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확위 Jan 15. 2024

2년 만에 온 한국은... 편안하다

한국을 떠난 지 길지 않은 2년이 흘렀고, 그동안 한국이 딱히 그립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향수병은 없었다. 난 오랫동안 자취생활을 해서 원래도 가족들과 떨어져 살아왔고, 친구들과도 만날 시간이 많지 않아 기껏해야 한 달에 한 번 볼까 말까 했었다. 그런 생활을 몇 년이고 해왔었기에 메신저로 연락하는 것만으로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을 떠나와서 부모님과 통화를 더 자주 했다. 조금 그리워할 만한 것이라면 음식이겠는데, 아시아마켓에 거의 모든 재료들이 있고 내가 요리를 할 수 있으니 한국 음식도 크게 그리울 게 없었다. 사람과 음식을 그리워하지 않으니 한국이 딱히 생각날 것이 없었다. 물론, '한국이라면 이렇지 않은데'라는 불편함을 느낀 일들이야 종종 있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렇기에 2년 만에 한국에 올 때만 해도 한국에 가면 가족과 친구들 만난다는 것 외에는 크게 기대할 것이 없었다. 프랑스에서 한국 지인들에게 한국에 간다고 하면 다들 굉장히 부러워했는데, 나는 '한국 가는 게 부러운가?' 하는 생각이었다. 별 기대하는 맘 없이 한국에 왔더니, 내 생각과 꽤나 다른 느낌이었다.


처음에 공항에 도착하고부터, 주변이 굉장히 시끄러웠다. 나는 프랑스어를 못 한다. 2년이나 있었는데 왜 못하냐 생각할 수도 있는데- 변명이라면 연구소에서는 영어를 사용했고, 외출을 해도 사람들이 영어를 해서 프랑스어가 그렇게 필요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나의 우선순위는 프랑스어가 아니었다. 노력해서 공부하지 않으니 언어는 늘지 않더라. 내가 만약 어린아이였다면 그냥 자연스럽게 흡수하여 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30대다. 노력 없이 흡수될 나이가 아니었다. 그러니 불어를 못하는 내게 프랑스에서 사람들의 말소리는 머릿속에 꽂히지 않는다. 그냥 소리다. 내게는 언어가 아니다. 그런데 한국, 내 나라에 오니 주변에서 온통 내가 아는 언어로 대화들을 나누니 모든 소리들이 머릿속에 입력되는 거다. 옆 사람이 얼마 전 취직에 성공했고 그 사실을 비행기에서 내려서 알게 됐고 어머니와 통화하는 내용이나, 집에 어떻게 갈까 얘기 나누는 가족들이 이런 소소한 대화들이 모두 들렸다. 시끄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내가 한국에 왔음을 처음으로 실감했고, 내가 아는 언어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추위는 기억보다도 매서웠다. 도착하는 순간부터 추위가 느껴지고, 바깥으로 나가니 피부가 아플 지경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완전 무장한 두꺼운 패딩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한국에 왔음을 실감했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가면서, 햇빛을 막기 위해 모두 버스에서 커튼을 쳐서 버스가 어두컴컴한 것도 한국이구나 싶었다. 프랑스에서는 사람들이 햇빛을 워낙 좋아하니, 공항버스를 타도 아무도 커튼을 안 치더라. 소소하지만 한국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버스 창 밖에 보이는 높은 아파트 단지들을 보면서도 한국임을 알았다.


언어가 통하는 내 나라에 오니 모든 게 편했다. 다 알아듣는다. 긴장할 것이 없다. 내가 아는, 내 구역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친절했다. 비행기에서부터 국내 항공사의 비행기를 타고 왔더니 해외 항공사 승무원들보다 친절도가 배였다. 식당을 가서 주문을 받아도 기본적으로 다들 친절했다. 프랑스에서는 뭐랄까, 그 사람들이 그냥 필요한 일만 하는 느낌이었는데 (내가 있는 곳이 알자스 지역이라 더 그럴지도?) 한국에서는 기본적으로 친절함, 따뜻함을 더 안고 있는 느낌이었다.


