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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Oct 28. 2022

외국인 친구와 새우젓

김치 담그는 외국인

이곳 연구실에서 나에게 무척 친절한 동료가 있다. 이제는 아마도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이가 된 것 같은 이 동료는 나와 나이대도 같고, 무엇보다 요리를 무척 좋아한다. 이 친구의 집에 부활절 런치에 초대받아 찾아갔을 때다. 나에게 한국 고춧가루는 어떤 맛이냐고 묻는 거였다. 단 한 번도 고춧가루의 맛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한국에서의 고추는 그냥 고추와 매운 청양고추, 안 매운 오이 고추 세 가지 정도로만 생각해 봤었고, 고춧가루는 그저 고춧가루였다. 그게 대체 무슨 질문이냐고 물어보았다. 대체 한국 고춧가루가 왜 궁금한 거냐고. 그 친구 말이 자기는 피클 담그는 게 취미인데, 한국의 김치가 너무 궁금하다고 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발효를 시킨다는 것도 너무 신기해서 김치 담그는 법을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 고춧가루가 필요한데 구할 수가 없기에 최대한 비슷한 것을 찾기 위해 한국 고춧가루의 맛을 알고 싶다고 했다. 나는 고춧가루의 맛을 설명해주는 데는 실패했지만, 한국 고춧가루가 파는 아시아 마켓을 그에게 소개해주며 답을 주었다.


얼마 후, 이 친구가 자신이 만든 김치라며 내게 가져다주었다. 그 주말에 김치를 먹어본 적 없는 외국인 친구가 만든 김치를 맛보았다. 김치를 먹어보지 않고 상상만으로 만든다면 이런 맛이겠구나 싶게도 김치의 깊이 있는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맛을 분석해보니, 양념에 젓갈이나 마늘 등이 너무 적게 들어간 게 아닐까 싶었다. 그 친구에게 물어보니, 마늘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줄였다고 하고, 새우젓이 없어서 젓갈을 제대로 넣지 못했다고 했다. 이 친구의 요리를 먹어본 적이 있기에 이 친구가 제대로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건 의심치 않았다. 다만 문제는 김치를 먹어본 적이 없어서 맛의 기준점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거였다. 이 친구의 김치는 이 친구가 만드는 피클의 맛을 닮아 있었으니까.


그다음 이 친구의 집에 요리를 해서 가져갈 일이 있어서 김치찌개를 만들어갔다. 맛을 보더니 바로 자기 생각보다 젓갈의 맛과 마늘 맛이 많이 난다고 바로 평가했다. 이제 기준이 생겼으니, 재료만 잘 갖춰지면 잘 만들겠지라고 생각했다. 이 친구를 위해 새우젓을 사주고 싶었는데, 살 생각이 없을 때는 그렇게 많이 팔던 새우젓이 몇 달 동안 마트에 들어오지 않았다.



얼마 전 마트에 갔다. 새우젓이 있었다. 너무 반가웠다. 바로 새우젓을 사고 이 친구에게 연락한다. 새우젓을 구했다고 선물로 주겠다고. 그렇게 새우젓을 외국인 친구에게 선물했다. 그 새우젓으로 김치를 담가서, 이 친구는 내 생일선물로 김치를 주었다. 외국인에게 생일선물로 김치를 받은 한국인은 내가 처음이 아닐까? 김치를 피클 담는 병에 담아두어 자르지 않은 배추더미를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병에 담는 것에서 김치를 잘 모르는 걸 느낄 수 있었지만, 맛은 온전한 김치의 맛이었다. 역시 이 친구는 요리를 잘한다. 맛을 보여주니 바로 만들어 낸다. 한 동안 이 친구의 김치로 맛있게 밥을 먹었다. 볶음김치를 만들어 누룽지와 먹기도 하고, 라면에 김치를 곁들이기도 했다. 새우젓을 선물한 나 자신을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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