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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Jan 26. 2024

2년 만에 돌아온 한국, 휴가 중에 면접이 잡히면

 2년 만에 프랑스에서 한국에 잠시 들어왔다. 아버지께서 서류 처리할 게 있으니 잠시 들어오라고 하셔서 항공편을 예약했는데, 서류가 필요 없어졌음에도 취소 수수료가 아까워 오래간만에 한국에 잠시 들르기로 한 것이었다. 한국에 들어오기 전 짧은 로마 여행을 혼자 즐기고는 한국에 입국했다. 언니네 집에 가서 조카들도 만나고 언니, 형부, 사촌동생을 만나 대화하며 따뜻한 첫날을 보냈다. 다들 일찍 잠이 드는데 시차 때문인지 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아.. 잠이 안 오네 어쩌지... 하다가 거의 아침이 될 무렵 잠에 들어서는 아주 늦잠을 제대로 자고 눈을 떴다. 꺼진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았다. 핸드폰이 켜지면서, 메신저나 메일 와 있는 것들을 확인한다. 메일함에 들어가 보니, 12월 1일에 한국 한 대학교 공고에 냈던 서류 결과가 와 있었다. 큰 기대감이 없었다. 당연히 떨어졌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클릭을 했는데, 당황스럽게도 서류전형에 합격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열흘 뒤에 면접이 있다고 했다. 면접일은 내가 출국일 이틀 뒤였다. 당황스러웠다. 여기에 붙어서 면접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을 못했다. 기쁘지만 당황스러웠다. 박사과정 지도교수님께 문의해 본다. 혹시 이런 거 화상면접을 하기도 하냐고 말이다. 교수님이 코로나 시대 외에는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하셨다. 해외에 있는 포닥들이 임용을 위해 다들 면접 때 한국에 온다는 건가? 싶어서 혼란스러웠다. '그 먼 길을 온다고???' 인터넷 커뮤니티를 찾아 들어가 검색해 본다. 아... 다들 먼 미국에서도 면접이 잡히면 급하게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와서 면접을 본다고 한다. 자기가 아주 아주 아주 뛰어나서 대학교들이 모셔가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다들 대면 면접이라고 한다. 최종까지 갈지 어떨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이런 면접의 기회가 온 것 자체가 내겐 기회이고 행운이니까 면접을 보기 위해 항공편을 미루기로 결정한다. 면접에서 시범강의를 해야 한다 하여 짧은 강의도 준비하고, 그 후 면접이 진행된다 하여 면접 준비도 해야 했다.


면접이 잡힌 한국의 대학교에 최종 합격한다 보장이 없으니, 안될 경우를 대비하여 다른 곳들에 지원서를 계속해서 써야 했다. 이때까지 열 곳 가까이 지원서를 제출했지만 대부분 연락이 오지 않아서 모두 서류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강의 준비를 위해 한동안 안 본 전공책을 펼쳐본다. 너무 하기가 싫어 집중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지원서나 쓸까 하고, 한 곳에 지원서를 제출한다. 그런 후 이틀이 지났을까, 한국에서 지원서를 썼던 곳에서 화상으로 인터뷰를 하자고 연락이 왔다. 한국 대학교 면접 바로 전날이다. 그나마 겹치지 않은 걸 다행이라 해야 할까? 한국에 휴가를 보내러 왔는데, 면접이 두 개가 잡혀버렸다. 기쁘면서도 여전히 당황스럽다.