2년 전에 내가 떠날 때와 조금 달라진 것들도 있었다. 기차를 타는데 사람들이 모두 즐을 서 있더라. 선착순 착석도 아니고 모두 자기 자리가 있는 표를 가지고 있음에도 다들 줄을 서더라. 서울에서 지하철을 탈 때도, 사람들이 줄을 전보다 훨씬 잘 서고 있었다. 예전에는 붐비는 출퇴근 시간 정도에만 줄을 섰었는데, 이제는 기본이 줄 서기 같았다.

프랑스에서 중소도시에 있다가 한국에 오고 서울에 가니 사람이 너무 많게 느껴졌다. 차도 너무 많았다. 이런 북적거림이 어색하면서도 금세 적응되고 그 활기참이 좋았다. 프랑스에서 내가 있는 스트라스부르는 사람이 적다. 한국으로 치면 "군산"정도의 인구다. 크리스마스 마켓 때나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붐비지만, 평소에는 그렇게 북적거리지 않는다. 그런 한산함이 어쩔 땐 지루하게도 느껴진다. 한국 같은 활기참보다는 여유로운 느낌이 강한 곳이다. 한국에 오니 새삼 밤에도 불이 켜진 많은 빌딩들과 바삐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역시 다이내믹 코리아구나 싶더라. 보이는 모습 하나하나가 반가웠다. 토요일 강남역에 내려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새를 헤집고 가는 것도 반가웠고, 버스들 몇 십 대가 정차하는 버스 정류장도 반가웠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원하는 버스를 골라 타야 하는 그런 것도 그냥 재밌게 느껴졌다.

친구들과 만나면서 2년 만에 만났지만, 메신저로 거의 매일 연락하던 친구 들이라서인지 어색함 없이 그저 재밌었다. 내가 프랑스에서 왔으니 손님이라면서 전부 사주더라. 우리 모임에서 겨울이면 먹는 겨울 방어를 먹으면서, 계속해서 프랑스에 없는 것을 먹어야 한다고 했고, 추가로 멍게를 사주더라. 그런 후에는 2차로 맥주에 먹태를 먹기도 했다. 프랑스에 없는 것이니까- 오랜 친구들과 만남은 즐거웠다. 시간이 금세 흘러갔다. 프랑스에서도 즐거운 만남들이 많았지만 이렇게 금세 시간이 흘러가진 않았다. 역시 나와 진짜 친한 친구들인 건가 싶었다. 모든 대화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내가 애쓸 것이 없다. 내가 그들을 알고, 그들도 나를 알고. 이런 사람들과 직접 만나 대화하는 즐거움에 새삼 내가 한국에 왔구나 싶었다. 오랜만에 한국에 오니, 한동안 못 보던 친구들도 연락이 왔다. 내가 떠날 때가 코비드 때라서 제대로 인사를 하지 못하고 떠나기도 했다. 그런 몇몇 친구들이 나와 만나기 위해 시간을 잡고 모였다. 고마웠다. 함께 참치회를 먹으며 (어쩌다 보니 친구들과 다 회를 먹었다.) 근황 토크를 한다. 두 명은 내가 없는 동안 아이가 생겼다. 한 명은 이제 90일이었다. 나만이 아니라, 그들도 몇 달 만에 만나는 거라 서로서로가 근황에 대해 나눴다.  친구들과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내가 머무는 시간이 길지 못해 몇 시간만 겨우 본다는 게 아쉬웠다. 다음에 다시 보자고 인사를 나누며 헤어질 때는 아쉬움뿐이었다.

한국이 그립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온 한국은 너무나도 편안했고, 이래서 사람들이 한국에 간다고 했을 때 부러워한 건가 싶었다. 나는 어느 나라에서라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과연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한국에 있는 만큼 내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단순히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이전 02화 2년 만에 한국에 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