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 죽을 뻔하다가 프랑스에 도착하다

by 이확위

프랑스로 가는 14시간의 비행 중 6시간째 심한 출혈로 죽을 뻔하다 겨우 땅 위에 도착했다. 시작은 모두 출국 예정 한 달 전이었다. 몇 년을 고생하던 축농증을 치료하고자 근처 이비인후과를 찾았는데, (서울에서 매번 가던 곳에서는 약만 처방받았었기에 이번에도 그럴 거라 생각하고 찾아갔었다) 보자마자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건 수술해야 해요. 약으로 안 돼요” 내가 한 달 뒤에 출국이라 하니, 바로 이틀 뒤로 수술을 잡으면 충분히 회복해서 출국이 가능하다는 말에 바로 수술을 결정했다. 그렇게 수술을 마치고는 점검을 위해 병원을 다시 찾았더니, 갑자기 분위기가 진지해지면서 “수술 중 이상한 세포가 발견되어 조직검사를 해보니 종양으로 판별이 났다.”라고 했다. 처음에는 양성종양이라 해서 ‘아 별일 아니구나’했더니, 이 종양이 조금 특이하다고, 조직으로 침투하는 성질이 있는 종양이고 암으로 전환되는 경우도 15~20%에 재발확률도 높아서 수술적 절제가 치료법이라고 했다. 수술을 해야 하니 전신마취가 가능한 대학병원에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학병원은 예약부터 쉽지 않고, 게다가 수술하고 이런저런 일을 다 하려면, 예정된 출국일을 맞출 수 없을 것 같아서, ‘프랑스에서 수술하면 되려나?’라는 생각으로 연구소 담당자에게 문의했다. 건강 문제가 생겨 수술이 필요한데 프랑스에서 건강 보험 적용이 언제부터 되냐고 말이다. 담당자에게 답변이 왔는데, 시간이 걸리니 가능하면 한국에서 치료한 후에 오라고 하더라. 계약 시작일은 연기하면 된다고 말이다. 대학병원 진료를 잡고, 출국 사정을 얘기하니 최대한 빠른 시간으로 수술 일정이 잡혔다. 수술 후 언제 출국이 가능하냐 물으니 “일주일”이라는 담당 의사 선생님의 말해 진짜 딱 일주일 뒤로 항공편을 예약하고, 연구소에 도착일을 알렸다. 그렇게 수술을 받고 일주일 뒤 탔던 비행기였다.


오른쪽 부비동을 수술해서 코 밑에는 아주 커다란 거즈를 밴드로 고정시키고 있었다. 콧 속에서 피와 분비물들이 계속 흘러나와서 주기적으로 거즈를 교체해야 했다. 다행히도 코비드 시즌이라 마스크로 다 가려져서 사람들 시선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비행기 자리에 앉았다. 코비드 막바지였지만 여전히 비행기에는 탑승객이 많지 않았다. 비행 7시간째 쯤인가, 거의 비행 중반쯤이었다. 뭔가 이상한 느낌에 잠에서 깼다. 다들 취침 중이라 비행기는 어두웠다. 수술 후 여전히 얼굴과 코 밑 감각은 없는 상태였는데, 손에 뭐가 닿는 느낌이 들어 폰으로 플래시를 켜서 비춰보니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 점점 더 많이 흘리더라. 그러다 단순한 코피 수준이 아니라서 ‘아… 큰일이다’를 직감했다. 바로 주변을 둘러보는데 다행히 내 옆 통로 가까운 곳 사람이 자지 않고 책을 보고 있기에 그 사람에게 코피가 나니 크루를 불러달라 했다. 크루가 다가오더니 단순한 코피로 생각했다가 내 출혈이 상당하니 놀라서 나를 뒤로 데려간다. 의자에 앉고는 얼음팩을 가져다주고, 내 상황에 대해 듣는다. 나는 “오늘 낮에도 병원에서 점검을 받고 왔고, 내 담당의가 모두 다 괜찮다고 했다. 허락을 받고 비행기에 탄 거다”란 설명을 했다. 지금 고도에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당장 생명이 위독한 것도 아니고, 출혈은 대략 15분쯤 후에는 멈췄다. 그 양이 조금 많았을 뿐이다. 옷은 전부 피범벅이었고, 오른쪽 코에서는 커다란 젤리 같은 피딱지가 나오지 않은 채 있었다. 이걸 건들면 다시 큰일이 날 것 같았다. 크루는 내게 환승을 위해 내리는 암스테르담 공항에 연락을 해두었으니 내리면 바로 응급센터로 가면 된다고 했다. 불안한 마음에 바로 WIFI를 결제해서, 한국에 연락을 시도했다. 언니에게 내 주치의에게 연락해 달라고 했다. 일단 피가 멈췄으니 괜찮다는 말이 나를 조금 안심시켜 줬지만 불안한 마음에 남은 비행시간 동안 전혀 잠에 들 수 없고, 식사도 먹히질 않아 주스로 갈증과 배고픔을 달랬다.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 착륙하는 순간 ‘아 이제 다 끝났다. 다행이다’라고 안심하는 순간 코피가 다시 터졌다. 방심하고 있었다. 압력차는 착륙할 때가 더 크다. 이번에 출혈은 더 심했다. 오른쪽 부비동을 수술해서 오른쪽 콧구멍에서 흐를 피는 넘쳐서 왼쪽으로도 흘러나왔고, 그것조차 흐르는 출혈을 감당하지 못해 목구멍으로 피가 역류하고 있었다. 피를 다 뱉어내며 숨을 쉬기가 힘들어 피를 삼키기도 하며 정말 난리도 이런 난리는 내 생애 처음이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이러다 진짜 죽는 거 아냐?’ 싶었다.


