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건물 드로잉을 하다가 또다시 질려서 잠시 손을 놨다. 그 후에는 여행을 다녀와서, 저널 드로잉을 조금 한 후로는 한동안 붓을 잡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지 않은지 몇 달의 시간이 흐르고 흘렀다. 서랍을 정리하다가 서랍 한가득 그림도구들이 있는 것을 보고는 다시 그림을 그려보자 싶었다. 스케치북에 펜으로 최근에 먹었던 것을 그리고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수채물감으로 색칠을 해본다. 오래간만에 그리는데 나쁘지 않게 그려진 듯했다. 그림이 원하는 대로 그려지니 다시 재미를 느꼈다.
월급날이었다. 마침 약속이 있어 시내에서 돌아다니다가 월급날이란 걸 깨닫고 통장잔고를 확인했다. 월급이 들어왔다. 기분이 좋았고, 한 달간 고생한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문득 근처 화방이 생각나서, 화방에 갔다. 둘러보며 살 것이 있는지 구경했다. 그러나 미니 캔버스를 발견했다. 20 cm x 20 cm였다. 작아서 금방 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캔버스에 유화를 사용하자니 마르는데 너무 오래 걸리고, 방에서 작업하기에는 냄새도 걱정되었다. 둘러보다가 아크릴물감이 보인다. 아크릴을 골라잡는다. 아크릴용 붓도 사고, 마감재도 구매한다. 월급 받고 나를 위한 선물이라니. 이게 바로 일하는 즐거움일 것이다.
살 때는 당장 집에 가서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에 두근두근했지만, 막상 집에 돌아와서는 사 온 것을 방 한 구석에 두고는 일주일을 그냥 지나쳤다. 그러다, '아 저거 사 왔었지?' 하고는 꺼내 들게 된다. (난 항상 이런 식이다.) 캔버스를 하나 꺼내든다. 뭘 그릴까 고민한다. 평소처럼 내가 요리했던 음식을 그려본다. 뜻대로 잘 그려지지 않는다. 세필붓이 없어서 세밀한 묘사 같은 건 어렵고, 조금 투박하게 그림을 큰 직하게 그려나가야 할 것 같아서, 평소와 다른 그림을 그려야지 싶었다. 인터넷을 뒤져본다. 그러다 한 프랑스 화가가 그렸다는 정물화를 발견하고는 따라 그려본다. 완전히 다른 그림이 되어버렸지만, 뭐 나름대로 좋게 생각하면 나름 느낌이 있다. 그렇게 나쁘진 않다. 이것을 시작으로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림 그리는데 다시 재미가 붙었다. 너무 많이 빠지는 걸 경계하는 차원에서 매일 한 작품만 완성하기로 나 자신과 약속했다. (해야 할 다른 일들이 많아서)
저작권프리 사진들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면서 원하는 것들을 핸드폰에 저장해 둔다. 그러고는 매일 아침, 그 사진들 중 그리고 싶은 것을 골라 그린다. 복숭아, 감자튀김, 창틀의 커피, 햇빛이 비추는 침대 등을 그린다. 작은 캔버스라 침대 헤드에 나란히 전시해 두니 제법 그럴듯하고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