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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Jan 26. 2024

프랑스에 돌아오니 한국에 가게 되었다

2년 만에 한국에 갔다가 프랑스에 다시 돌아온 지 1주일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시차적응하느라 새벽에 중간중간 깨곤 했는데, 꿈속에서 한국에서 봤던 면접 결과가 나왔다. 그러다 번쩍 눈을 떴는데 새벽이었고, 이게 우연인 건지 아니면 내게 신기가 있는 건지 진짜로 메일이 와있었다. 오 신기한데? 하는 생각과 조금은 두근거리는 맘으로 메일을 열어보았다. 아... 아쉽게도 1차 면접에서 탈락이었다. 최종면접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최종면접 기회가 생겼다면 다시 한국행 항공편을 알아봐야 했지만, 그 기회는 내겐 없었다. 잠시 조금 멍한 기분이었다. 여기에 붙는다면? 하는 가정으로 머릿속으로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이미 진행되었었고, 최종면접을 한다면! 최종면접에서 합격한다면?! 등 여러 가능성들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었는데 모두 아무런 의미 없는 상상에 불과하게 되었다. 그렇게 떨어지고는 먼저 언니에게 알리고, 마침 다른 일로 메일을 보내셨던 박사과정 지도교수님께 연락드렸다. "교수님 아쉽게도 XXX는 떨어졌습니다." 교수님이 잠시 후, "아깝게 되었구나"라고 답장을 보내주셨다. 그렇게 조금은 힘이 빠져 잠시 멍하게 있다가 그냥 다시 눈을 감고 잠에 들었다. 한두 시간쯤 더 잤을까 다시 눈이 떠져서 이번엔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자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노트북 앞에 앉아있는데, 지도교수님께 연락이 왔다. 전에 말했던 곳으로 가는 건 어떻냐는 거였다.


 한국에서 뵈었을 때, 내게 다음 갈 곳이 정해졌냐고 물으면서 나도 알고 있는 교수님 한 분이 박사 후연구원을 구한다며 문의하셨다고 했다. 워낙 유명한 분이라, 그분 연구실에 가면 분명 논문은 많이 쓸 것 같았다. 교수님이 말하시는 전에 말한 곳이 바로 이 연구실이었다. 갑자기 고민되기 시작한다. 아직 스페인 면접 결과가 안 나왔지만, 망했던 면접이기에 기다리는데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긴 했다. 게다가, 그곳에 붙는다 할지라도, 당장 논문을 빨리 쓸 수 있는 그런 연구가 아니었다. 최근 두 번의 면접에서 모두 현재 있는 곳에서 왜 아직 논문이 없느냐를 물었던 것을 생각하면, 나는 당장 예전 연구실과의 논문이 아닌 새로운 곳에서의 논문을 써야만 독립적인 연구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지금 있는 프랑스의 연구소에서도 내가 제안하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하나는 논문까지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게 내 계약기간 내에 끝날지가 문제인 거다. 머릿속으로는 한국의 소개받은 교수님 연구실에 가는 게 베스트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곳 생활이 난 즐겁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데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있었다. 게다가 한국에 가서 논문을 내기 위한 연구를 하면, 나의 진로이자 목표를 아카데믹 쪽으로 굳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조금 두려움이 생겼다. 나는 가능한 모든 길을 열어두고 싶은 사람이다. 안 그래도 좁은 미래를 더 좁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이다. 혼자 결정하기에 막막한 기분이 들어서 한국에 있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 제안을 받았다고 설명을 했다. 언니가 말했다. "좋은 기회 같은데, 넌 뭐가 망설여지는 거야?" 언니 말이 맞다. 좋은 기회다. 걸릴 게 없다. 다만 한국으로 돌아가는 점이 나에게 오히려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누군가는 돌아가고 싶어 하는 한국인데, 나는 왜 돌아가는 게 두려운 것일까. 아마도 이곳 프랑스에 와서 내가 연구자로 이룬 게 없다는 느낌에 실패한 채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가졌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언니와의 통화를 하면 마음을 다잡았다. 현재 내게 최선의 선택을 하자고. 다른 생각 없이 지금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생각하자고.


그렇게 언니와의 전화를 끊고, 바로 전 지도교수님께 연락한다. 소개해주신 교수님 연구실에 지원하겠다고. 교수님께서 좋은 생각이라며 CV를 보내달라고 하셨고, 내가 CV를 전달하자 교수님께서 내 CV를 그 교수님께 전달하셨고,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연구교수 제의"라는 제목으로 메일이 왔다.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다. 함께 연구하고 싶다는 제안이었고, 나는 답장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3월에 시작하길 원한다고 적혀있었지만, 난 이곳 프랑스에서 최대한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싶었기에 4월에 시작할 수 있냐 말했고 그렇게 최종적으로 4월 1일부터 한국에서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2시간이 채 걸리지 않고 바로 나의 미래가 결정되었다.

한국에서 프랑스로 돌아오는 날, 조카들의 등굣길을 배웅하면서 이모 언제 다시 한국에 올지 모른다고 인사를 했었다. 그런데 민망하게도, 열흘 뒤,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결정되었다. 2달 반 후에는 한국에 돌아간다. 그렇게 맘을 먹고 결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3월 이후의 계획이 세워지지 않아 미래가 불확실하던 나는, 일단은 일 년의 시간은 자리가 잡히게 된 것이니 그동안 더 나은 실적들을 내서- 더 좋은 자리에 자리 잡을 기회를 마련하면 될 것이다. 그곳이 어디가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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