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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Oct 30. 2022

술친구와 컵라면

새벽 4시, 술을 마시고 컵라면을 먹는다.

술친구가 있었다. 술을 자주 마셔서 술친구라기보다, 술 마실 때만 주로 대화를 했었기에 술친구다. 그 술친구는 작년 한 대학교에 교수로 임용되어 이제는 교수님이 되었다. 그 친구는 대학교 학부시절부터 정말 똑똑했던 친구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은 확실해서, 그 외의 강의 중에는 거의 잠만 자고 있었지만 시험만 보면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곤 했었다. 시험기간에 그의 집중력을 보면, 이때를 위해 지금까지 잠만 잔 건가 싶은 정도였다. 교회를 다니던 그는 교회 사람들 앞에서는 한 모금의 술도 하지 않았지만,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는 끝까지 떠나지 않고 새벽까지 항상 남아있곤 했다. 얌전한 듯 하지만, 밴드부에서 기타리스트로 무대에서는 또 다른 모습을 보이는 다양한 재능을 지닌 친구였다. 이 친구와 나는 종종 맥주를 마시며 미래에 대한 제법 진솔한 대화들을 나눴었다. 둘 다 기숙사에 살아서, 기숙사 통금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아침까지 열심히 마시며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면 새벽 4시쯤 이 친구는 편의점에서 컵라면 하나 먹자고 했다. 나는 그 당시에 술을 마실 때면 뭔가를 그다지 먹지 않던 시기였기에, 그 친구가 먹는 모습을 보며 대화 상대가 되어주기도 했다.


자랑 아닌 자랑을 한다면, 난 맥주를 3000cc는 마실 수 있다. 해외에 나와서 처음에는 밤늦게 다니면 위험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 지냈었다. 그러다가 그렇게 위험하지 않음을 깨닫고는 다시 주말에 맥주를 즐기고 있다. 그날은 맥주를 잔뜩 마시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트램 속에서, 갑자기 사다 두었던 컵라면이 생각났다. 갑자기 컵라면이 엄청 먹고 싶어졌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전기포트에 물을 담아 끓이고 컵라면을 익혔다. 컵라면의 탄수화물이 들어가니, 약간의 취기마저 모두 함께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맥주로 채워진 배를 컵라면으로 다시 채우니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꽤나 많은 사람들이 취하면 탄수화물이 당긴다고 한다. 술에 취하면 안주를 마구 먹기 시작한다고 했다. 취하면 라면 같은 것을 많이들 먹기도 하고 누군가는 취하면 맥도널드를 사는 게 술버릇이라고도 했다. 나의 옛 술친구는 언제나 멀쩡해 보였지만, 새벽 4시 컵라면을 찾던 그는 아마도 살짝 취해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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