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확위 Feb 27. 2024

인 앤 아웃 치즈 돈까스

프랑스에서 지치는 날이면 한국에서 먹던 음식들이 생각난다. 여기에서 빵 같은 걸 먹고 싶지가 않다. 얼마 전 그룹미팅에서 탈탈 털리며 힘이 쭉 빠졌던 한 주였다. 뭔가 맛있는 저녁이 먹고 싶었다. 그때 돈까스가 생각났다. 치즈 듬뿍 넣은 치즈돈까스 말이다. 딱히 좋게 발표가 진행되진 않았지만, 어쨌든 끝났다는 사실만을 축하한다면, 돈까스 정도 먹을 자격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저녁으로 돈까스를 먹기로 한다.

돼지고기 등심과 계란을 사간다. 그 외 재료들은 모두 집에 있는 걸 이용하기로 한다. 거창하게 재료들을 더 살정도로 이날 하루를 잘 보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 먼저 돼지고기에 소금, 후추, 맛술로 간단히 밑간을 한다. 그동안 곁들일만한 게 뭐가 있을지 살펴본다. 마카로니가 있다. 마카로니를 익히고 마요네즈에 버무려 준비한다. 돈까스엔 양배추샐러드인데 양배추가 없다. 샐러드용 미니상추가 있다. 이걸 먹기로 한다. 스위트콘도 당연히 없다. 없으니 생략하는 거다. 곁들임은 이 정도로 한다. 먼저 소스를 만들어본다. 버터를 녹이고 밀가루를 넣어 루를 볶고는 간장, 케첩, 설탕을 넣어 맛을 보며 섞어준다. 어디선가 누가 딸기잼을 넣으면 맛있다고 한 게 생각나 냉장고를 뒤져 포도잼이 있기에 이걸 넣어본다. 맛을 본다. 혼자 집에서 해 먹기에는 나쁘지 않은 맛이다. 이제 돈까스를 마저 만든다. 밑간해 둔 고기 위에 밀가루를 묻히고, 계란물, 그다음 빵가루를 묻혀준다. (잊지 말자 밀. 계. 빵!) 두 개는 가운데 치즈를 넣고 서로 겹쳐준다. 아주 두꺼운 돈까스가 되었다. 이제 튀길 시간이다. 고기가 충분히 잠기도록 냄비에 기름을 넉넉히 붓고 온도를 올린다. 그다음 튀겨내 준다. 치즈가 남아있다. 치즈를 그릇에 담고 전자레인지로 30초 돌려 녹여준다. 다 익은 치즈돈까스 위에 또 뿌려준다. 안도 밖도 치즈-인 앤 아웃 치즈 돈까스인거다.

맥주를 마시고 싶지만 집에 맥주가 없다. 피곤한데 술보다는 건강하게 선물 받은 콤부차를 마신다. 새콤해서, 기름진 요리와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먼저 치즈돈가스를 반 잘라본다. 소스가 서서히 스며들어 일부분은 눅진한 느낌이 된다. 바삭한 돈까스를 소스에 찍어먹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소스가 스며들어 부드러워진 돈까스도 그 나름의 매력으로 좋아한다. 돈까스가 양이 많다 생각했지만 먹고 먹고 또 먹다 보니 어쩌다 배 터질 기분이 들 때까지 다 먹어버렸다. 맛있게 배불렀다.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삶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힘 빠지는 하루를 보냈다면 먹고 싶은 음식을 떠올려보자. 그런 후, 그 음식을 배불리 먹어보자. 인생이 내 뜻대로 안 되더라도, 저녁 메뉴쯤은 내 뜻대로 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