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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Oct 28. 2022

언니와 김치찌개

우리 사이, 메뉴 텔레파시

언니네 집에는 김치가 항상 있진 않다. 아이들이 있고, 매운 걸 잘 못 먹는 외국인 형부가 있어서 언니네 집은 김치를 언니 말고는 그다지 잘 먹지 못한다. 그래서 보통의 한국인 집에서 가장 흔할 김치찌개가 전혀 흔하지 않은 집이다. 해외로 나오기 전 한 달가량 언니네 집에서 지낼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졌다. 뭔가 오늘은 김치찌개가 진심으로 먹고 싶었다. 언니네 집 근처에서 김치와 돼지고기를 샀다. 얼른 가서 김치찌개를 끓여먹으려는 생각으로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들어가니 언니가 말했다. "어서 와. 내가 김치찜 시켰어." 그 뒤에도 나와 김치로 언니가 통하는 날이 있었다. 그 외에도 내가 문득 탕수육이 먹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저녁 언니가 짜장면에 탕수육을 갑자기 시켜먹자는 거였다. 우리 사이에 음식에 대한 텔레파시가 통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함께 먹고 자라면서 날씨나 기분에 따라 생각하는 음식이 비슷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혼자만의 추측을 해 보았다.


이곳 아시안 마켓에서도 김치를 제법 판다. 종류가 많지는 않지만, 맛김치, 배추통김치, 깍두기, 열무김치까지 어느 정도 필요한 만큼은 판다. 하지만 김치 한 봉지를 사서, 김치찌개 한 번 끓이면 끝이다. 김치 값이 그렇게 싸지만도 않아서 어쩐지 김치가 아까운 것 같아 한동안 김치찌개를 전혀 끓이지 않았었다. 그러다 지치던 어느 날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졌다. 김치찌개를 먹으면 힘이 날 것 같았다. 아깝지만, 김치를 듬뿍 넣고, 돼지고기를 잘라 넣어 푹 끓였다. 나는 먼저 고기를 다진 마늘과 볶다가 김치를 넣고 볶은 후 물을 붓는다. 쌀뜨물이 있다면 쌀뜨물을 넣는다. 엄마는 항상 쌀뜨물을 넣으셨었다. 그런 후, 배추가 무를 때까지 뭉근하게 푹 끓여준다. 나는 배추가 아삭하지 않게 물러진 상태의 찌개를 좋아한다. 그 정도는 끓여줘야 온전히 김치의 맛이 국물과 하나가 된 듯하다. 국물을 맛보고 필요하면 액젓을 더 넣기도 한다. 신맛이 너무 강하면 설탕을 살짝 넣어주면 마치 조미료를 넣은 것 마냥 맛이 훅 올라온다.



흰쌀밥을 준비하고, 찌개를 접시에 담는다. 국물을 한 번 맛본다. 속 깊이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피로가 풀리는 맛이다. 가진 김치를 모두 사용했지만 아깝지 않았다. 다른 곳에 살기에 더이상은 언니와 메뉴 텔레파시가 통하진 않고 함께 먹을 수도 없지만, 힘이 드는 날이 있다면 언니도 김치찌개를 먹으며 힘을 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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