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라도 명절 상차림
타국에서의 명절이지만 난 외로울 새가 없었다. 한국 명절이 내가 있는 프랑스에서는 휴일이 아니기에 나는 보통 명절 직전이나 직후 주말을 명절 삼아 보내곤 하는데, 그때마다 명절을 위한 요리를 하여 상차림을 하느라 난 너무 바쁘다.
새해는 이곳도 쉬니까 한국처럼 맞이할 수 있다. 새해는 기껏해야 떡국 아니겠는가. 너무 간단하니 요리라 하기도 민망하다. 혼자라 외로움보단 한 해가 지나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약간의 싱숭생숭함을 느끼곤 한다. 새해 첫날은 새해 다짐을 하는 중요한 날이다. 계획 세우길 좋아하는 나는 보통 연말에 다이어리에 한 해에 대해 정리하며 마무리하는 내용을 글들을 가득 쓴다. 그런 글을 써내려 가다 보면 새해에는 뭘 해야 할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가 보인다. 한국이 명절임을 느끼는 건 한국에 있는 가족이나 지인들의 SNS를 통해서다. 명절 음식 사진들이 올라오고 가족들과 함께 있는데 거기에 나만 빠져있는 모습이 올라오면 가족들과 친구들 생각이 조금 나긴 한다. (외로움을 크게 느끼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그럴 땐 생각날 겨를 없이 더욱 바쁘게 움직이며 요리를 한다.
2022년 1월 1일이 프랑스에 와서 첫 새해였다. 여기는 공휴일에는 거의 모든 가게가 닫으니 미리 장을 봐둬야 한다. 떡국을 끓이기 위해 미리 떡국떡을 사뒀었다. 사골국물에 떡국을 끓이면 참 좋겠지만 수고스럽게 사골육수를 낼 생각은 없어 간단히 멸치, 다시마로 육수를 내고 거기에 소고기 다짐육 고명을 얹어준다. 떡국만 먹으면 조금 아쉬우니 나의 소울푸드 잡채까지 만들어 함께 상을 차린다. 잡채는 형형색색 예쁘기도 하지만 달짝지근함과 참기름에서 오는 그 고소함의 조합이 참 좋다. 이렇게 새해에 떡국을 먹고 나니 음력설이 다가와 설연휴가 되어 또다시 떡국 먹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때쯤 마트에 Chinese New year's day (Lunar New year's day)를 맞이하여 중국요리들이 마트 코너에 평소보다 많이 들어왔다. 만두가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하가우 (새우만두)와 쇼마이가 보이기에 그걸 사 와서 아시아적인 명절 상을 차렸다. (너무 중국풍인가?)
올해 2023년의 첫날은 떡국을 먹지 않았다. 우리 집은 원래도 딱히 떡국을 챙겨 먹는 집이 아니었지만 음력설에 큰집에 가서 어쩌다 떡국을 먹곤 했기에 새해 첫날 떡국은 나에겐 낯설었다. 그렇게 새해 첫날은 특별함 없이 보내고는 음력설이 되었고 한국은 명절연휴로 모두 행복한 (모두는 아니겠지만) 나날을 보내는 것처럼 보였다. 명절이니 갈비찜을 만들 생각을 했다. 소갈비를 사야 했지만, 돼지등갈비 한 팩을 사 온다. 양념을 소갈비 양념으로 만들도 돼지갈비찜이라 부른다. 갈비찜이 만들어지는 동안 전도 만든다. 동그랑땡 재료를 듬뿍 준비한다. 돼지고기 다짐육에 두부를 물기를 ㄹ제거하여 넣고 파도 다져 넣고 당근도 다져 넣는다. 소금, 후추로 간을 하고는 간을 보기 위해 약간 떼어내어 전자레인지에 돌려 익힌 후 맛을 본다. 동글동글 반죽을 하고는 부침가루를 묻히고 계란물에 담근 후, 넉넉히 두른 기름에 구워내 주었다. 전을 부치기 시작하니 명절 전 냄새가 부엌에 가득 차면서 명절 기분이 난다. 명절에 전이 수고스럽긴 하지만, 가장 명절다운 분위기를 내주는 듯하다. 명절상에서 존재감이 크지는 않더라도 빠지면 안 되는 게 나물 아니겠는가. 이왕이면 삼색나물. 최소 3종은 돼주어야 한다. 고사리, 도라지 같은 게 있으면 진짜 한국다운 명절상이겠지만 간단하게 이곳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버섯, 오이, 숙주로 나물을 만들어낸다. 상을 차려낸다. 돼지갈비찜 (등갈비지만), 삼색나물, 동그랑땡을 보면 한국인은 명절인 것을 눈치챌 것이고 떡국이 있으니 설날이라는 것을 바로 알 것이다.
내가 잘 먹고 잘 지낸다고 가족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요리해서 먹은 것을 사진 찍어 보낸다. 나만의 설 상차림 사진을 보더니 한국에 있는 언니가 한국에 있는 자기보다 낫다고 그런다. 비록 혼자지만 요리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외로울 새가 없었다. 무엇보다 기분 좋게 혼자라도 배부르니 명절에 외로움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