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확위 Oct 19. 2023

깍두기가 맛있기에 혼자 먹기 아까워서

집에 김치가 없어서 무를 사 왔다. 깍두기를 담글 생각이었다. 평소에는 귀찮아서 밀가루에 물을 풀고 전자레인지로 돌려 급조한 밀가루풀을 만들었는데, 맛이 매번 만족스럽지 못했다. 제대로 만들어야지 싶었다. 냄비에 물을 붓고 찹쌀가루를 넣는다. 온도를 높이고 계속해서 저어줬다. 부지런해야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는 법이다. 계속 저어준다. 점점 걸쭉해지는 게 느껴진다. 그러다 폭, 폭하고 김이 새어 나오기 시작하면 다 됐다 싶어 불을 끈다. 김치에 버무리려면 당연히 풀이 식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따뜻할 때 고춧가루를 넣으면 고춧가루가 더 잘 불게 된다. 고춧가루만 듬뿍 넣어 불도록 놓고는, 무를 깍둑썰기하여 준비하고 소금을 듬뿍 뿌려 절여둔다. 알람을 2시간 맞춰두고 그동안 뒹굴거리며 유튜브를 본다.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다가 살짝 잠이 들었다. 알람 소리에 깨서는 주방으로 간다. 깍두기가 절여지며 물이 나와 아래 물이 고였다. 체에 밭쳐 물기를 모두 제거해 준다. 하나 맛을 본다. 잘 절여졌다. 고춧가루와 찹쌀풀에 이제 양념들을 해야 한다. 냉장고에서 새우젓을 꺼내와서 듬뿍 한 스푼 넣는다. 그런 후, 멸치액젓도 듬뿍 부어준다. 엄마의 고향이 전라도라서 그런지, 난 항상 젓갈 듬뿍 넣은 김치를 먹으며 자라왔다. 그래서인지 나도 젓갈을 듬뿍 넣는 편인 듯하다. 다진 마늘이 없으니 직접 마늘을 모두 까서 다져줘야 한다. 마늘 까기는 너무 귀찮다. 하지만 마늘 없이 김치는 담그나 마나이다. 마늘은 필수이니 열심히 다져서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마늘을 크게 세 스푼 가까이 다져서는 모두 넣어준다. 그런 후 양파 하나도 깍둑썰기하여 넣어준다. 양파를 깍두기에 넣으면 가끔 씹힐 때 시원한 맛이 좋다. 단맛을 빼놓을 수 없다. 설탕을 넣는다. 꽤나 많이 들어간다. 그런 후 양념 맛을 본다. 충분히 짜면서도 살짝 단맛이 올라와야 맞는 맛 같다. 아직 김치 담그기는 감을 잡지 못해서 익기 전에 성공인지 여부를 모르겠다. 김치는 너무 어렵다. 양념은 그럭저럭 된 것 같으니 절여둔 무를 모두 넣고 버무려준다. 손으로 버무려야겠지만 장갑도 없고 손을 더럽히기 싫어서 숟가락으로 잘 저어 버무려준다. 그런 후 통에 모두 부어주고 윗면을 랩으로 덮어주고 뚜껑을 닫는다.

냉장고에 바로 넣으면 2주 정도는 있어야 겨우 익을락 말락 할 것이다.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 못한다. 나는 빨리 먹고 싶다. 실온으로 한편에 꺼내둔다. 맘이 급해서 매일 아침 뚜껑을 열어 깍두기를 하나씩 맛봤다. 익으면 보글보글 양념에 거품이 생긴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괜히 내가 맛을 직접 봐야 속이 시원했다. 이틀째가 되니 조금 아주 조금 익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양념이 조금 묽은 듯하여 고춧가루를 더 넣고 짠맛이 조금 부족하기에 액젓을 조금 더 넣었다. 그렇게 다시 한번 저어주고 뚜껑을 덮는다. 3일째가 되니 확실히 익어가는 맛이다. 조금 보글보글 거품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 푹 익지는 않았다. 오래 보관하려면 이쯤에서 냉장고에 넣어야 했지만, 나는 완전히 익은 깍두기가 먹고 싶었다. 하루 더 밖에 보관한다. 아침에 맛을 본다. 다 익었다. 이제 진짜 냉장고로 이동할 시간이다.

깍두기를 맛봤는데, 맛있었다. 혼자 먹기 아깝더라. 여기에서 이 정도 맛의 깍두기는 구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서, 지인들에게 연락했다. 깍두기를 나눔 하기로 한다. 주말이 되고 깍두기를 나눔 하기 위해 봉지에 가득 담는다. 이렇게 혼자 먹기 아까워서 한글학교에서 하는 행사에 깍두기를 듬뿍 챙겨간다. 이번 한글날 행사에서는 김밥 아뜰리에를 한다. 다른 선생님들이 김밥 재료를 모두 챙겨 오시고, 나는 잡채와 오징어초무침을 준비한다. 그리고 잘 익은 깍두기도 챙겼다. 사람들이 김밥을 싸 오면 김밥을 잘라주었다. 그러면서 옆에 차려둔 다른 요리들도 챙겨가도록 안내했다. 잡채가 너무 뭉쳐서 내가 장갑을 끼고 잡채를 떠줬다. 사람들이 챙겨가는 요리들을 지켜본다. 내가 가져온 음식들을 잘 먹는지가 내 최대의 관심사다. 깍두기를 모두가 잘 챙겨간다. 음식을 또 가지러 왔을 때 가져가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좀 전에 가져갔던 사람이 다시 와서 깍두기를 더 가져간다. 맛있다는 뜻이다. 한 한국인 꼬마가 깍두기를 세 번 가져간다. “깍두기 맛있어요? 맵지 않아요?”라고 물어보니 맛있다고 한다. 그렇게 챙겨간 깍두기가 정말 무 한 조각도 남지 않고 동이 난다. 깍두기가 맛있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깍두기를 지인들에게 한 봉지씩 안겨주며 말한다. 깍두기를 세 번 가져다 먹는 사람도 있었다고. 맛있나 보다고. 그렇게 깍두기를 나눔 하고 며칠 후, 깍두기를 받았던 지인을 또 만날 일이 있었다. 내게 말했다. 깍두기 정말 맛있었다고, 그래서 남은 국물도 아까워서 아직 버리지 못했다고. 기뻤다. 이런 순간을 위해 내가 음식을 나누는 거다. 나는 다른 뭘 바라지 않는다. 그저 맛있게 먹어주면 그걸로 충분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