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확위 Oct 28. 2022

비빔순이 엄마와 비빔밥

엄마는 뭐든 비빈다.

아버지는 엄마를 종종 비빔순이라고 부르신다. 이유는 엄마가 뭐든 비빔밥으로 만드시기 때문이다. 된장이 맛있어도 비빔밥. 나물이 맛있어도 비빔밥. 열무가 맛있어도 비빔밥이다. 뭐든 비빌 수 있는 재료가 맛이 있으면 바로 비빔밥을 만들 준비를 하신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웃으시며 "비빔순이, 오늘은 뭘 또 비비시나"라고 한마디 하신다. 그런 후, 엄마의 비빔밥을 꼭 한 입만 먹어보자며 맛보시고 함께 나눠 드신다. 그런 걸 보면 부모님은 부모이기 전에 서로의 가장 친한 친구구나 싶은 느낌도 든다.


엄마의 비빔밥에는 주로 고추장이 들어가지 않는다. 자극적인 맛을 싫어하시는 편이라 매우 심심한 비빔밥을 만드신다. 그래서인지 나는 엄마의 비빔밥을 좋아하진 않았다. 어릴 적에는 엄마가 주는 대로 먹었지만, 조금 자라서 바깥 밥을 먹다 보니 자극적인 입맛에 길들여져 버렸다. 엄마의 비빔밥은 너무 순한 맛이라 내 혀에 자극이 오지 않아 밋밋하게 느껴지곤 했다. 엄마가 비비시고 먹어볼래라고 권하실 때면 거절하곤 했다.


해외에 나오니 나물도 없고, 열무김치도 없고, 무엇보다 옆에서 비빔밥을 비비는 엄마가 없다. 어느 날은 갑자기 비빔밥이 먹고 싶어 졌다. 한국이었다면,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꺼내서 마구 담아 비벼먹을 수 있었지만, 냉장고에 반찬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모든 재료들을 준비해야 했다. 마트에서 최대한 한국 느낌으로 만들 수 있는 재료들을 챙겨 왔다. 숙주 한 봉지를 가지고 숙주나물을 버무리고, 무를 채 썰어 무생채를 만든다. 상추를 잘라서 상추겉절이를 만들고, 버섯을 볶고 가지를 무친다. 밥 위에 준비된 재료들을 전부 얹고, 반숙 프라이를 얹는다. 엄마의 스타일을 따라서, 된장찌개를 만들어서 된장찌개를 이용하여 심심하게 비빈다. 고추장에 맛이 가려지기보다는 된장으로 비비니 재료들의 맛이 더 온전히 느껴졌다. 엄마가 좋아하던 그 맛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이전 14화 새 친구와 마요네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