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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Oct 17. 2023

프랑스의 김치 부자

퇴근 후, 아시아마켓을 둘러보다가 집에 김치가 없어서 김치를 살까 하다가 근처에 보이는 무와 배추를 보고는 직접 담가야지 싶었다. 김치는 500g 즉, 배추 반포기가 6.5유로 넘는다. 1kg로 배추 한 포기를 사려면 10유로도 넘는 가격이다. 배추 한 포기나 커다란 무 하나에 2.5유로 정도니 훨씬 저렴한 가격에 김치를 담글 수 있다. (단, 이미 고춧가루나 젓갈 등이 있는 경우에만 해당된다)


이왕 담그는 거 더 많이 하고 싶지만 냉장고에 다 넣을 공간이 없으니 배추 2 포기와 무 큰 거 두 개만 사 왔다. 집에 가면서부터 어떤 김치를 담글까 고민했다. 한주 전에 깍두기를 담갔는데, 너무 맛있게 잘 익었었다. 그 깍두기를 한글학교 행사에 가져갔더니 사람들이 너무 잘 먹었다. 다만 행사에 깍두기를 너무 많이 챙겨가서 내가 먹을 깍두기가 얼마 남지 않아서 김치가 금세 동이나 버렸었다. 그래서 맛있었던 기억으로 깍두기를 다시 담글까 하다가, 날이 조금 쌀쌀해서 국밥이 생각나면서 자연스레 석박지를 떠올렸다. 조금 큼직하게 썩 박지를 담가서 국을 끓여 함께 먹고 싶어 졌다. 배추김치도 배추를 언제 다 절이나 하는 생각에 모두 잘라서 맛김치를 담그기로 결정했다.


집에 도착해서 옷만 갈아입고는 얼른 무와 배추를 잘라 소금에 절여두었다. 충분히 절여지기까지 최소 2시간은 걸릴 것 같았다. 알람을 맞춰두고 그동안 다른 일을 하며 기다린다. 맘이 급해, 두 시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주방으로 들어간다. 미리 양념을 만들어야지 싶다. 배추가 절이는데 더 오래 걸려서, 먼저 섞박지 양념을 준비한다. 찹쌀풀을 석박지와 맛김치에 모두 쓸 수 있게 넉넉히 만들어둔다. 찹쌀풀 절반을 부어 넣고, 고춧가루를 불릴 겸 뜨거운 상태지만 그대로 고춧가루를 넉넉히 붓는다. 마늘을 다지려고 보니 마늘이 없다. 당황스럽다. 어쩔 수 없이 마늘가루를 듬뿍 넣는다. 생마늘이 아니니 더 듬뿍 넣어준다. 생강가루도 조금 넣어준다. 새우젓 한 스푼 큼직하게 넣고, 액젓도 넉넉히 넣는다. 단맛을 위한 설탕은 빠질 수 없다. 맛을 본다. 짭짤하면서 된 것 같다. 자연스러운 단맛을 위해 양파 하나도 갈아서 넣어준 후 모두 잘 섞는다. 무가 절여지면서 물이 듬뿍 나왔다. 무를 손으로 꺾어보니 잘 휘어진다. 잘 절여졌다. 물기를 제거하고는 양념에 넣어 버무려주니 석박지가 완성이다. 큰 통에 모두 담고는 맨 위에 랩을 덮은 후 뚜껑을 닫는다.

조금 후, 배추를 본다. 어느 정도 제법 절여졌다. 배추 양념을 위해 남겨둔 무를 채 썰어준다. 파도 썰어서 준비한다. 찹쌀풀, 무채, 파, 고춧가루, 설탕, 액젓, 새우젓을 모두 함께 잘 섞어준다. 그런 후 절여둔 배추에서 물기를 제거하고 넣어 잘 섞어주니 맛김치도 금세 완성된다. 이대로 냉장고에 넣는다면 2~3주는 있어야 익을 거다. 난 바로 먹을 김치가 필요하니 그대로 실온에 놔둔다. 날이 좀 추워져서 익는데 며칠 걸릴 것 같다.

맘이 급해 매일 아침 김치를 맛보며 상태를 본다. 김치에 보글보글 거품이 올라올 때가 익은 건데, 3일쯤 지나니 거품이 올라온다. 발효가 된 거다. 맛을 보니 섞박지는 맛이 좋다. 3일째 석박지는 먼저 냉장고에 넣고, 맛김치는 하루만 더 기다린 후 완전 푹 익자 냉장고에 넣었다. 김치찌개 끓여도 맛있을 것 같다. 처음에 익기 전에는 배추 맛김치 맛이 조금 애매해서 이번엔 실패인가 했는데, 맛이 딱 좋다. 뿌듯했다.

냉장고에 김치를 넣는데 한편에 사뒀던 두부가 보이더라. 배추김치와 두부김치가 바로 떠올라서, 김치를 꺼낸다. 미리 잘라진 상태라 자를 필요 없으니 너무 편하다. 두부는 잘라서 그릇에 담고 그대로 물을 붓고 전자레인지에 뜨끈하게 데운 후 물을 제거하면 따뜻한 두부가 완성된다. 그런 두부를 접시에 담고, 한편에 잘 익은 배추김치를 얹는다. 두부와 김치의 조합이 너무 좋다. 이 김치로 할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다. 내가 만들었지만 맛있는 게 혼자 먹기 아까워서 친한 한국인 지인들에게 연락한다. 석박지를 담갔는데 양이 넉넉하다고 나눔 하려고 하는데 관심 있느냐 묻는다. 석박지란 소리에 모두 반가워한다. 석박지 하니 모두 국밥이 당긴다고 했다. 아무래도 주말에 국밥을 끓여야겠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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