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확위 Oct 29. 2022

남사친과 조각 케이크

조각케이크의 교훈

친한 친구가 있었다. 지금도 친구로 지내지만 못 만난 지 제법 시간이 지나서 그 전만큼 가깝다고는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 친구는 남사친, 말 그대로 남자 사람인 친구였다. 내가 음식을 좋아하고 그 친구도 먹을 것을 좋아하고 디저트들도 잘 알아서 서로 음식 얘기로 말이 잘 통했었다. 어느 날 얘기하다가 좋아하는 케이크로 크레이프 케이크에 대한 얘기를 했었다. 그 당시만 해도 크레이프 케이크를 파는 곳이 많이 없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존재를 잘 모르던 시기였다. 그 친구는 내가 그 케이크를 안다는 사실을 반가워하면서 자기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둘 다 학교 근처에 살아서 자주 어울려 놀았다.


내가 대학원에 다닐 시절, 많은 친구들이 근처로 놀러 가면 연락할게-라고 말들을 하지만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다 처음으로 이 친구가 정말로 근처에 왔다며 만나자고 했다. 고맙기도 하고 반가운 마음에, 학교 근처 크레이프 맛집에서 크레이프 케이크를 사서 만날 때 전해줬다. 고마움의 표시였다. 하지만 며칠 지난 후, 그 애가 말하길 여자 친구가 화를 냈다고 했다. "그 언니는 뭔데 오빠한테 케이크를 줘요?"라고 했다고 했다. 나는 그저 고마움의 표시였을 뿐인데, 내가 이성이란 이유로 이상한 의미 부여가 된 것 같았다. 나도 살짝 불쾌했다. 나에게 이 친구는 그런 존재가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상대가 불편하다면 내가 그에 맞춰주는 게 예의라 생각했다. 내가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유난스럽던 그 친구의 여자 친구는 소식이 들리기로는 결국은 그 애와 헤어졌다고 했다. 하지만, 그 여자 친구분 덕분에 배운 게 있었다.  나는 아니더라도 상대가 오해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 이후로는 가능하면 남사친들에게는 선물을 하지 않고 있다. 나의 메뚜기 모임에 남사친의 여자 친구가 온다고 하면 여자분을 위한 꽃을 사 가서 환영 선물을 했다. 선물은 남사친이 아닌 여자 친구 분들에게 줬다. 그러니 여자분들이 경계를 풀더라. 나는 보통 “여자” 사람이라기 보단 “좋은” 사람 정도로 분류되는 타입의 사람이다. 나를 잘 모르던 그분들에게도 내가 "좋은" 사람이 되면서 친구들과의 관계도 문제 없이 이어질 수 있었다. 모두 조각 케이크 하나에 화를 내 준 분 덕분이다.



디저트가 유명한 나라에서 연구원으로 일을 하고 있다. 피곤한 하루, 조각 케이크를 잔뜩 사 가지고 왔다. 케이크를 먹으려니, 문득 나에게 교훈을 준 그녀가 생각난다. 얼굴도 모르지만 그녀가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기를 바란다.

이전 16화 조카와 군만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