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를 일 년 반 가까이 쳤다. 일 년 반이라는 숫자를 보고 내 실력을 예상해선 안된다. 나는 일주일에 하루 한 시간 레슨동안만 치고 베이스를 가만히 놔둔 시간이 더 많은 사람이었기에 나의 실력 향상은 아주 더디다. 그래도 일 년 반 정도 쳐오니 어느 정도 쉬운 곡들은 커버가 가능했다.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합주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정도 연습해서 가면 사람들과 합주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인터넷에 밴드 멤버 모집글들을 올리는 사이트가 있었다. 내가 그곳을 어떻게 알았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찌어찌 알아내어 그곳에서 베이스 구인글을 검색했다. 흔히들 베이 스는 알아서 모셔간다고들 한다. 그만큼 기타, 보컬에 비해 그 수가 적어서 베이스를 치기만 해도 그냥 가도 된다고 했다. 구인글을 보고 주말에 합주하는 나와 시간이 맞는 밴드를 찾아서 연락했다. 토요일에 합주실에 가기로 했다. 합주실에 가는 것도 처음이었다. 조금 두근거렸다.
가보니 보컬, 기타 한 명, 키보드 한 명 그렇게 남자 세 명이 있었고, 베이스 연주에 대해서는 딱히 쳐보라고도 하지 않고 그냥 ok였다. 인터넷에서 보던 베이 스는 그냥 된다는 게 사실이었다. (적어도 나의 경험 속에서는 사실이었다. 오디션 보는 곳도 있음) 드럼이 아직 없어서 드럼까지 모이면 함께 합주를 시작하기로 하고 연락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몇 주 후 드럼까지 구하게 되어 모두 함께 모였다. 모여서 합주할 곡들을 정했다. 무슨 곡을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첫 합주를 하면서 중간에 곡이 너무 흥이 안 산다며 리듬을 바꿔보자고 보사노바 풍으로 해보자는 얘기가 나오더라. 기가 죽었다. 보사노바 풍이라니. 난 할 줄 몰랐다. 난 그저 원곡에 충실하게 카피만 겨우 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합주는 주로 일요일 오전에 했어서 그 후에 가벼운 회식들을 했다. 맛있는 곳들을 찾아가 술과 곁들여 먹었다. 마늘이 듬뿍 들어간 닭볶음탕, 백순대볶음, 치킨, 족발 등등이었다. 그렇게 얘기를 나누며 밴드 사람들과 조금씩 친해지게 되었다. 사실 그 안에서 남자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우리가 만나는 건 비밀이었고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문제가 되는 건, 한 멤버가 남보컬 혼자 두 시간 부르기 힘들지 않냐며 우리도 여보컬 한 명 뽑을까? 하더니 (아마도 자기가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여자 보컬이라며 한 명을 데려온 거다. 자신의 지인이 보컬 레슨을 받고 있다면서 보컬로 하자며 데려왔다. 우리는 당연히 잘 부를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노래를 시작하니, 정말 읭스럽다고나 할까. 이게 뭐지?라는 느낌이었다. 너무 못 불러서, 그러니까 노래에 감정이 하나도 실리지 않고, 음만 맞춰 노래 부르는 게 세상 재미없게 부르는 보컬이었다. 이게 보컬 레슨을 받은 실력이란 사실에 이 사람이 못하는 사람이란 것을 더 잘 뒷받침해 주더라. 이때 거절했어야 했던 것을 다들 너무 착해서 그대로 받아들였다. 문제는 이 여보컬을 데려온 멤버가 합주를 하면 이 여보컬을 칭찬하면서 남보컬을 깎아내리는 거다. 다들 이건 아니다 싶었던 거다. 그러면서 합주가 싫어졌고, 회사일이 바쁘다는 이유를 대면서 밴드가 해체됐다.
처음에는 해체되었다 말하고, 그 남자멤버와 여보컬을 빼고 새로 밴드를 만들려 했지만 꾸준히 되지가 않았다. 그래서 밴드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 당시 남자친구와 헤어지진 않았었다. 우린 우리대로 계속 만났다. 헤어짐은 밴드와는 별개로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