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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Jan 15. 2024

2년 만에 한국에 가다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기 위해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에 온 지 2년이 넘었다. 두 달 전 아버지께서 서류처리 할 것이 있으니 한국에 꼭 좀 잠시 들어오라 말씀하셨다. 아버지께 지금 항공권 구해서 가려면 엄청 비싸다며 투덜거리니, 아버지께서 그건 아버지가 다 부담하겠다고 하셨다. 이 나이에도 부모님이 해주는 걸 거절하지 않고 다 받는 내가 조금은 부끄럽지만, 내 사정상 이런 경제적 지원은 거절하지 않는 편이다. 원래는 어머니가 12월에 겨울 휴가로 이탈리아에 오실 계획이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여행을 할 계획이었기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귀국 편에 함께 돌아가기로 하고 항공권을 "로마->인천"으로 구했다. 내 항공권이라면 경유해서 싸게 가는 것으로 골랐겠지만, 어머니만 혼자 가시는 것보다 내가 함께 가는 게 좋겠다 싶어 국내항공사 것으로 구했었다. 그렇게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어느 날 어머니께서 갑자기 일에 일정을 변경해야 해서 여행을 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어 어머니의 여행을 취소했다. 이후, 고민하기 시작했다. 로마에서 출발하는 항공권을 취소해야 할 가하고 말이다. 알아보니 취소 수수료가 200유로가 넘었다. 아까웠다. 결국, 아직 이탈리아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기에- 로마에 혼자 가서, 혼자 여행으로 조금 즐기다가 예정된 항공편을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한국에 돌아가는 것이 결정되고 해야 할 것들은, 한국에 가져갈 선물들을 사는 것이었다. 어차피 비싼 것은 사지 못하니 소소한 것들을 골라잡는다. 먼저 많이들 트러플 소금을 사간다고 하기에 백화점에 가서 트러플 소금 세트를 샀다. 그런 후, 스트라스부르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돌면서 선물할 만한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마트에 가서도 사갈만한 과자와 초콜릿 등의 간식을 계속 찾아다녔다. 그렇게 몇 주 동안 야금야금 선물을 사모아보니, 내 큰 캐리어 한쪽에 꽉 차더라. 와인을 가져가고 싶었지만, 수량도 2병으로 제한적이고 내가 로마에 갔다가 가는 길이기에 유리병이 불편했다. 그렇게 은근히 묵직한 캐리어를 끌고 로마로 향했다.


로마에서의 며칠은 즐거웠다. 다만 도착한 날부터 두통과 함께 조금 아프기도 했지만, 피곤한 탓이라 생각했다. 로마에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공항에서 비행기에 오른다. 드디어 한국으로 간다. 2년 만이다. 조금 두근거리는 맘으로 비행기에 탑승했다. 12시간가량의 비행 중 거의 잠에 취해 있었다. 워낙 피곤했었기에 자고, 자고, 또 잤다. 완전히 푹 자니 항공이 지루할 새도 없었다. 그렇게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공기 자체가 추워졌다. 역시 한국의 겨울인가 싶었다. 짐을 찾아 공항에서 나와 버스를 타러 갔다. 찬 바람에 피부를 누가 찌르는 것 같은 아픔이 느껴졌다. 한국의 추위는 역시 프랑스의 것과는 달랐다. 그렇게 짐을 챙겨 언니네 집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일정들이 있어 지방에 있는 부모님 댁이 아니라, 경기도에 있는 언니네 집에 머물기로 했다. 언니네 가족이 파리로 여름휴가를 왔어서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래도 거의 일 년여 만이었다.

언니가 버스 하차하는 곳까지 마중을 나왔다. 내가 언니 차에 타자마자 내게 따끈한 고구마를 건넸다. 내가 고구마를 좋아해서 내가 오는 날에 맞춰 고구마를 사뒀다고 했다. 고구마를 먹으며 오는 길은 어땠는지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가족이니 오래간만에 만나도 별 다른 말 없이 그냥 바로 친숙해 편안해졌다. 그렇게 언니 집에 도착했다. 조카들이 다가와 인사를 했다. 애들이 못 본 새 훌쩍 커이었다. 다들 위로 길어져 있었다. 아이들은 참 빨리도 큰다. 나를 만나기 위해 친한 사촌동생도 와있었다. 임신을 해서 동그란 배가 귀여웠다. 피로에 지친 몸을 따뜻한 물로 씻어내고, 캐리어를 열어 선물을 모두 꺼냈다. 사촌 동생에게 하나하나 설명하며 가지고 싶은 것을 고르라 했다. 그 후, 언니도 가지고 싶은 것을 고르게 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것을 골랐다. 하짐나 언니에게 고마운 것이 가장 많으니 언니는 얼마든지 챙겨도 좋았다. 언니가 챙기고 남은 것들을 이제 줘야 할 친구들이나 친오빠네, 부모님 등에게 뭘 줄지 조금씩 배분했다.

한국에서의 첫 식사로 나는 짜장면을 말했었는데, 언니가 짜장면은 간식으로도 먹을 수 있지 않냐면서- 회 그립 다했으니 회를 시켜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겨울방어를 시켜줬다. 겨울 방어를 먹고, 매운탕까지 야무지게 먹었다. 회도 회였지만, 매운탕에 있는 미나리가 너무 좋더라. 2년 만에 먹는 미나리였다. 그렇게 저녁도 먹고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중, 밤 10시경에 어머니가 도착하셨다. 며칠을 언니네 집에서 머물며 나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어머니와는 괜히 어색한 맘에 "어, 오셨어요?" 정도의 인사를 나눴다.

2년 만에 온 한국의 겨울은 매서웠지만,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어 어찌 보면 프랑스보다는 따뜻하다고 하겠다.

이전 01화 [프롤로그] 조금은 갑작스럽게 한국에 돌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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