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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Jan 26. 2024

어른의 맛, 김밥에 맥주

한동안 요리를 안 했다. 모든 게 조금 귀찮았다. 퇴근 후, 대충 사다둔 라면을 끓여 먹고는 일찍 잠에 들곤 했다. 그렇게 열흘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정신을 차렸다. 라면으로 배를 채우니 몸이 개운하지 않았다. 다시 요리하며 제대로 건강하게 먹어야겠다 싶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바빠서 요리할 시간이 없었다. 아침은 생략하고, 점심과 저녁 모두 일하며 배달시켜 먹었었다. 잦은 소화불량과 장염으로 고생하곤 했었다. 병원에도 자주 갔었기에 프랑스에 오면서도 많이 걱정하며 왔더랬다. 그런데 웬걸, 프랑스에 오고서는 소화불량에 시달린 적이 단 하루도 없다. 생각해 보니 다른 점이라면, 이곳에서는 점심은 학교 식당에서 먹지만 매일 샐러드와 과일을 챙겨 먹고 메인요리 자체도 한국에서 먹던 요리만큼 자극적이지 않다. 저녁은 집에서 내가 직접 요리해 먹는다. 확실히 한국에서 배달시켜 먹던 요리들이 자극적이었나 보다. 그렇기에 집밥에 대한 신뢰가 프랑스에서 지낸 2년 동안 샘솟았다. 정성스레 차린 밥 한 끼가 건강에 굉장히 중요하구나 싶었다.


다시 제대로 집밥으로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퇴근 후, 아시아마켓에 간다. 잠시 둘러보다가 단무지가 눈에 띈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김밥을 안 먹었다. 김밥이 먹고 싶다. 냉장고에 소고기다짐육이 있었던 게 생각나서, 그걸 그대로 쓸 생각으로 간단하게 계란, 당근, 시금치, 단무지를 사 온다. 계산대로 가다가 주류코너를 지나친다. 맥주가 보인다. 요즘 한동안 맥주를 안 마셨기에 맥주 한 캔도 챙겨든다.


집에 도착해서 먼저 냄비에 밥을 안친다. 밥이 되는 동안 다른 재료들을 준비하면 된다. 냉장고에서 다짐육을 꺼내는데 상태가 좋지 않다. 그냥 고기를 버리기로 한다. 의도치 않게 완전 기본 김밥이 될 것 같다. 재료로 승부 볼게 아니니, 간을 잘해서 최대한 맛있게 만들어야겠다 싶었다. 잘라진 단무지보다 통단무지가 저렴해서, 통단무지를 사 왔기에 단무지를 자른다. 계란을 풀어서 지단을 부쳐내고는 잘게 썰어준다. 계란이 통으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이렇게 잘게 썰어 넣는 게 나는 더 부드러운 느낌이 들어 선호하는 편이다. 당근을 채 썰어 기름에 볶으며 소금 간을 간단하게 해 준다. 팬에 시금치도 넣어서 볶아주며 물도 좀 부어주어 간단하게 익혀낸다. 시금치를 찬물에 헹구고는 물기를 쫙 짜낸다. 소금으로 간단하게 간을 해준다. 벌써 준비가 끝났다. 밥도 마침 다 되었다. 밥을 필요한 만큼 덜고는 소금과 참기름으로 간을 하고 비벼준다. 맛을 본다. 음. 딱 좋다. 마른 김을 꺼내고 밥을 얇게 깔아주고 단무지, 시금치, 계란, 당근을 얹고 돌돌 말아준다. 밥을 조금 넣고 재료도 딱 기본만 넣었더니 김밥이 크지 않다. 넉넉하게 5줄을 말아준다. 김밥을 잘라서 그릇에 담는다.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맥주도 꺼내 들어 김밥이 담긴 그릇을 들고는 식탁으로 향한다. 먼저 맥주 한 모금을 마신다. 시원하게 목을 타고 넘어가는 기분이 좋다. 이제 김밥을 맛볼 차례다. 하나 짚어 들어 입에 넣어본다. 크지 않아 한입이 전혀 부담이 없다. 적당한 간과 재료들이 조화롭다. 간이 잘됐다. 적당한 간이 맛깔나고 맥주와도 잘 어울렸다. 문득 맥주와 김밥을 먹는 건 처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스러운 조합이라 생각했다. 김밥은 피크닉, "낮"의 이미지가 더 강하지 않은가. 김밥에 술이라니. 김밥의 간이 맥주 안주로 함께하기에 딱 좋았다. 요즘은 화려한 김밥도 많지 않은가. 그런 김밥은 보통 한 줄 먹으면 그걸로 충분한데, 이렇게 기본 재료로 만든 집밥스러운 김밥은 끊임없이 들어가는 느낌이다. 화려함을 뺀 김밥이었지만 맥주와 함께하며 그 맛이 한층 훌륭하게 느껴졌던 한 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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