면접 준비를 해야 하니, 친한 친구는 굳이 시간 내서 자기를 만나러 올 필요가 없다는 말도 했다. 이런 면접 기회가 매번 있는 게 아니라 나름 일생의 기회가 아니냐고 말이다. 다행히 노트북을 챙겨 와서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대면 면접을 위해서 정장도 새로 하나 저렴하게 사야 했다. 다행히 전에 언니네 집에 두고 간 구두 정도는 있었다. 그렇게 한국에 왔음에도 가족들을 만나고, 친구들을 두 번 만나고, 예전 연구실에 가서 교수님과 연구실 후배들을 만나고, 프랑스에서 챙겨 왔던 샘플로 실험을 좀 한 것 외에는 면접 준비를 했다. 하기 싫어서 중간중간 딴짓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하루하루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


한국 시간 수요일 저녁 8시에 스페인에 있는 연구실과 화상 면접을 진행했다. 이 날은 오전부터 이 면접을 위한 준비를 했었다. 먼저 15분 정도 짧게 나에 대한 소개와 지난 연구들에 대해 발표를 했다. 나는 내가 준비한 대로 했다. 그렇게 끝나고, 몇 가지 연구에 대한 질문을 하고는 갑자기 문제 풀기를 하더라. 전공 기본 지식을 평가하기 위함인 것 같았다. 분명 예전에 전공책으로 다 배웠던 내용들인데, 실제 실험에서 거의 쓰질 않으니 다 까먹은 내용들이었다. 첫 문제를 풀면서, 머릿속으로 '망했다.... 난 왜 이것도 기억 못 하지'하면서 스스로에게 너무 실망스럽고 자신이 한심했다. 어차피 망한 거, 그냥 끄고 나가서 연결이 끊겼다고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도망가고 싶더라. 어차피 망한 것 같았다. 5개 문제 중에 맞춘 것도 있었다. 설명도 맞게 한 것도 있지만, 못한 것들이 너무 치명적이라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내게 질문이라며 하는 것이 지금 연구실에서는 왜 논문이 없냐고 했다. 예상했던 질문이지만 실제로 받으니 조금 당황스럽더라. 지금 프로젝트가 공동연구여서 그렇다는 핑계스러운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인터뷰가 끝나가는데,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고 뭐라도 더 보여야 할 것 같아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도 되겠냐고 말하고는 "내가 오늘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알지만, 붙으면 최선을 다해서 더 공부하고 노력해서"어쩌고 저쩌고 하며 지질한 말들을 내뱉었다. 이런 말이 도움이 될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뭐라도 마지막까지 하고 싶었다.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화상면접을 끝냈다. 끝내고 나니 머리가 하얘지고 힘이 빠지고, 원래도 없던 자신감이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이런 상태로 무슨 다음 면접인가 싶으면서 다음날 있을 면접도 어차피 망칠 것만 같았다. 어머니에게 안부 전화가 왔지만 모든 게 짜증스러워서 매우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소파에 널브러져서 세상 끝으로 가라앉을 듯 한 기분으로 멍하니 있었다. 언니가 지나가며 나를 보고는 얼른 일어나라 했다. 아마 언니가 옆에서 그렇게 얘기를 계속해줘서 정신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망쳤지만 그대로 모든 걸 포기하지 않고 면접이 끝나고 두 시간 뒤에 다시 정신을 차려 다음날 면접을 준비하기 시작한 나 자신이 조금은 대견하다. 다음날 면접과 시범강의를 위해 연습들을 몇 번 하고는 잠에 든다.

