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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Nov 01. 2022

연어로 대신한 방어의 추억

암과흑, 그리고 겨울 대방어

암과흑 밴드 멤버들과 겨울에 합주를 하면, 겨울 방어를 한 번은 먹는 게 연례행사처럼 되었다. 홍대에 방어로 유명한 식당에 가려고 하지만 매번 웨이팅에 지쳐 다른 곳을 찾곤 했다. 대방어가 워낙 기름지니까 먹으면 질릴까 봐 대방어가 있는 모둠회를 시키기도 하고, 대방어를 먹다가 바보같이 똑같이 기름진 연어회를 시키기도 하고, 소주와 함께하며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곤 했다. 어느 날은 술을 조금 먹겠다고, 방어를 먹으면서 나는 맥주를 마신다고 했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방어를 한 점 입에 넣으니 회 맛이 전혀 살지 않았다. 그날 바로 알았다. 맥주와 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냐고 하던 친구들은 내가 소주에 합류하니 날 반겨줬고, 우리는 그렇게 대방어와 함께 추억을 쌓아갔다. 그렇게 즐겁게 함께 마시고, 내리는 눈발을 맞으며 걸어갔던 그날이 기억난다.


해외로 나오고 먹기 힘든 것 중 하나가 회나 초밥이다. 회를 워낙 좋아해서, 자주 먹곤 했었는데 이곳에 오니 일단 비싸기도 하고, 퀄리티도 좋지 않고 무엇보다 회 종류가 다양하지 않다. 죄다 연어와 참치뿐이다. 그거라도 반기면서 먹어야 하지만 말이다. 마트에서 초밥을 한 번 사 먹고는 너무 맛이 없어서 크게 실망했었다. 가격이 저렴하지도 않았었기에 나의 선택을 후회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가는 동네 마트에서 사시미 등급의 연어가 들어온 것을 발견했다. 너무 반가웠다. 비록 가격은 28유로 가까이 됐지만 말이다. 하지만 내가 혼자 해 먹으면 배부르게 질리도록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양이었다. 욕심으로 사시미 등급의 연어를 두 팩이나 사 온다. 이때 아니면 언제 먹겠냐는 심정이었다.



연어를 회로만 먹기는 질릴 것 같아서, 밥을 새로 해서 초밥을 준비해본다. 초밥은 쉽지 않다. 밥에 초밥물을 넣고 나서 열심히 섞고 맨 손으로 어찌어찌해보려 하면 손에 잔뜩 밥알이 달라붙을 뿐이다. 뭔가 기술이 있을 것 같은데 알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그저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모양을 내고 회를 얹어 초밥 인척 흉내를 내본다. 조금 쉽게 아보카도도 이용해서 김초밥을 말아본다. 캘리포니아롤처럼 해보고 싶었지만 손이 많이 가면서 하다가 귀찮아져 버렸다. 누군가를 위한다면 더 정성 들여 애써봤을 텐데, 시간을 들여봐도 먹을 사람은 나뿐이니 적당히 마무리한다.


내가 있는 곳은 화이트 와인이 유명하다. 와인을 곁들여 먹어본다. 혼자서 연어를 계속 먹으려니 물린다. 맛있게 먹으려고 준비했는데 입맛이 살지 않아 아쉽다. 친구들과 함께 했던 즐거웠던 겨울 대방어가 생각난다.



이번 겨울에도 한국에 가질 못하니 언제쯤 다시 함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추억이 많이 남아있어서 쓸쓸하지 않다. 좋은 추억은 앞으로 만들어 갈 다른 추억을 기대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비록 이번 겨울은 아니더라도 함께 할 다른 시간이 있을 것을 안다. 그때까지는 혼자서 이렇게 연어를 먹으며 대방어를 기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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