응급센터에 도착할 때는 다시 출혈이 멈춰있었다. 다행히 바이탈에는 문제가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피를 너무 삼켜도 쇼크에 올 수 있다고 하더라.) 출혈양이 많긴 했지만 문제가 있을 정도는 아니었던 거다. 응급센터에는 간호사만 있었다. 하필이면 새벽 4시에 도착한 터라 당직의사는 콜 대기 중으로 상담만 해주고 있었다. 내 주치의가 출혈이 멈추면 괜찮다고 했다는 걸 전해 듣고 (응급센터 담당 의사는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아니기에) 주치의 말을 듣는 게 맞다고 얘기를 해주었다. 그런 후, 환승으로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는 고도가 높지 않아서 다시 출혈이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고, 그럼에도 불안하다면 기차를 타고 가면 된다고 했다. 나는 얼른 도착해 제대로 진료를 받는 게 중요하다 생각하여 모험을 하기로 했다. (너무 피곤한 상태라 언제 도착할지 모를 기차를 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프랑스행 환승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다행히 또 다른 출혈 없이 프랑스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한국에 있는 친언니에게 연락하며 언니가 걱정을 많이 했다. 내가 무사히 도착했다는 말에, 프랑스에 사는 친구에게 내가 도착한 지역의 의사 진료 예약을 부탁했다고 했다. 다행인 것이, 나도 직접 프랑스에서의 진료를 예약하려고 했지만 프랑스의 모든 의료진료 예약을 위해 사용하는 Doctolib은 프랑스 번호가 필요했다. 아직 한국 핸드폰만 가진 나는 예약이 불가능했다. 예약 없이 갈 수 있는 곳은 응급실뿐이었다. 이렇게 당장 전문의 진료가 필요한 경우는 대체 어떻게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프랑스에 도착해서 처음 의료 시스템을 이용하려 하는 내가 느낌 불편함이었다.


프랑스에 도착해서 호텔 체크인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언니 친구가 예약해 준 일반의와의 진료였다. 언니 친구가 이비인후과 전문의를 예약해주려 했지만 아무리 찾아도 당장 진료 예약이 가능한 이비인후과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일반의로 예약했다고 했다. 찾아간 병원은, 한국과 다르게 병원 느낌이 나지 않았다. 한국은 병원이면 일단 간판부터가 “병원” 큼지막하게 적혀있지만, A4 한 장 크기 정도되는 걸로 “Cabinet de 진료과/닥터 누구누구”이라고 적힌 게 전부였다. 병원 같지 않아서 지나쳤다가 주소보고 다시 되돌아와 찾을 수 있었다. 그냥 집 같은데?라는 느낌의 건물을 들어서서 벨을 누르자 입구 현관문이 열렸고, 복도를 지나 다시 벨을 누르니 그 안이 병원이었다. 사람이 아무도 없고 어두웠다. (어두운 건 많은 프랑스 개인병원들이 그랬다. 한국처럼 밝게 불을 모두 밝히지 않는다. 에너지 절약이 한국보다 더 철저했다.) 어둡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내가 맞게 왔다 싶었다. 안내하는 사람도 없고 뭔가 화살표로 문 옆에 적혀있는 글자가 있어 구글번역기를 이용해 보니 “대기실”이더라. 대기실에는 그냥 벽 따라 플라스틱 의자가 주르륵 배치되어 있었다. 거기에 앉아있는데. 내 진료시간이 되니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한 의사가 나와 내 이름을 부른다.


일반의니까 이비인후과와 같은 시설은 당연히 없다. 의료침대에 앉히고는 내 목을 살피고, 플래시를 비추며 코 안을 좀 본다. 그런 후 약을 처방해 주고, 처방전에 사인을 하고 의사가 내 카드를 받아 결제를 하고 영수증을 건네준다. 의사가 혼자 모든 걸 다하는 게 너무 낯설고, 병원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나는 분명 코 안쪽 부비동에서 출혈이 있었다고 생각되는데 (그곳을 수술했으니까) 내가 분명 한국에서 가져온 소견서, 암스테르담 응급센터 소견서를 모두 줬음에도 이 의사는 코 입구에서 출혈이 있던 것 같다는 엉뚱한 소리만 했다. 그래서 ‘아 이거 돌팔이 아니야?’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처음 프랑스에서 본 병원 진료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전문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그래도 어차피 이제 압력 차이가 없으니 더 출혈이 있을 일은 없었기에 큰 문제가 될 것은 없으니 그냥 의사 진료를 봤다는 걸 마음의 위안으로 삼았다. 전문의만 만나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 다만 그게 언제일지 모른다는 게 문제였다. 난 더 이상 한국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곳은 프랑스였다.


keyword