면접은 오후 4시였는데, 한 시간 반 거리였다. 그곳까지 가면 퇴근 후에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 퇴근 시간과 겹치기도 하고, 그런 후 집에 와봤자 다시 한두 시간 후에는 공항으로 가야 했기에 면접 장소로 바로 캐리어를 끌고 간다. 아침부터 모두 다 싼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는 캐리어를 끌고 서울로 향한다. 면접이 있는 학교까지 가는 길은 제법 멀었다. 캐리어를 끌고 힘겹게 도착한다. 3층까지 가야 하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에서 캐리어를 끙끙 짊어지고 올라간다. 면접을 보기 전에 이미 지쳐버린 기분이었다. 면접 대기장소에 가서 기다린다. 40분 일찍 와서 대기하며 연습을 한다. 나 다음 차례 사람이 조금 일찍 왔다. 익숙한 얼굴이다. 예전 연구실 옆 방 졸업생이다. 나보다 먼저 졸업했던 사람인데 좋은 곳에 취직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여기서 만나다니 세상 참 좁구나 싶었다. 면접에 들어간다. 나는 발표할 때 언젠가부터 잘 떨지 않게 되었다. 그냥 해치우자는 맘으로 그냥 덤덤하게 하고 종종 텐션이 조금 올라온다. 평소보다 더 밝은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시범강의는 딱 내가 준비했던 대로 했다. 그러고 질의응답이 있었다. 제대로 답한 것도 있고, 얼렁뚱땅 답한 것도 분명 있다. 익숙한 교수님 한 분이 계셨는데 외부심사위원으로 온 분 같았다. 내 기억으로는 물리화학 교수님이다. 그래서인지 물리화학에 관한 질문을 끈질기게 하셨다. 그렇게 강의에 대한 질의응답을 끝내고는 면접 시간이 되었다. 이런저런 질문을 받는데, 누군가 질문했다. 논문이 많은데, 왜 지금 있는 곳에서는 논문이 없냐고 물었다. 맘 속으로 또다시 당황했다. 어제에 이어 동일한 질문이다. 이번에도 공동연구라서 시간이 걸린다고 답한다. 질문들을 하다가 나에게 더 이상 질문이 없는지 시간이 남았다. 심사위원장 같은 분이 마지막으로 지금 있는 곳 스트라스부르에 대해 1분간 말하라 한다. 나에 대해 관심이 정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답변하고 면접을 마무리한다. 면접을 끝나니 시원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있는 만큼만 했다. 당연히 더 노력해서 더 잘할 수도 있기도 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전날 화상면접보다는 나았다.

그렇게 면접을 끝내고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캐리어를 끌고 공항으로 향한다. 공항으로 가는 공항열차 안에서 너무 지쳤다. 퇴근시간이라 사람들이 빼곡했다. 한 시간 가까이 이 열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들 같았다. 다들 참 대단하구나 싶었다. 이 먼 길을 매일 오고 가는 삶이 참 피곤할 것 같았다. 공항에 도착하고, 출국수속을 마치고는 게이트 앞에 자리 잡아 쉰다. 너무 피곤하여 약국에 가서 피로회복제를 달라고 해서 한입에 들이킨다. 다시 게이트 앞에 가서 자리 잡고 앉는다. 공항에 워낙 일찍 도착해서 시간이 많이 남았다. 면접 준비하느라 제대로 대화도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화를 한다. 아버지, 어머니, 베프, 언니,... 오늘 면접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앞으로 어떨지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이번 휴가는 이름은 휴가였지만, 갑자기 잡힌 면접들로 20%는 사람들 만나기, 40%는 면접준비, 40%는 면접 걱정과 딴짓으로 가득 채웠던 것 같다. 걱정할 시간에 그냥 집중해서 준비했다면 더 잘했을까? 이미 지나간 일이니 다시 생각해서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내가 화상면접에서 도망가고 싶었다는 얘기를 베프에게 전화로 얘기하고 마지막에는 너무 아쉬워 한 마디를 보탰다는 얘기를 하니 친구는 그것만으로 대견하다고 말해주더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고 싶은 말까지 한 것에 대해 칭찬을 해줬다. 예전의 나였다면 안 했을 거라면서 언제 이렇게 변한 거냐고 말해주었다. 그런가... 예전의 나라면 정말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나가기를 누르고 면접을 강제 종료시키며 도망가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난 끝까지 면접을 해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했다. 잘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해냈다. 대면면접도 내가 모르는 것은 몰라서 제대로 답변을 못 했을 뿐, 내가 준비했던 것들은 준비한 대로 해냈고, 내가 할 말들은 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한 거다. 비록 휴가가 휴가가 아니게 되었지만, 이 면접들을 하면서 나는 조금 더 성장한 것 같다. 아직도 성장할 시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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