적했던 때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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