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이 아닌 물감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by 이확위

나는 그림에 대한 기초나 테크닉이 없다. 성인 취미미술로 데생을 약간 배웠고, 유화를 몇 달 배워보긴 했지만 기본적인 이론이나 테크닉 모두 없다. 그래서 어떤 도구라도 결국 내 맘대로 쓴다. 수채고체물감을 쓰고 있지만 내 그림이 수채화처럼 보이진 않는다. 내 맘대로 써서 그렇다. 무언가를 시작하면 장비병이 생긴다고 했던가. 그림을 그리면서 새로운 재료들을 써보고 싶은 욕구들이 생긴다. 유튜브로 다른 이들의 그림을 보다가, 누군가의 그림이 맘에 들면 그 사람이 쓰는 재료로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 진다. 그래서 새롭게 구매한 것이 수채과슈 물감이다. 잘 모르지만, 언뜻 알기로 일반 수채물감이 투명한 느낌이라면, 과슈는 불투명 느낌이라 했다. 물감을 사 와서는 처음 그려본다. 아 불투명하다는 게 뭔지 알겠다. 수채화는 투명하듯 종이까지 비치는 느낌이라면 과슈는 완전히 덮어버리는 느낌이다. 새로운 재료를 쓰니 또 다른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그림의 좋은 점이 이렇게 재료들을 바꾸면서 완전히 새로운 느낌을 다시 가질 수 있다는 거다.


2020년, 새로운 작은 스케치북을 샀다. 10cm X 10 cm 사이즈이다. 유튜브에서 다른 사람들이 마스킹 테이프로 그림을 그릴 곳 테두리쯤에 테이프를 붙여두고 그림 완성 후, 테이프를 쫘악 떼어내니 깔끔한 테두리가 나오는 걸 보고는 마스킹 테이프도 사 왔다. 스케치북에 테이프를 붙이고 새로 산 고체물감으로 그림을 그려본다. 일반 수채물감과는 다른 느낌이다. 처음에는 피그먼트 라이너 펜으로 선을 그리고 색칠했는데, 물감이 선을 덮어버리더라. 그래서, 인위적인 라인이 없는 그림이 되기 시작하면서, 물감으로 세밀한 묘사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그림자와 빛에 대해 내 나름대로 생각하며 명암을 넣기도 하다 보니 재밌었다. 그래서 한 동안 이런 그림에 빠져 참 열심히 그렸다.

그림은 재밌다. 그릴만한 것들도 무궁무진하고, 재료만 바꿔도 또 다른 재미를 느낀다. 게다가 계속해서 그려나가니 조금씩 자신감도 생기고, 느리지만 나 자신의 실력이 조금씩 향상되는 것을 그려둔 그림을 통해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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