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내게 베이스기타를 사주셨다

by 이확위

아버지의 꿈은 가족밴드이다. 내가 어릴 때부터 자주 말씀하셨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악기를 배우는 데는 항상 전폭적으로 지원하셨는데, 문제는 언니, 오빠, 나 삼 남매는 악기에 그렇게 크게 흥미를 가지지 않았다. 어릴 때 피아노를 모두 배웠으나 그나마 가장 오래 친오빠가 체르니 30 정도에서 그만두고, 나는 중학교를 들어가며 피아노를 그만뒀다. 초등학생 때 언니와 함께 잠시 바이올린을 배웠던 적도 있다. 나는 겨우 일주일 하고 그만두고 언니는 좀 더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악기는 항상 좋은 것을 구해주셨다. 집에 피아노도 그랜드피아노를 사주셨었다. 조금 과한 것 같은데, 음악에 대한 아버지의 열정이었다. 내가 대금을 배우기 시작하자 나무로 만든 진짜 대금을 사다 주셨다. 초보는 플라스틱 대금으로 연습을 하는데, 관리법도 모르는 나무 대금을 사다 주셨다. 아버지는 악기에 대해서는 항상 이런 식이셨다.


대학교 때 어느 날 아버지께 전화가 왔다. 기타를 사러 낙원상가에 왔는데, 악기점에 좋은 베이스 중고 매물이 있다. 펜더 재즈베이스가 한 대 있는데 가격이 아주 좋다는 거다. 그래서 내가 "전 베이스 칠 줄 모르는데요?" 했더니, 사주면 배우겠냐셨다. 잘은 모르지만 좋은 베이스기타라기에 일단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네-"라고 대답했다. 나와 베이스의 인연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아마도 아버지는 이때까지 가족 밴드의 꿈을 포기하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아버지가 기타와 노래를 하고, 오빠가 대학교 때 밴드에서 보컬도 하고 키보드도 가능하고, 언니도 노래를 제법 하고, 엄마가 잠시 드럼을 배우던 시절이었으니 (하지만 엄마는 드럼에 소질이 전혀 없다.) 아무래도 아버지는 우리 집에 베이시스트가 필요하다 생각하시고는 언니보다는 건장한 나를 선택한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몇 주쯤 지나고 아버지에게 베이스를 받기로 하고 만나러 갔다. 커다란 하드케이스에 베이스가 담겨있었다. 들어보니 너무 무거워서 몇 걸음 걷기도 힘들었다. 너무 새것처럼 보여서 물었더니, 아버지가 사러 가니 이미 누가 물건을 사갔기에, 그 가격대로 새 베이스를 샀다고 했다. 그래서 얼만가 했더니 200만 원이라더라. 누가 베이스도 못 치는 초보에게 200만 원 베이스를 사준단 말인가. 하지만 아버지답다. (아버지는 악기는 중고로 팔 수 있는 악기를 사라는 신조를 가지고 계신다.)

그렇게 베이스를 힘겹게 받아왔지만, (베이스가 들어있는 하드케이스를 들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건 끔찍한 경험이다.) 내 주변에 베이스를 칠 줄 아는 사람도 없고, 딱히 흥미도 없어서 그냥 구석에 베이스를 박아뒀다. 그렇게 2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이사를 하면서 베이스도 부모님 댁에 옮겨 두었다. 그냥 잊고 살았다. 아무래도 베이스와 나는 인연이 아닌가 보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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